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가 사면팔방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 위기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물론 우리를 공격하는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들, 외부의 적들과 내부의 적들의 실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바로 아는 일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언제나 교회의 내부와 외부에 복음의 대적자들이 있어왔음을 알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대적들이 많은 시대일수록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교훈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본질과 장점들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

위조지폐를 분별하는 감별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진폐를 가지고 훈련을 한다고 한다. 진폐를 계속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그렇게 진폐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느껴질 때 위폐를 만지거나 보게 되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주위에는 가자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집중할 것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다.

초대 기독교 역사는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을 주고 있다. 네로의 박해를 시작으로 도미티안, 타라얀... 등 열 명의 황제들이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던 그 고난의 시기에 오히려 복음은 더 강하게 불타올랐고, 기독교는 더 깊게 더 넓게 확장되었다.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 칙령으로 인해 기독교회는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오히려 복음의 능력은 멈추었고,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의 유일 종교가 되었지만, 실제는 부패와 타락의 시작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열 명의 황제들이 잔학하게 박해하던 그 무서운 시기에 기독교회는 어떻게 이겨내고 오히려 더 강하게 일어설 수 있었을까? 유대인들까지 합세하여 교회를 진멸하려 했지만, 교회는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그러나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초대교회의 그 저력이 오늘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팔레스틴을 통치한 로마와 그들과 야합한 유대지도자들은 기독교의 근간인 예수의 부활을 부인할 증거들을 찾아내려 수없이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긴 박해의 기간 동안 예수의 부활을 부인할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취된 이 복음은 그때도 지금도 동일한 구원의 능력이요 만민에게 전할 축복의 메시지이다.

초대교회의 저력은 복음 자체의 능력 뿐 아니라, 성도들이 가족같이 서로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공동체 의식에 있었다. 서로의 고난과 문제에 동참하며, 문제가 생긴 서로의 가족을 돌보아주는 그 사랑과 돌봄이 교회의 응집력을 더해 주었다. 나아가서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뒤를 잇는 탁월하고 헌신된 속사도들을 길러내었고, 박해의 시대를 넉넉히 헤쳐가고 복음의 생명력과 교회의 본질을 지키고 펼쳐가는 위대한 지도자들을 많이 길러내었다. 

예수 부활 복음의 능력, 생명을 함께 하는 사랑의 공동체, 탁월한 영성의 지도자들 양성...
이 세 가지를 회복한다면 한국교회는 고난과 비난의 시대를 넉넉히 헤쳐갈 수 있다고 믿는다. 위기의 시대에 처한 한국교회가 오히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고 초대교회의 능력과 승리를 펼치는 기회의 시대를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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