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무등산에 따라 다녔던 둘째 딸이 캐나다에 산다.
교회 일에 항상 분주했다가 은퇴한 부모를 위해 록키 관광을 계획했다.
사위가 미리 답사했던 곳으로 동행하며 안내했다.

7월1일. 모레인호수(Lake Morain)로 가려고 밴프 캠핑장에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아침의 록키와 호수에 비치는 반영의 조화가 아름답다고 한다.
1시간쯤 달려서 레이크루이스 입구를 지나 침엽수 울창한 오르막길을 달리니 7월, 여름답지 않게 눈이 하얗게 쌓인 록키가 열린다.

9시. 밝은 햇살이 열 봉우리(The Ten Peaks) 연봉의 얼굴을 환히 비춘다.
뾰족뾰족한 만년설 3천 미터 고봉(高峰)들과 얼어붙은 빙하도 신비하지만, 눈 녹은 계곡 물이 모인 옥빛 모래인 호수(해발 1884m)와 울창한 침엽수림의 조화는 환상적인 자연 경관을 연출한다. 관광객 대개는 이곳을 구경하고 떠난다.

우리는 이곳에서 라츠벨리(Larch Valley) 등산을 시작한다.
록키산맥의 열 봉우리 절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을 코스다.
최고봉인 마운틴 델타(Mt, Deltaform. 3424m) 좌우로 열폭병풍 같은 경관은, 전에 사용했던 화폐(20달러)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등산로에 들어서며 하늘를 쳐다본다.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쉬어가는 뭉게구름, 사방으로 울창한 침엽수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피부색이 다른 얼굴의 등산객.
아! 마음이 설레고 흥분이 된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손자 녀석 보다 할아버지가 더 즐거워하며 앞장선다.
자스퍼와 밴프로 다니면서 록키산맥을 멀리서 쳐다보았고, 햇빛 따라 시간 따라 물빛이 변하는 호수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감탄했던가. 

경고판이다.
곰이 위험하니 반드시 4인 이상으로 팀을 이루어 입산하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일행이 다섯이고, 곰 퇴치 가스도 휴대했다.
앞뒤로 등산객이 이어지니 오늘은 이 부분 안심이다.
가파른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경사로를 만들었다.
무등산을 자주 다녔던 나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가다 쉬고 또 쉬며 천천히 오른다.
아내는 몇 해 전에 발목에 인공관절을 넣어서 5급 장애자가 되었다.
딸이 어머니와 함께 걷는다. 조금만 올라가면 평지 같은 길이 나온다며 힘을 보탠다. 

지극정성을 보이는 사위와 딸의 눈치로 보아 어머니와 아버지가 꼭 보았으면 하는 감추어진 절경이 있는 것 같다. 주저앉으면 다람쥐들이 쫓아 나온다.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호수가 에메랄드 빛깔이다. 따라오던 사람들이 앞질러 나간다. 
 

▲ 왕복 6시간 산행, 저희 부부에게 생애 최고의 여행이었습니다. 7순 아버지를 위한 자녀들의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2시간을 걸어 라츠 삼거리를 지나니 평탄하고 완만하다.
해발 2천 미터 위에 올라섰다. 숲을 벗어나니 하늘이 환히 열린다.
와! 감탄과 환호성이다.
헐떡거렸던 숨길이 확 트인다. 흐르는 계곡 물에 손을 적신다.
빙하가 녹은 얼음냉수다. 엄청 힘들었지만 한 순간 힘이 솟구친다.
잘 왔다. 절경이다. 너무 좋다. 

딸이 또 엄마 손을 이끈다. 조금만 더 가잔다. 산정의 또 다른 호수가 아름답단다.
힘들어 하는 아내의 손을 붙잡아 이끌면서, 한라산 남벽과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던 때를 생각하며 몇 걸음만 더 가보자고 권했다.
숲을 지나니 등산로 양쪽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한 뼘 꽃대에 동전만 하게 순백으로 핀 꽃이 쫙 깔렸다. 웨스턴 아네모네란다.
눈 속에 깊이 묻혔다가 싹틔워 피어나는 생명의 강인함이 경이롭다.
노랗게 손톱만큼 한 꽃들도 많다.
사위가 꽃을 카메라에 담는 내게 길을 벗어나지 말란다.
작은 야생화 하나, 동물, 자연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단다.
그렇다 자연보호는 인간의 행복한 삶의 조건 아닌가. 

열 봉우리 앞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 모두가 고맙다. 늙고 피곤한 몸, 더불어 살며 혼탁해진 심령, 무디어진 감정을 생기로 채운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경배와 감사의 찬양을 올린다. 

우보(牛步) 왕복 6시간.
하산 길에 다시 보는 모레인 호수는 또 다른 빛깔이다.
록키는 산 그대로 자연의 조화요 신비인데, 고희(古稀) 노인 내 얼굴은 깊은 주름살 백발이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사람도 사람답게 살았더라면 아름답고 행복했을 것을.
묵언엄위의 록키를 떠나며 아쉬워하는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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