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오늘의 한국교회는 위기 상황이다. 교회의 성장은 멈추었고 국민들은 교회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교회를 향해 크게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판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세상의 선거를 감시하고 바르고 정의로운 선거를 위한 파수병의 기능을 해야 할 교회의 선거가 세상을 능가할 정도로 부패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총회장 선거나 한국기독교총연합의 대표회장 선거에 금품살포를 비롯한 수많은 부끄러운 일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한국교회는 거의 치명상을 입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재적인 총회 선거제도의 개선 방안이 있을까?


I. 한국교회의 위기

1. 번영의 신학과 결탁한 한국교회

오늘의 한국교회는 번영의 신학과 많이 결탁되어 있다. 출세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신념이 한국교회 안에 깊이 침투해 있다. 일반 평신도들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교회의 목회자들도 이렇게 설교하고 있고 또한 자신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얻고 성공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가 많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 이 예수님의 말씀은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많은 한국교회 내에 살아 있지 않다. 많은 한국교회의 꿈은 하나님도 섬기고 많은 재물도 얻는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하나님과 재물이라는 우상이 공존하고 있다. 재물과 하나님 사이의 우선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있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많은 한국교회는 예수 믿어서 성공한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출세하고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설교한다. 출세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밝히 알 수 있는 예수의 길은 섬김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10:45 ). 번영과 출세와 영광스러운 자리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예수께서 당하신 시험의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자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정확하게 걸려드는 것이다. 만국의 영광과 권력은 참된 제자의 길을 방해하는 마귀의 결정적인 도구이다.
교회는 섬김의 길을 가야 하고 목회자들은 섬김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제자여야 한다. 목회자들이 총회장이라는 영광스러운 감투를 위해 이전투구 하면 이는 목회자의 길에서 철저히 이탈한 것이다. 엄청난 금품을 살포해서 총회장에 당선되면 내가 총회장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된 것이라는 기가 막힌 자기 신성화를 해서는 안 된다. 불의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총회장이 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면 그 순간부터 지나 온 그들의 모든 행적을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신성화시키는 포장을 이제 뜯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 그들의 추악한 욕망이었고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불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 한국교회의 바른 길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번영과 성공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속단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묵묵히 섬기는 자와 함께 계신다. 섬김의 길이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고 마귀 권세를 무너뜨리는 길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길이다. 영광과 하나님을 같이 추구하면 안 된다. 이 땅에서 섬김의 길을 간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2. 총회장(교단장) 선거의 위기

총회장 선거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위기였지만 개선되지 아니하고 갈수록 위기가 더 깊어지고 있다. 이 위기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섬김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번영과 영광의 길을 가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위기이다. 하나님과 영광을 아울러 추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위기이다. 이 위기는 이제는 교회 안의 일에서 벗어나서 세상의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총회장 선거만이 위기가 아니다. 최근의 한국 기독교 총연합에서 일어난 대표회장 선거의 비리와 비극은 한국교회의 부패한 모습을 온 세상에 알리는 비극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버림받은 소금이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짓밟히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국민들로부터 버림 받는 최대의 위기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 세상 영광을 함께 추구하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하고 삶의 결단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교회적으로는 섬김의 삶을 살아 간 사람들의 삶의 귀중함과 영광됨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영광을 분토와 같이 여기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정신의 형성과 더불어 문제가 되는 일에 대한 실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총회장 선거를 하게 되면 구조적으로 금품 살포를 비롯한 불의한 상황으로 말려들어가는 문제를 실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상당수의 총회장 후보들은 돈도 쓰지 않고 바르게 총회장 선거에 임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 원했던 길을 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총회장 선거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 제도 자체를 개혁하지 않고는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면 과연 해결책은 있는 것일까?




