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층 내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동시에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1. 서론

2013년 12월 김정은에 의한 갑작스런 장성택 처형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성택은 김정은 정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김정은을 어려서부터 돌봐주고 키워준 고모부인데다 김정은이 권력을 차지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결정적 기여를 한 일등공신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가족과 같은 인물을 가장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전광석화같이 신속하게 숙청했기 때문이다.

숙청은 사실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정치행위라고 말할수 있다. 북한에서 정치적 반대파 제거를 위해 단행되어 온 숙청은 극단적인 정치행위가 아니라 북한정치에서 흔히 볼수 있고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으로부터 시작된 북한의 역사, 김씨 왕조의 70년 역사는 한마디로 ‘숙청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8.15 광복과 함께 북한에 들어와 권력을 잡은 김일성은 1994년 7월 사망할 때까지 집권 50년 동안 수많은 정적들을 숙청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아들 김정일에게 물려주었다. 김정일 역시 숙청을 통해 권력을 공고화하고 세습의 방법으로 아들 김정은에게 그대로 넘겨주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김정은에 의한 장성택 숙청은 그리 놀랄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장성택의 숙청은 그 명분이나 방법에 있어서 북한 정권 출범이후 지금까지 김씨 왕조가 대를 이어 통치해온 70년 북한 역사상 잔혹함과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앞으로도 김정은은 자신의 미숙한 통치능력과 경험부족 등을 감추고 취약한 권력기반을 공고화하기 위해 통치에 방해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이건, 그리고 그 인원이 얼마이건 관계없이 잔인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숙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은 이영호 총참모장과 장성택 국방위부위원장과 같은 핵심권력계층 뿐만아니라 리설주의 사생활을 유포시켰다는 혐의로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9명의 예술인들을 기관총으로 공개처형하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바 있다. 또한 일반 주민들도 공개처형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였다. 남한의 비디오물을 유포시키고 단순히 한번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전국각지에서 70여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공개처형하였다.

김정은은 공포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유일영도체제를 확고히 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공개처형이 북한고위층과 북한주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고 김정은정권의 취약한 권력기반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 김정은 시대의 숙청과 홀로서기

김정은은 2010년 9월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인된 후 2년 만인 2011년 12월 17일 부친 김정일의 사망으로 후계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지도자가 되었다. 3대 세습에 의해 지도자로 등극한 20대의 김정은은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부친 김정일이 자신을 보좌하라고 붙여준 주변 인물들을 대부분 제거하거나 숙청하였다.

김정일 시신을 운구했던 군부인물 가운데 가장 먼저 제거된 대상은 김정일 사망 불과 4개월 만에 숙청된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우동측이다. 인민무력부장으로서 김정일 시대 핵심실세였던 김영춘도 김정일 사망 4개월 만인 2012년 4월 노동당 군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었던 김정각은 김영춘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되었으나 불과 8개월 만인 2012년 12월에 해임되어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물러났다.

특히 김정일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총참모장 이영호는 김정일 사망이후 7개월 만에 전격 숙청되었다. 이영호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최고위급 간부가운데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숙청된 인물이다. 이외에도 지난 2년 동안 내각총리와 국가안전보위부장, 인민보안부장 및 북한국 작전국장을 교체하였으며, 군단장이상 20여 명, 중앙당 부장급 이상 96명 중 40%인 38명, 내각의 장관급 인사의 118명중 47%를 교체하였다.

김정은 시대 숙청의 절정을 장식한 사건은 단연 장성택 숙청이다. 2013년 11월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리룡하, 부부장 장수길 등에 대한 처형으로 시작된 장성택 숙청은 12월 12일 절정을 이루었다.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12월 8일 형식적으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해 장성택 숙청을 결정하고 현장에서 체포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나흘 후인 12월 12일에는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 처형을 언도하고 즉시에 집행하였다. 이로서 김정은은 권력승계 2년 만에 인간적으로도 가장 가까웠고 김씨 정권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해온 고모부 장성택을 무자비한 방법으로 전격처형함으로써 선대로부터 권력만 세습한 것이 아니라 숙청의 역사 역시 3대에 걸쳐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김정은 시대의 숙청은 취약한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고 권력 찬탈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김정일 시대보다는 조부 김일성 시대와 유사하다는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김정은 시대의 숙청이 김일성 시대와 같이 권력투쟁의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 1월 20일(월) 서현교회에서 열린 한목협 신년기도회 & 열린대화마당에서 경민대학교 인성교육원 북한학과 강명도 교수가 첫번째 강사로 나서 최근의 북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 숙청사로 본 북한정치의 특징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김씨 3대 왕조 정치역사는 곧 숙청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북한정치와 숙청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정치와 숙청을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은 북한사회가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이 독재자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재자가 차지하고 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은 더더욱 허용되지 않는 1인 독재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씨 절대 왕조라도 아무 때나, 아무런 조건 없이 무작정 숙청을 단행한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의 숙청은 그 명분과 방법 등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정권유지에 위기가 발생하거나 고비 때마다 감행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이 김씨 3대 왕조 70년 동안 숙청과정에서 나타난 첫 번째 특징이다.

