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다오. 바다와 함께 울다가 나처럼 아픈 상처 안고 다 떠났다고.

국립소록도병원 앞, 해변의 울창한 솔밭을 바라본다.

하늘 닿게 높은 솔나무들 밑둥치가 오랜 세월 잿빛 상처이다. 일제日帝의 전쟁 말기에, 한센인들을 강제동원해서 송탄유 원료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다. 눈물 나는 깊은 상처의 흔적이다. 그 때를 생각하며 <소록도 솔나무>라는 시를 썼다.

‘육지 마주 보는/ 바닷가 솔숲/ 아름드리나무 마다/ 송피 벗기고 속살까지 찢겨/ 밑둥치서 허리까지 올라온 상처/ 백 년 세월에 잿빛이 되고/ 갯바람에 밀려오는 해조음 섧다// 버림받은 외로움/ 아픔과 배고픔과 헐벗음/ 나인癩人들 끌어내어/ 거북이 등 같은 껍질 찍어/ 선혈로 방울진 송진 모아가는/ 일제日帝 강제노역에/ 인간도 나무도 하늘도 학처럼 울었다// 백발노인/ 송림 거닐며 속삭인다// 나도 떠날 때 되었다/ 말해다오/ 한센인들 이 섬에 갇혀/ 혈육 그리워 바다와 함께 울다가/ 나처럼 아픈 상처 안고 다 떠났다고//

8월17일. 8시에 중앙교회 주일예배 인도하고, 12시 북성교회, 1시 신성교회 오후예배를 맡았다. 중앙교회는 7시 20분에 장로님이 공과공부를 인도했다. 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성경공부이다. 매년 교단이 발행하는 교재를 사용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성경공부를 한다. 대다수 교회는 이 시간을 폐지했다. 교인들이 예배시간 직전에 나온다. 말하자면 소록도교회기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성경중심적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재를 함께 읽고 덧붙여 설명하고 문답한다.

7시50분. 두 번째로 종을(재종) 울리면 예배를 시작한다. 참석 교인은 90여 명, 찬양대 14명이다. ‘온유한 자의 복’이라는 제목으로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에 대해 강론했다. 예수님을 본받아 온유함과 긍휼이 여기는 사랑으로 이웃과 교회를 섬기자는 강론이었다.

소록도 교회들은 몇 년 전에 새로 나온 성경과 찬송가를 안 보고 옛 것을 사용한다. 이미 암송하고 익숙해진 성경과 찬송가 가사 그대로 쓰는 것이다. 나도 그 책을 가지고 간다.

예배를 마치고는 할아버지들 출구로 달려가 손도 잡아드리고 안아드리며 인사를 나눈다. 한 분이 주저앉아서 신발을 꿰느라 애를 쓴다. 그 분 앞에 앉았다. 겨울 털신을 오른발에는 신었는데 왼발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털신을 받아서 신겨드리는데, 순간적으로 만진 발도 다리도 돌처럼 딱딱하고 차다. ‘아~, 의족이구나, 두 다리를 다 잃어버리고.

“할아버지! 내 다리 아니네.”
“둘 다 아니여.”

만져보니 두 다리가 의족이다. 발을 멋 움직이고, 발가락도 꼼지락 거리지 못하니 신발을 신는 것도 남처럼 쉽지않다. 스스로 일어서겠다며 손가락 끊어진 두 주먹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 목발을 양 겨드랑이에 끼운다. “조심해서 가세요. 오후예배도 오시고요.” 인사를 드리고, 더는 붙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한 걸음씩 걷고, 한분이 곁으로 따라간다.

제 모습 얼굴과 팔다리를 잃어버린 중증 장애 할아버지. 인생 황혼이 이렇게 외롭고 힘들지만, 곧 가게 될 천성을 바라며 예배당에 나오는 그 믿음이 놀랍다. 한센병을 나았어도, 후유증이 심각한 분들은 이렇게 정착촌 개척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못해, 소록도에 주저앉았다. 교회마다 이런 교인이 많고, 요양병동에 입원한 사람도 많다.

시각장애자는 지팡이로 길을 찾거나 이웃의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교회에 나오는 새벽기도회와 예배가 일과요 신앙생활이요 소망이다. 이렇게 만나서 얼굴이라도 보고 인사라도 나누면서 안부를 살핀다. 아직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천성에 가는 그날 까지 이렇게 ‘오직 예수, 오직 천국’ 소망으로 살아간다.

소록도 5개 교회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설교했던 7, 8월. 기쁨과 감사로 섬기며 큰 은혜를 누린, 내게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하나님께 영광, 성도들께 감사라 고백한다.

섧고 외로웠던 인생 나그네
찬란한 황혼 빛 저 멀리 영원한 시온성
우릴 영접하여 눈물 닦아 주실 주님 예수여!

▲ 소록도중앙교회 예배당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