II. 총회 총대(대의원) 선거 개혁을 위한 제안

1. 총회 총대는 3년을 하면 반드시 3년을 쉬게 해야 한다

총회 선거를 개혁하기 위해서 첫째로 중요한 것은 총회 총대 선거를 개혁하는 것이다. 총회 총대 선거의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적으로 총회 총대가 될 수 있는 햇수를 3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3년을 총회 총대로 봉사하면 반드시 3년 이상 총회 총대로 나오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1년 총대로 봉사한 사람도 그 다음 해에 총대로 선출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3년 이상 총대로 나오면 안 된다. 2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년이 지난 다음에는 다시 최대 3년을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총대로 봉사하는 사람은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으로 제한하고 1년이든 2년이든 3년이든 한번 봉사한 사람은 최소한 3년을 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첫째 이유는 총회 내의 불필요한 정치꾼의 활동을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총대의 명단을 보면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긴 세월동안 같은 사람들이 총회의 총대가 되고 그런 까닭에 자연스럽게 정치조직이 형성되고 불필요한 정치꾼들이 많이 활동하게 된다. 정치세력, 정치조직을 와해시키고 정치꾼들의 활동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총대들을 물갈이 하는 것이다. 해마다 최소한 1/3을 바꾸는 것은 비정상적인 총회 내의 정치조직을 없애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꾼들을 추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총회 총대는 3년을 하면 반드시 3년을 쉬게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해마다 최소한 1/3의 총대가 바뀌기 때문에 총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총회가 젊어질 수 있다는데 있다. 현재의 총대는 거의 50대 후반에서 60대가 압도적이다. 그것도 50대 후반의 총대가 상당수 있지만 사실상 총회는 60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는 수적으로 60대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60대가 실질적으로 모든 중요 요직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회가 참으로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이려면 상당수의 젊은 총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총회 총대를 3년 하고 3년 쉬게 하면 각 노회에서는 상당수의 상대적으로 젊은 총대가 선출될 것이다. 이 젊은 총대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역량 있는 많은 인재들이 각 노회의 서열 존중의 문화 때문에 총대로 피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총회의 개혁은 총회의 구성원이 바뀌는 것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이 새로 총회에 들어오는 총대들은 아직 어떤 정치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까닭에 총회의 뿌리 깊은 정치조직을 붕괴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물결이 될 수도 있다.


2. 총회 총대의 30%는 전문가로 채워야 한다

총회가 제 기능을 하려면 총회 안에 많은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총회가 환경이나 에너지 분야에 대해 어떤 성명을 발표하려면 이 분야에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통일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려 해도 마찬가지이다. 총회가 단지 총회장 선거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세상을 바르게 인도하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구현하고자 한다면 상당수의 전문가들을 총회는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총회의 구성원을 보면 전문가들은 매우 적다. 각 노회에서 전문가들이 총대로 선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회의 총대 선출이 노회 정치의 산물이라고 보면 전문가들이 이 노회 정치에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혹자는 총회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위촉해서 의견을 들으면 충분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해온 방법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전문가들을 모셔 와서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다. 그러나 총회 안에 전문가가 있는 것과 손님으로 모시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다. 교단 안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지만 현금의 총회 구조는 이들의 역량을 거의 사장시키고 있다. 총회의 바른 발전을 위해서는 수많은 전문가들을 위해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그래야 참으로 일하는 총회가 될 수 있다. 총회를 위해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하고 총회의 총대라는 명예만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빨리 비워주는 결단을 해야 한다.


III. 총회장 선거 개혁을 위한 제안

1. 제비뽑기를 통한 총회장의 선출

1) 맛디아식 선출 방법

맛다아식 선출 방법은 예장 통합의 생명목회 협의회가 예장 통합 총회에 제안했고, 현재도 이를 추진하는 총회장 선출 개혁 방안이다. 이 방안은 총회장 선출에 하나님의 개입의 자리를 마련하자는 의도를 가진 것인데, 총회장에 입후보한 사람들에 대해 일차적으로 총대들이 투표를 해서 상위 2인을 최종 후보자로 정한 다음에 온 총회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에 제비뽑기로 마지막 한 사람을 정해서 총회장으로 모시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총회장에 입후보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다. 총회장에 입후보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하는 경우에는 총회장으로서의 역량에 근본적으로 미달하는 후보가 뽑힐 가능성이 있다. 또는 역량은 있는 사람이지만 총회의 일반적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총회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뽑힐 가능성도 있다. 맛디아식 선출 방법은 모든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일차 투표를 하기 때문에 자격 미달이나 너무 방향이 다른 입후보자는 이 투표에서 낙선을 시키고 자격이 있는 최후의 두 후보만 남겨두고 제비뽑기를 하는 방법이다.
제비뽑기를 하는 이유는 최종 결정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신앙적인 결단이 들어 있지만 총회장 선거를 위한 과열을 막자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이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거의 모든 총대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해도, 떨어질 확률이 50%나 되기 때문에 과열된 방식으로 선거 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계산이 들어 있다. 많은 금품 살포가 총회장 당선으로 바로 이어지면 후보자들은 이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금품을 살포해도 당선 확률이 50%를 넘지 않으면 이 유혹 앞에서 상당수의 후보자들이 자제를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맛디아식 선출 방법은 상당한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최종 2인의 후보에 들기 위해 여전히 과열된 선거 운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한계이다. 50%의 확률이면 적은 확률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50%에 들고 보자는 심정으로 선거 운동을 할 후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 때문에 맛디아식 선출 방법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최종 후보를 3인으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제안하고 있다. 최종 후보가 3인이면 확률이 33%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과열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2) 역맛디아식 선출 방법