북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때로는 권력유지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때로는 권력유지에 필요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죄 없는 인물들을 정치적 희생물로 만들어 숙청하기도 하였다. 역대 김씨 왕조 정권은 자신들의 실수와 리더십 부족으로 인한 정책실패로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불만과 반발이 고조됨으로써 정권이 흔들리거나 위기에 처할 경우 정적들에게 책임을 전가해 숙청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해 왔다. 김일성이 1956년 8월 전원회의를 계기로 소련파. 연안파를 숙청한 것이나 김정일이 1997년 노동당 농업담당비서 서관히 등을 처형한 ‘심화조 사건’도 그렇고 김정은이 장성택을 숙청한 것 역시 모두 주민들의 고통과 불만이 가중됨으로써 정권유지에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공통적인 원인이 내재되어 있다.

둘째로, 북한에서 숙청대상들에게 ‘간첩’ 또는 ‘반당반혁명분자’라는 죄명을 가장 많이 씌웠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북한은 극도에 이른 주민들의 고통과 불만을 잠재우고 그들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숙청 대상들에게 북한주민들이 가장 큰 범죄자로 여기는 ‘간첩’ 또는 ‘반당반혁명분자’라는 딱지를 붙여 처형하였다.

셋째로, 북한에서의 정적 숙청은 정권위기가 심각할수록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숙청방법에 있어서도 보다 잔인하다는 특징이 있다. 김일성이 1953년 전쟁패배의 책임을 물어 남로당 출신들을 숙청할 때 그들을 ‘간첩’으로 낙인찍어 신속하게 처형한 것도, 김정일 서관히(1997년)와 박남기(2010년)를 ‘간첩’으로 몰아 공개처형했을 때도 그랬다. 이와 함께 최근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아 불과 4일 만에 전격 처형한 사례를 돌이켜보면 알 것이다.

3) 김정은 시대 숙청의 특징과 배경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정적에 대한 숙청작업이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다를 바 없다. 물론 김정은 시대의 숙청이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권력 찬탈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단행되고 있다는 점은 김일성 시대의 숙청과 유사하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는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김정은 시대 숙청의 가장 큰 특징은 첫 번째로, 숙청 과정과 방법에 있어서 잔인함과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숙청을 가장 많이 한 김일성 시대에도 숙청대상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 장면까지 공개하지는 않았으며, 아무리 간첩으로 몰아 숙청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로 예의는 지켰던 것이다. 사실 숙청대상에 대한 공개처형은 김정일 시대에 이르러 본격 도입되었다. 김정일은 극도에 이른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주민들에게 보다 높은 강도의 충격과 공포심을 줄 수 있는 ‘공개처형’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김정일이 했던 공개처형도 모자라 고모부인 장성택에 대한 현장체포 및 재판 장면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불과 4일 만에 전격적으로 처형하고 그 결과 역시 공개하였다. 이로서 김정은은 권력유지를 위해 고모부까지 처형하는 극히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찍혔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이름은 냉정함과 비정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와 같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에 대한 숙청과정을 자세하게 공개한 것은 ‘숙청’이라는 공포정치 방식의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로 인한 분노와 원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이 장성택 공개 숙청을 통해 노리는 선전효과만큼이나 주민들의 불만과 고통의 강도 역시 심각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김정은이 집권한지 불과 2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인사들을 제거 또는 숙청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이후 불과 4개월 만에 김정일 시신을 운구했던 8명의 멤버 가운데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을 숙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이들 대부분을 제거하였다. 그 과정에 군 총참모장 이영호와 국방위 부위원장 장성택이 숙청되고 인민무력부장 김영춘과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정각은 교체되었다. 핵심실세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은 측근인물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내각총리 최영림도 박봉주로 교체하였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당·정·군의 고위급 간부들이 교체되거나 제거되었다.

