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문교회(이상민 목사)가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0년간 시대마다 교회로서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온 대구서문교회의 존재감은 크다. 100년의 역사도 그렇지만 사회적·신학적·목회적 측면에서 사회와 교단에 끼친 영향력이 지대하다. 대구서문교회는 크게 세 부분에 있어 시대적 사명을 감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은 ‘교단섬김’이다. 대구서문교회는 교단의 총회장을 세 사람이나 배출한 전국 유일의 교회다. 제17회 총회장을 지낸 염봉남 목사를 필두로, 명신홍 목사(제38회), 이성헌 목사(제73회)가 총회장을 지내면서 교단을 섬겼다.

둘째로 ‘보수신학 파수의 선봉장’이었다. 에큐메니컬 분쟁 당시 대구서문교회는 그 중심에 서서 보수신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대구서문교회는 지역과 교단에서 갖는 영향력은 컸다. 그런 대구서문교회가 보수신학을 파수한 것은 당시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보수신학을 지키는 분수령이었다.

셋째, ‘지역섬김’이다. 과거 대구서문교회는 사회계몽, 애국애족 실천 등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근래에는 IMF 사태 이후 10년 넘게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 사역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95주년을 기념해 사회복지법인을 세워 정신지체장애인의 자활과 자립을 돕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지역을 섬기는 노력을 꾸준하게 전개하고 있다.

대구서문교회 성도들이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을 실시한 본당에서 10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새로운 100년에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우뚝 설 것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대구서문교회 성도들이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을 실시한 본당에서 10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새로운 100년에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우뚝 설 것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대구서문교회가 이처럼 시대마다 필요한 사명은 감당한 것은 역대 당회장의 특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동안의 5명의 당회장은 각자 선명한 목회적 성향을 보이면서 교단과 지역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1912년 5월 21일 남문안교회에서 분립해 달남교회로 출발한 대구서문교회는 안의와 선교사를 중심으로 사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사회 폐단이었던 술과 담배, 노름 등을 금지시키는 운동을 펼쳤으며, 문맹퇴치에도 일조했다. 또한 삼성학원이라는 야간학교를 세워 사회의 계몽운동을 담당했다. 1919년 2월 8일 대구 삼일만세운동에 앞장서며 애국애족의 투철한 신앙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1대 당회장인 염봉남 목사 시대는 ‘생활신앙’의 기초를 놓았다. 염 목사는 유교적·윤리적·도덕적 처신에 엄격했다. 교인들의 생활에 기독교인으로서 철저한 기준과 틀을 잡아주었다.

제2대 당회장은 정재순 목사였다. 정 목사는 일제의 강제병합 시기 출애굽기, 여호수아, 예언서 등을 설교하면서 나라사랑을 가르쳤다. 그는 대구의 삼일운동 당시 교인들을 데리고 앞장섰다가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제3대 당회장으로 명신홍 목사가 있었다. 학자적 목회자로 불렸던 명신홍 목사가 사역하던 시기 밥 피얼스 목사, 찰비스 목사, 반 하우스 목사 등과 같은 세계적인 사역자들과 교류하면서 해외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외국선교사가 가장 많이 머물기도 했다. 이외에도 학생신앙운동인 SFC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제4대 당회장으로 이성헌 목사가 45년간 대구서문교회를 담임했다. 대구서문교회의 존재감이 커진 것은 바로 이때다. 자유주의 신학 분쟁 당시 유학 중이던 이성헌 목사가 급히 귀국해 대구서문교회에 부임했다. 이성헌 목사는 보수신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유서를 써놓고 날마다 강단을 지켰고, 갖은 협박에도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해 마침내 보수신학을 지켜냈다. 이후에도 교리교육과 탁월한 설교로 대구서문교회뿐 아니라 영남지역 보수주의 신학과 신앙을 뿌리내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어 1995년 이상민 목사가 5대 당회장으로 부임했다. 이상민 목사는 지난 역대 목회자의 탁월한 목회리더십과 신학적 영향을 받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나눔과 섬김의 목회를 접목해 오고 있다. 이상민 목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이웃에게 행복을”이라는 표어를 기반으로, 교회와 사회, 이웃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의 부임 이후 장애인과 어르신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사회복지법인 설립, 노숙자무료급식, 12년간 무료진료 실시 등 지역사회가 기뻐할 일들을 꾸준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대구 시내 중심부에 있는 대구서문교회도 교회성장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는 교회로서 새로운 이정표가 필요한 시점에 놓인 것이다. 이를 위해 대구서문교회가 선택한 것은 개교회성장이 아닌 대구의 교회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이다. 역사와 전통을 기초로 이웃교회에 힘을 주는 교회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실시했다.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의 청소년과 청년 사역을 활성화시키고, 기독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사를 했다. 넓은 무대와 우수한 조명과 음향을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구서문교회가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펼치는 기념사업도 맥락을 같이 한다. 4월 30일부터 3일간 총회장 이기창 목사를 강사로 부흥성회를 개최했고, 새로운 100년을 위해 섬길 일꾼을 세웠으며, 5월 20일 100주년 감사예배도 드린다. 대구시민과 지역교회를 위해서는 5월 19일 기념음악회와 100명에게 무료개안수술을 지원한다. 이외에도 100주년을 기념해 필리핀과 중국에 교회를 건축하는 등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대구서문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 또 다른 100년의 달음질을 힘차게 하고 있다.

“이웃교회에 힘이 되는 교회될 터”

인터뷰/ 이상민 목사

“저희 교회의 지난 100년 역사를 주관해 오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우수한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지역복음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웃교회에 힘을 주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은 대구서문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상민 목사(사진)는 ‘역할론’을 강조한다. 새롭게 단장한 교회 공간을 지역의 교회와 단체에 공개하고, 교회를 하나의 문화공연장으로 기독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저희 교회의 지난 100년 역사를 주관해 오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우수한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지역복음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웃교회에 힘을 주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은 대구서문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상민 목사(사진)는 ‘역할론’을 강조한다. 새롭게 단장한 교회 공간을 지역의 교회와 단체에 공개하고, 교회를 하나의 문화공연장으로 기독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상민 목사의 목회는 섬김 목회로 점철된다. 보통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장애인, 노숙인, 의료사각지대의 저소득계층 등을 위한 섬김 사역을 꾸준하게 펼쳐왔다. 이와 관련해 이 목사는 “대구서문교회를 만난 것은 제게 큰 목회적 축복입니다. 45년간 철저한 개혁주의 신앙 교육을 받아온 터전 위에 동적이고 실천적인 목회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분석한다.

그는 이어 “지난 100년의 역사가 그랬듯이 앞으로도 지역과 교단을 위해 시대적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대구서문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많은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