역맛다아식 선출 방법은 맛디아식 선출 방법을 역으로 하는 것이다. 먼저 모든 후보자를 대상으로 기도한 후에 제비뽑기로 2인을 선출한 후에 이 2인을 대상으로 투표하는 방법이다. 맛디아식 선출 방법이 인간이 최종으로 2인을 정하고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낙점하는 것이라면 역맛디아식 선출 방법을 신앙적으로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2인 가운데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추첨을 먼저 하는 이유는 선거 운동 과열을 막기 위함이다. 맛디아식 선출 방법이 선거 운동의 과열을 상당 부분 방지할 수는 있어도 여전히 부정적인 선거 운동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역맛디아식 선출 방법은 선거 운동의 부정적 차원을 더욱 철저히 막아보자는 의도를 지닌 선출 방법이다. 아무리 선거 운동을 많이 하고 엄청난 금품을 살포해도 제비뽑기에서 뽑히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과열된 선거 운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제비뽑기로 2인을 뽑는 이유는 역량이 안 되거나 방향이 많이 다른 후보가 총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제비뽑기로 뽑힌 2인의 후보자가 모두 자격 미달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이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므로 역맛디아식 선출 방법은 선거 운동의 과열도 막고 자격 미달 후보의 당선도 막을 수 있는 상대적으로 좋은 방법이다.
제비뽑기를 어떤 형태로든지 총회장 선거에 도입한다는 것은 가장 역량 있는 후보를 총회장으로 뽑아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충돌될 수 있다. 총회에서 총회장을 투표로 뽑는 것은 가장 역량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대의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우연의 가능성이 있는 제비뽑기를 신성화시키면서 총회장 선거에 도입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이 비판은 물론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고 정당성도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총회장이 있었지만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 사람이 총회장이 된들 저 사람이 총회장이 된들 차이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 총회장을 하겠다고 엄청난 양의 금품을 살포하고 정치 조직을 만들고 상대 후보에게 모욕적인 비판을 하는 일 등이 이미 도를 넘어 교회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 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시정되어야 할 문제로 등장했기 때문에 제비뽑기를 일정 부분 도입하는 것이다.



2. 총회장의 명칭을 총회 머슴으로 바꾸는 방법

총회장 선거가 과열되는 가장 큰 이유는 총회장이라는 명칭이 갖는 상징적인 무게가 크다는 점이다. 사실 총회장이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장 당선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총회장이라는 명예스러운 호칭을 얻기 위해서이다. 총회장에 한번 당선되면 그는 평생 총회장으로 칭함을 받는다. 총회장 임기가 끝난 후에도 증경 총회장이라고 칭함을 받으면서 다른 목사와는 급이 다른 목사로 활동을 하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급이 다른 목사인 총회장이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많은 문제점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는 길이 있을까? 그 길을 찾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총회장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총회 머슴이라는 섬기는 종의 명칭으로 바꾸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사실 총회장은 총회를 섬기는 머슴이어야 한다. 영광은 오직 주님께만 가게 해야 하는데 인간 총회장이 자신이 모든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기독교는 가톨릭처럼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교황을 두는 종교가 아니다. 총회는 총회의 안건을 토의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하는 곳일 뿐인데, 총회가 모든 교회의 머리를 선출하는 장소로 둔갑한 것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형제자매 공동체이지 누가 높고 누가 낮은 그런 곳이 아니다. 교회 안에는 오직 섬기는 종이 있을 뿐이다.
총회장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은 그가 모든 교회의 머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머리가 없기 때문에 교회의 머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총회장이라는 명칭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볼 때 총회장이라는 명칭 보다는 총회 머슴이라는 호칭이 직무에 더 적절하다. 총회를 섬기기 위해 총회장에 출마했다면 당연히 총회 머슴이라는 칭호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총회장을 총회 머슴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명칭을 바꾸는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총회장을 총회 머슴이라고 불러 보라. 총회 머슴으로 당선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머슴이라는 사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총회장이라는 명칭은 총회의 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교회들에게 명령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할 것이고, 총회 머슴이라는 호칭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증경 총회장이라는 용어는 사라질 것이다. 증경 머슴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매우 괴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총회장은 총회 부머슴으로 부르고 노회장은 노회 머슴으로 부르면 된다.
총회장을 총회 머슴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 안과 밖으로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우선 교회 내적으로는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큰 효과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김의 길을 가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치는 큰 효과가 있다. 이는 성도들을 참 성도로 만들 것이다. 총회장을 총회 머슴으로 부르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도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모든 공직자들은 국민의 공복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국민을 섬기는 자들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을 통해 오는 나라이다. 세상 속에 섬기는 자가 많아야 하나님의 나라는 그만큼 더 성장한다. 교회가 총회장을 총회 머슴으로 부른다면 이는 세상에 교훈하는 바가 클 것이다. 세상이 교회를 보면서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공동체를 발견할 것이고 이는 세상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교회가 바른 교회가 되길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길을 가야 한다. 총회장이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이전투구 하는 한국교회는 이미 예수님의 길에서 너무나 많이 이탈했다. 총회장의 명칭부터 총회 머슴으로 고치자. 이는 바른 교회로 가는 새로운 시작이다.