이와 같이 김정은이 집권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대규모적인 숙청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내정된 지 3년 만에, 그리고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2년만에 갑작스런 김정일의 사망으로 떠밀리듯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권력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특징은 속전속결로 숙청을 결정하고 처형을 단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숙청의 속도에 있어서는 과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총참모장이였던 이영호의 경우 2012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18주기를 맞아 김정은 등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을 공식 참배한 후 8일 만인 7월 15일 전격 해임되었다.

장성택에 대한 숙청과정도 마찬가지다. 장성택이 공식석상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시점은 방북 중에 있던 일본 참의원의원 안토니오 이노키를 만난 2013년 11월 7일이다. 그 후 1개월 만인 12월 8일 장성택이 체포되었고 12월 12일에 처형되었다. 물론 장성택에 대한 이미 11월 중순부터 조사가 진행되었고 12월 8일 공식 회의를 열고 숙청을 결정한 것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인자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에 대한 조사를 1개월 만에 끝내고 그 결과를 갖고 숙청을 결정한 뒤 4일만에 처형한 것은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용어가 없을 정도다.

그토록 많은 정적들을 숙청한 김일성도 최대의 정적이었던 남로당 총수 박헌영을 숙청할 때에는 그를 체포한지 2년 4개월 만에 재판을 열어 사형을 선고하였으며 그로부터 7개월 뒤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물론 박헌영을 제외한 남로당 세력들에 대해서는 체포 및 기소 후 3일 만에 재판을 열고 그로부터 4일 만에 사형판결이 언도된 바 있으나, 그들에 대한 처형은 한참 뒤에 실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제거 및 숙청이 속전속결로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 외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영호나 장성택 제거 및 숙청을 주도한 세력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이며, 이는 곧 김정은 정권 주도세력의 불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4) 향후 전망

김정은 정권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2년 전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의 행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왜 이영호와 장성택 등 객관적으로 보면 충신이라고 할 만한 측근들을 사정없이 숙청했는지 그 배경을 잘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영호와 장성택에 대한 숙청은 측근들 상호간의 충성경쟁이나 갈등의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 대한 숙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력투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2년 만에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권력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실제적으로도 이영호와 장성택 모두 김정은의 권력유지에 직접적으로 방해되거나 위협적이라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에 대한 숙청은 측근들 상호간에 갈등과 충성경쟁의 산물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장성택 숙청은 강력한 대북경제제재에 따른 경제난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이 장성택을 숙청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것 가운데 해당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부정부패나 부적절한 여자관계, 마약복용 정도가 해당되고 나머지 부분들은 장성택 숙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장성택은 김씨 3대 왕조가 저지른 과오와 잘못을 모두 뒤집어쓰고 처형된 정치적 희생물에 불과하다. 그런데 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내세운 명분 가운데 주목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장성택이 귀중한 지하자원과 영토를 싼값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를 감행했다고 지적한 내용이다. 물론 이권을 둘러싼 집권층 상호 간의 알력과 갈등이 장성택 숙청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장성택에 대한 숙청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이에 따른 북한내부의 경제난 악화로 인해 작아진 파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단 시일 내에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확고해지고 경제난이 해소됨으로써 누구에게나 충분히 차려질 수 있을 정도로 파이를 크게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영호·장성택 숙청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최용해의 움직임이다. 장성택 숙청으로 확실한 2인자로 자리매김한 최용해로서는 이제 거칠 것이 없다. 이러한 최용해와 그를 견제하려는 세력 간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표출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과연 최용해가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최용해도 ‘백두산 혈통’이라는 측면에서는 김정은과 다름없기 때문에 그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 기회에 김정은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장성택 숙청의 학습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북한에 있는 김정은 불만 세력이 장성택과 같이 처형을 당하기 전에 반김정은 액션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언급한 대로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는 동시에 필요한 대응방안을 사전에 면밀하게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1월 20일(월) 서현교회에서 열린 한목협 신년기도회 & 열린대화마당에서 경민대학교 인성교육원 북한학과 강명도 교수가 첫번째 강사로 나서 최근의 북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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