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참된 회복을 위한 방안 올바른 부흥관에서 시작된다

기독교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지난해 발간된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도서출판 URD)에 의하면 비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십자가’(26%), ‘교회’(25.7%), ‘예수님’(14.7%)순이었다. 그러나 1%미만이지만 ‘비리’, ‘가식적/위선적’, ‘이단’과 같은 부정적인 연상단어가 나타났다. 왜 이러한 응답이 나타났으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물론 개교회마다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참된 회복은 이벤트성 행사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참된 회복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올바른 부흥관과 교회관의 회복

기독교의 회복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고조되는 위기에 대한 인식을 기업 경영적인 원리로 해소해 보고자하는 소위 마케팅 지향적 교회성장 철학이 목회현장을 장악했다는데 가장 큰 심각성이 있다. 이런 목회 철학은 참된 부흥은커녕, 본질의 왜곡과 소수의 엘리트 목회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목회자들을 패배자로 만든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진정한 교회 성장과 부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개혁신학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부흥은 인간의 열심이나 어떠한 인위적인 시도들과 조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참된 구원의 역사가 결여된 양적 팽창과 부흥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부흥은 잠자고 있던 영혼들이 각성하고 회심하는 역사로 나타난다. 그들에게 허락되는 구원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다. 따라서 참된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인간의 기호에 맞춘 프로그램이나,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잘 기획된 메시지와는 상관이 없다.

또한 부흥과 성장을 논하기 이전에 각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애써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기를 힘써야 한다(골 3:16). 우리는 단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예배를 개혁하기를 힘쓰고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우리가 기쁨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머리로만 드리는 예배나, 마음으로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온전히 머리와 마음을 다하여 깊은 감동 가운데 드리는 예배다.」

그러므로 교회가 지켜야 할 가장 큰 우선순위는 강단에서는 참된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모하게 된 큰 부흥의 자리에는 참된 말씀의 선포, 특히 그들의 비참한 상태와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신칭의에 대한 선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회중의 기호와 필요에 귀를 기울이기에 앞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회중들을 ‘가르치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시급한 문제, 회개

한국 교회의 회복은 무엇보다 교회 내에서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복음의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들을 각성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역사가 있는 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 아직 한국교회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을 찾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숫자가 참된 복음의 역사를 통하여 천국 백성으로 거듭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우리는 교회의 침체와 그 해결 방안을 운운하기 전에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주님께는 “죽은 자로다”하는 책망을 들었던 사데 교회와 같은 현실을 안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잃어버리고 강단은 죽어버렸다. 앞에서 많이 살펴본 것처럼 자기 욕심대로 행하고 반목하는 우리의 행위에서 온전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해야 할 것이다(계 3:3).

우리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며 기다리는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실천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역사를 허락하시면 우리의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 먼저 소생하게 될 것이요, 교회 밖의 많은 택자들이 돌아와 통회하며 주를 경배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각성을 위해 우리의 죄성을 포장하지 말고 회개하여 거룩하게 하기를 힘쓰며, 성령의 주권적 능력을 인정하며 마음을 겸비하게 해야 한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비웃음거리로 만든 우리의 모든 부도덕함과 버리지 못한 탐욕들을 주 앞에 고하며, 우리가 여전한 인적 물적 넉넉함으로 말미암아 자만했음을 회개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 감당

우리는 세상을 향한 책임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세상이 교회를 보는 눈이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더라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 이원론적 신앙을 버리고, 일상생활과 생업 가운데서 거룩한 신자로서 살아갈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신자는 흩어진 교회로서의 자의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없이 우리는 참된 개혁 신앙을 운운할 수 없다.  이것이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 중에서 교회가 사회적인 담론에 공적인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가의 문제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이다.

물론 공적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사회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밖에 없다.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수적인 교회가 독재정권과 같은 명백한 부조리에 침묵하고 순응하였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나아가 현재 시국에서 옳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모습들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구비하도록 힘쓰고 필요할 때 내야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회의 선지자적 의무 중 하나다. 이를 등한히 했을 때, 교회를 향한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은 ‘이유 있는 고난’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한국교회의 궁극적인 회복은 이벤트성 예배나 행사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중 잃어버린 것과 허물어진 것을 회복하기를 힘써야 한다. 아무쪼록 한국교회에 주님의 영광을 향하여 마음이 불타오르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깊이 취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교회를 각성하게 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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