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갑자기 워싱턴에서 목회하는 한 지인이 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현장에 가서 기도하고 싶어 왔다고 한다. 그는 세계의 대통령들을 위해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보는 조국은 마치 세월호가 침몰해 가듯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도 팽목항을 둘러보고 현장감을 가지고 돌아가 성도들과 함께 조국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고통의 현장을 보러왔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만 정작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나의 불감증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정말 무서운 것이 냉소주의적 불감증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난한 시절 우리는 가난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촛불 밑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열악한 공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일했다. 월남 전쟁에도 뛰어들었다.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우디의 사막에도 다녀왔다.

그래서 남북이 대치중인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국의 꿈을 이루었다. 가난의 통증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나라의 정치적 지형은 민주주의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을 담보로 독재를 내세울 만한 명분들이 많았지만 최선의 정치인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지켜냈다. 무시된 민주주의 절차와 빼앗긴 자유와 인권의 고통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고 울 수 있을까? 기쁨을 느끼지 않고 웃을 수 있을까? 마음의 즐겁지 않은데 어찌 춤을 추겠는가!

국감에 나타나는 불감증

개구리가 더운물이나 찬물에 넣으면 뛰쳐나온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에 서서히 열을 가하면 그대로 있다가 익어서 죽는다고 한다. 선진국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요즘 국회의 국정감사 현장에서 사회 전반의 부정과 비리와 불합리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그 비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비리에 대한 우리들의 불감증이다. 이 나라의 부채는 서민들의 숫자 개념으로는 체감이 되지 않는다. 그 중심에 공기업에 임명된 정치적 인사들의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엄청난 연봉으로 그들만의 축제를 누리고 있다. 여전히 전문성이 무시된 낙하산 인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방 자치단체들은 빚더미 속에 있다. 나라나 지방자치단체의 빚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선출직들은 임기 끝나면 그만이다. 그 빚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빈부의 격차는 날로 갈수록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데 세금의 형평이 무너지고 있다. 21세기의 숙제는 자본의 분배다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는 결국 문제 속에 빠진다. 이 땅에서 잘사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책임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남북문제도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도 그렇고 국민의식도 그렇다. 내가 아는 지인이 서울 지하철에서 중학생들에게 남북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통일비용이 너무 들어 우리가 가난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남북문제에 대한 다음세대들의 생각이다. 순수해야 할 아이들까지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된다. 검찰이 국민들이 숨통처럼 겨우 소통하고 있는 카톡을 검열하려고 하는 시도도 민주주의 핵심인 언론을 규제하는 심각한 현실인데 여기에도 감각이 없다. 느낌이 없으면 행동이 없고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유와 인권이 종속될 수도 있다. 국감(國監)현장에서 나오고 있는 이 나라의 온갖 비리와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 우리는 불감(不感)하고 있다. 이것이 비극이다.

통증을 느껴야 변한다

진정한 신앙은 자기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영적 대각성 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통렬한 통증이 구원의 길을 찾게 한다. 신앙성장도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고통스러운 통증에서 자란다. 신앙이나 현실이나 통증이 변화를 가져온다. 아픈 만큼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픔이 성장으로 가려면 그 아픔을 통렬하게 느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기계처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살다 보니 이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영성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이 다가기전에 안도현님의 <가을 엽서>와 함께 자연의 영성이라도 느껴보자.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눠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할지라도/ 그대여/ 가을저녁 한 때/ 낙엽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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