3. 총회장을 총회 의장으로 부르고 총회의 기능과 조직을 바꾸는 방법

총회장을 총회 의장으로 부르자고 하면 총회장과 총회 의장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많이 다르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교회 개혁의 중요한 시작이다. 총회 의장은 총회장이 아니다. 총회 의장은 총회의 회의를 주관하는 의장이다. 곧 총회의 회의를 주관하는 사회자라는 뜻이다. 총회장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총회의 머리라는 의미가 강하다.
총회 의장은 총회가 끝나면 그 기능도 끝나는 것이다. 그러면 총회의 업무는 누가 책임지고 이끄는가? 총회의 업무는 총회 사무총장이 하면 된다. 이것은 입법과 행정을 나누는 것과 유사한데 총회는 입법적 기능을 하는 것이고 총회에서 결정된 것들은 사무총장이 책임을 지고 집행하는 것이다. 평상시의 총회를 대표하는 기능은 총회 사무총장이 하면 된다. 총회 의장이 총회를 대표하는 기능을 맡으면 그 자체가 명예가 되기 때문에 총회 의장 선거가 여전히 과열되고 선거와 관련된 타락한 현상들이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회 의장은 총회를 사회하는 기능으로 그의 업무는 끝나는 것이다.
UN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UN에 총회의 의장이 있다. 해마다 의장이 바뀌지만 의장은 있다. 그런데 UN의 일들은 사무총장이 집행하고 있다. 평상시의 UN을 대표하는 기능도 사무총장이 하고 있다. 총회 의장이라는 개념은 UN의장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면 총회 의장 선거 대신 총회 사무총장 선거가 과열되고 금품이 살포되는 타락 선거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사무총장 선거가 어느 정도 뜨거워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총회 사무총장은 4년 임기의 자리이다. 큰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존경받으면서 목회하는 목회자 가운데 과연 그 누가 4년 일하다가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사무총장 되겠다고 금품까지 살포하면서 문제를 야기할까?
총회장은 총회 의장으로 부르고 총회 행정은 사무총장이 책임지고 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는 총회를 실질적으로 일하는 총회로 만드는 방법이다. 현재의 사무총장은 해마다 바뀌는 총회장의 지시를 받드는 일로 바쁘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사무총장을 총회장의 비서나 총회 내의 힘 있는 목사의 비서로 만들면 안 된다. 총회는 역량 있는 사무총장을 뽑아야 하고 역량 있는 사무총장이 자신의 책임 하에 총회를 이끌어야 하고 그가 행한 모든 일은 4년 마다 총회에서 심판받아야 한다. 사무총장의 선임은 총회에서 투표로 정해야 하고 8년 이상 하는 것은 금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결언

한국교회의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인 총회 선거 제도는 시급히 개혁될 필요가 있다. 개혁의 방향은 총회의 총대를 3년 일하고 3년 쉬게 하고, 상당수의 전문가 총대를 보충하는 것이다. 총회장 선거는 총회장의 명칭을 총회 머슴이라고 칭하는 것이 좋지만 이렇게 하기 어렵다면 총회장을 총회 의장으로 부르고 총회의 구조를 바꾸든지 맛디아식(혹은 역맛디아식) 선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이 총회 선거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해결할 것이고,  총회 선거로 말미암은 많은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거 제도의 수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번영의 신학에 물들어 있는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인 섬김의 신학을 가르치고 섬김의 길을 가는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