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건 성도건 간에, 누구든지 간에 서푼어치 지식으로 선생질하려 들지 말고 이 세상 살 동안 영원한 학생으로 살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울 정원의 화초들은 그렇게 다른 화초들에게 감 내놔라 콩 내놔라 팥 내놔라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이겨내고 자기 스스로 피어내고 자기 스스로 질 줄 알더라. 그렇게 자기도 존재하고 남도 존재하는 그 현장에서 피어나면서 등장하고 지면서 물러나는 정(正)과 반(反)의 과정을 거치면서 합(合)을 만들어가더라. 화초들의 그 변증법적인 생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도 그러해야 하거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더라. 어쩌면…, 혹시…, 만약…, 물러나야 할 자리를 꼼수를 써서라도 지키려고 아둥바둥대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기분 나빠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조용히 물러나주어야 한다.

지난 수요일에 동네 이웃교회 노인대학에 가서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모교 MT에 참석하여 내가 음악치료사가 되기까지 가르쳐주시고 훈련시켜주신 교수님들과 선후배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러면서 5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올 동안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스승들을 생각해보며, 스승과 제자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스승들은 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셨다. 어렸을 때 나의 스승들은 학생으로서 나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 야단도 치시고 때로는 벌도 주시고 때로는 매도 드셨고, 또 나의 불행한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걱정도 해주셨고, 어쩌다 내가 이쁜 짓 하면 칭찬도 해주셨다. 지금도 혼나고 벌서던 기억, 매를 맞던 기억, 토닥여 주시며 격려해주시던 기억, 당시로서는 꽤 큰 상도 받게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총신대학교와 신대원에 들어가서 목사 수업과 훈련을 받을 때는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과제를 내어주시고, 내가 제출한 과제물이 신통치 않을 때는 가차없이 학점으로 벌 주셨던 기억, 그러면서도 이뻐해 주셔서 재학 중에 책도 여러 권 낼 수 있게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숭실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 깐깐하면서도 배려깊으셨던 여러 교수님들도 생각난다.

최근에는, 어떻게 생각하면, 음악치료학을 배우러 온 학생치고는 좀 부담스러운 목사 학생인 나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셔서 오늘날 이렇게 종횡무진하며 음악치료사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쌓게 해주신 한세대 대학원의 여러 교수님들도 생각난다. 때로는 레이저 눈빛을 쏘아대시며 나를 긴장하게도 하셨지만, 그래도 음악 실력이 뻔한 나를 격려해주셔서 이제는 어디서 누구 앞에 서더라도 쫄지 않는 음악치료사 노릇하게 하셨다.

분명 오늘의 나는 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나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승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신 것이 아니고 내 할 일을 대신 해주신 게 아니다. 스승의 지식과 경험에다가 나의 지식과 나의 경험을 첨가한 나의 것을 만들어 현장에서 가상한(?) 노력을 하며 적용하고 있다. 나 스스로를 판단할 때, 나는 재능이나 실력 면에서 우수한 학생이 아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딱 부러진 실력을 갖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원한 아마츄어이다.

그런데, 내게는 하나님이 주신 열정과 노력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스승들의 귀한 가르침과 나의 열정과 노력이 그나마 미완성인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물론, 내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도 나는 여전히 미완성인체로 있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도 한 목사로서도 한 사회복지사로서도 한 음악치료사로서도 나는 그렇게 미완성의 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관건은 나의 열정이 식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나의 노력의 식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또 오롯이 나의 몫이지 나의 스승의 몫이 아니다.

엊그제, 사무실 밖 화단의 넝쿨장미에서 빠알간 장미 한 송이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피었다. 2년 전이던가, 열심이 지나친 어떤 사람에 의해 장미넝쿨이 무참히 잘려나갔었다.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잘려나가기 전 그렇게도 무성하게 꽃을 피웠었는데 작년에 초라하게 듬성듬성 피어난 장미를 봐야만 했던 내 마음…,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그런데 엊그제 활짝 피어난 빨간장미 한송이를 보는 순간, 그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넋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심은 것은 나지만, 꽃을 피운 건 장미 자신이라고. 싹뚝싹뚝 잘려나가는 아픔을 온 몸으로 견뎌야 했지만, 장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기를 피운 것이라고.

지난 금요일, 학교 선생님 출신이며 권사님이시며 이웃교회 목사의 어머니이신 어르신이 내가 당신의 땅을 빼앗아 교회를 짓고는 돌려주지 않으신다고 화를 내셨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기보다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분명 당신의 젊은 시절은 누구보다 치열한 열정을 불태우며 치열한 노력을 하며 살아오셨을 터. 그 결과로 자식들은 잘 성장한 거고. 그러나 그 와중에 당신은 이제 정신줄을 놓으신 게지. 그런 생각을 하며 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 그러면서, 적어도 그 어르신은 그날 나에게 인생스승이 되어주셨다. 어차피 사람은 늙으면 정신줄 놓게 마련인데, 배운 것으로 열매맺지 못한 채 정신줄 놓는 것보다는 배운 것으로 맺을 열매를 맺느라 기운이 진하여 정신줄 놓는 게 훨씬 낫지 않느냐고. 그런 어르신을 괄시하기 보다는 품어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사람은 영원한 학생으로 살아야 한다고. 학생이면 학생답게 스승에게서 배운 지식으로 자기의 삶을 자기가 살며 자기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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