“제가 만일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제 생명이 다할 때에
벌거벗은 몸으로 지하에 돌아가게 하시고,

저의 소유라고는 살아생전에
다 주님을 위하여 무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저를 위하여 무가 되었사오니
저도 주를 위해
무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께서는 세상을 떠날 때에 속옷까지 원수에게 주셨는데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운명 하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수의를 입고 세상을 떠나겠나이까?” (이용도 목사)

성경은 구주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대속의 역사가 완성된 곳으로 골고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지명합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성도들에게 두 가지 명칭이 생겼습니다. 첫째, 죄에서 자유롭게 된 자,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이 두 가지의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얻은 자유함을, 예수님을 위해 사용하라!”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노예적 상태에서 극적으로 해방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원래 타락한 피조물로서 각종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죄는 사망에 이릅니다. 이런 상태는 인간 모두 보편적 상황이었습니다(롬 3:23).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절대적인 절망 상태였습니다(롬7:18). 그런데 율법을 어기고 죄로 물든 우리들이 받아야할 형벌인 죽음과 지옥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율법과 죄악, 그리고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율법의 노예, 죄의 노예, 사망의 노예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기쁨, 감격, 감동, 그리고 감사로 인하여 자원하여 주님의 뜻과 복음, 그리고 소원을 위해 자신을 선용하는 것은 성도의 남은 거룩합니다. 성화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신 예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요 당연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삶의 방향과 목적이 있는 분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분명합니다.

그런 성도를 은혜의 강가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성도를 은혜의 강가에서 살도록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후 어느 날 천국에서 영원한 은혜의 강가에서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케 하실 것입니다. 이제 더욱 더 주님을 위한 헌심, 헌신, 헌금을 기도로 ‘결심’하시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기도 중 ‘결단’하시는 능력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그리하면 이 유혹 많은 세상에서 ‘행복’과 ‘쾌락’을 구별할 줄 아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예수님은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운명 하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수의를 입고 세상을 떠나겠나이까?”라는 정신을 계승하는 그리스도의 제자 됨이 최고의 행복임을 고백하는 주교교사, 그리고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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