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찌 다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나 절망적인 사건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쉽게 헤아리는 것은 오히려 교만일 수 있다.

유진 벨 선교사(Eugene Bell, 배유지. 1868-1925)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1895년에 전남지역 선교를 맡았다. 1897년에 나주선교부를 세우려 했지만 주민 반발로 실패하고, 목포로 내려가 교회를 세웠다. 1904년에는 광주선교부를 세우고 양림리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그 해 성탄절에 주민을 초청해서 성탄절예배를 드림으로 광주 선교가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광주 전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한국 땅에서 고초를 많이 겪었다. 아내를 잃은 일이다. 아내 로티가 두 아이를 남겨두고 1901년에 별세했다. 1894년에 미국에서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 따라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파했다. 목포는 식수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연유로 병을 얻었던 것이다. 서울 외국인묘지에 묻었다.

재혼한 마가렡(Margaret)은 1919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광주선교부에서 오웬(C. C. Owen 1867-1909) 선교사와 광주와 전남지역에 대단한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다. 1919년에 선교활동을 위한 자동차가 도착했다. 유진 벨이 인천에서 차를 인수해서 광주로 오던 길에, 경기도 병점 부근 기찻길 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돌했다. 마가렡과 구례인(Crane)선교사가 현장에서 숨졌다. 부인을 광주 양림동 선교동산에 매장했다.

유진 벨은 훗날 아내 잃은 슬픔을 이렇게 썼다 한다. “금년은 슬픈 크리스마스가 될 것입니다...자주 그 끔찍했던 사고의 망상이 떠오르고, 그 엄청난 엔진(기차)이 다가올 때 몇 인치만 앞으로 나아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념에 사로잡히고는 합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을 만나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나로서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나,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를 굳게 믿으며, 모든 일을 선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복음 전도자로, 멀고 먼 조선 땅에 보낸 분이 하나님 아니신가. 아이들만 남겨두고 어머니를 하나님에 데려가셨으니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유진 벨 선교사는 1922년에 디사트(Dysart)를 셋째 아내로 맞았지만, 결혼한 지 4년만인 1925년에 유진 벨은 광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내 마가렡 곁에 묻혔다. 모든 것을 다 바친 선교사의 삶이 이러했다. 그가 선교지 조선 땅에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슬픔과 선교 열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독일의 벤자민 슈몰크 목사는 화재로 두 아들을 잃었다. 아내와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이 불타버렸다. 두 아이 시신을 잿더미에서 찾아냈다. 스몰코 목사는 훗날 그 슬픔을 찬송시로 썼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라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사명자가 ‘주님의 뜻대로’를 고백하며 부르는 눈물 찬송이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이 찬송을 눈물로 부른다.

세월호 침몰(2014년 4월 16일) 사건으로 온 국민이 놀라서 슬퍼하며 울고 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이 제주로 수학여행 길에 나섰다가 많은 인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꽃봉오리 같은 어린 소년소녀들. 자식 잃은 부모와 가족 잃은 유족들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가 깊은 슬픔에 함께 울고 있다. 선박회사와 정부기관의 총체적 불법과 부정과 난맥상을 보면서 온 백성이 분노하며 들끓고 있다. 교회도 함께 울면서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하나님의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예수님이 실로암 망대 붕괴사건으로 치어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시고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셨다. 교회도 다 회개할 때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이 변해야 하지만, 세상의 빛이어야 할 교회가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해야 하리라.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아닐까. 목회자와 신자 모두 깨어 일어나야 하리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