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제1편 <붕도남>(鵬圖南)에 “물이 많이 고이지 않으면 큰 배가 뜰 수 없고, 바람이 많이 모이지 아니하면 큰 새가 날아오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북쪽 땅 끝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았다. 그 크기가 길이만 수 천리나 되어 아무도 정확한 길이를 몰랐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되었는데 등의 넓이만도 수천리가 되고 한 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면 하늘을 구름처럼 뒤덮었다. 기이한 일을 많이 아는 <제해>라는 사람에 의하면 “붕이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옮겨 갈 때 바닷물이 삼천리나 솟구쳐 오르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위로 구만리까지 날아오르는데 여섯 달이나 날아오른 후에 내려앉는다.”고 했다.

큰 배가 뜨기 위해서는 깊은 물이 필요하다. 물이 얕고 배가 크면 배가 뜰 수 없다. 작은 하천에는 돛단배가 제격이다. 작은 하천에 살면서 큰 배를 가진 사람도 불행한 사람이고 큰 배를 가지고도 작은 하천을 떠나지 못하는 배도 불행하다.

우리 교단은 큰 배와 같다.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단이다. 배의 재질이나 모양도 좋다. 우리의 정체성은 성경적인 개혁주의다. 그런데 99회 총회 이후 우리 교단의 형편을 보면 배는 크고 훌륭한데 그 배를 띄울 물(水)이 아니라 인물(人物)이 필요하다. 깊은 생각과 속 깊은 전략의 대국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국을 경영하는 황제와 지방을 다스리는 향리와는 리더십에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총신대학 문제로 인한 교단의 파열음이 뜻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총신대학 문제는 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총회와 총신대학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문제다. 그 분들은 모두가 교단을 책임진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갈등들은 자칫 잘못하면 총신대학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선을 넘나들고 있다.

총신대학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교과부의 관선이사가 들어올 수도 있고, 학교등급 하락으로 학생모집에 제한을 받아 학교운영과 재정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루한 법정 다툼이 계속되면 학교는 교단과 전혀 무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교단법을 정의로 하고, 또 한쪽에서는 교과부법을 의지하고 있다. 만약에 총신대학이 잘못되면 지금 이 싸움의 당사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총회 측 지도자들은  전후, 좌우, 법적, 상황적인 모든 환경을 종합하여 판단하고 분석하여 총회가 유익한 쪽에서 서로 이기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학교 측 지도자들은 법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신앙 양심에 따라서 교단도 학교도 이기는 멋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주도권 다툼이나 기득권 싸움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깊은 물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최후의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다. 억울하고 분해도 하나님은 아신다. 지난날 교단과 교단대학을 휘두르던 위인들도 지금은 다 고인이 되었고 그 분들에 대한 평가만 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큰 배를 띄울 큰 인물은 리더로서 자기가 섬기는 공동체의 목적에 충실한 사람이고 자신을 희생하여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인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사람이다. 교회에 속한 지도자들은 공동체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정답이 나온다.

교회정치는 세상정치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편하다. 또한 정치란 상대적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협상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어가야 한다. 누구를 죽이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 아니다. 교회정치는 더욱 그렇다. 서로 갈등이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갈등이 파괴로 가면 그것은 비극이다. 우리교단 지도자들의 탁월한 리더십이 위기를 극복할 줄로 믿는다.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총회장과 총신대학 이사장은 먼저 감정적으로 화해하라.
그 분들 사이에 무슨 사사로운 감정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신문 지상을 보면 서로 간에 오랜 공방으로 불편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모든 문제는 그 시발점이 감정에 있다. 해결책도 감정을 푸는데 있다. 목회현장에서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잖은가?

둘째, 우리 교단의 명예를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해법을 위해 서로 협상하라.
교단법으로나 교과부법으로나 현 상황에서 상호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아 신앙적으로 협상해야 한다. 주변에서 함께하는 정치지도자들은 더 이상 소모전을 부추기지 말고 해법을 찾으라. 법으로 어려운 것을 풀라고 정치가 있지 않은가?

셋째, 무엇보다도 교단의 명예와 우리 교단 대학의 학생들을 기억하기 바란다.
교단의 명예와 교단의 목적인 영혼구원이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지금 학생들이 받은 상처가 한 세대 후에 어떤 생체기로 돌아올지를 두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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