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흘렀다. 곳곳에서 통곡의 기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믿음의 선배들의 땀과 눈물, 희생위에 세워진 120여년 한국교회의 전통을 지켜내지 못하고 한없이 추락시켜온 데 대한 뼈저린 반성도 이어졌다.

“오늘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기보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게 됐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로챈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주께서 주인 되심을 말이 아닌 머리와 가슴, 온 몸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13∼14일 경기도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한국교회, 회복을 기도하며 말한다’는 주제로 열린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제13회 전국수련회에 참석한 15개 교단, 350여명의 목회자들의 마음은 이렇게 하나로 모아졌다. 교단과 신학적 배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은준관 실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첫날 기조강연에서 파산한 미국 수정교회를 예를 들어 “미래 교회건축, 탈예전적 예배, 탈교단주의 상징이었던 이 교회의 몰락에서 ‘존재이유를 상실한 기독교 왕국’의 말로를 보는 듯해 슬프다”고 운을 뗐다. 이어 ‘래디컬’이라는 저서로 알려진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브룩스힐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임재할 수 있는 종말론적 공동체를 만들어 ‘미션 있는 대형교회’를 일궜다고 평가했다. 은 총장은 “한국교회의 미래는 말없이 교회를 떠나거나, 떠나려 준비하는 젊은이와 지식인들과의 ‘선한 싸움’에 달려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삶과 목회의 유일한 존재이유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성장지상주의, 성직자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분토처럼 여기고 종말론적 공동체, 하나님 나라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은 총장은 “한국교회는 더 이상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말고 오직 한 가지, 하나님 나라만을 ‘존재의 이유’로 하는 혁명적인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은 총장은 마지막으로 미국의 종교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은 교회의 공통점 3가지를 들어 한국교회의 살 길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살아남은 교회는 반드시 그 안에 ‘핵심 멤버들’이 있었다. 지역의 아픔을 읽고, 그 아픔과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했다. 최소 운영비로 생동감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미래 목회자는 신자를 목회 대상 내지 내 교인으로 취급해오던 성직자중심주의에서 가감하게 탈피,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목회를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럴 때 설령 한국교회가 2050년 400만~500만으로 축소된다 해도 그들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 나라가 된다면 역사의 변혁자로 우뚝 설 수 있다고 은 총장은 덧붙였다.

이어 열린 정책포럼에서 경상대 백종국(정치외교학과) 교수, 구포제일교회 이성구 목사 등은 “교회와 목회자가 하향평준화되고 있다. 자정능력조차 의심받고 있다. 한국교회 일각의 갱신의 몸부림을 비웃는 교회지도자들이 있는 듯하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타종교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건 목회자들이 이 같은 ‘지행(知行)불일치’와 세속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초심을 회복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또 목회자의 사소한 행동, 부주의가 전도의 문을 막을 수 있다면서 “젊은이들에게 교회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 “교회가 세속정치와 철저하게 거리를 둬야 한다” “목회자의 윤리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등 구체적 조언을 쏟아냈다.

백 교수는 “한기총 개혁이나 한기총 해체후 새로운 연합체 구성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불가능해보인다”며 “한기총을 해체하고 한국교회 정치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교회의 암적존재인 군소신학교의 난립 해결을 위해 강력한 인증기관이 필요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백 교수는 “한국교회가 역사적 오류를 극복하고 한국과 제3세계의 미래를 위한 모델 개발에 참여하면 한국사회에서 하나님 나라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목사는 “더 이상 아무도 한국 교회에 기대감을 갖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고 “한기총 사태 등 교계 지도자들의 부도덕성은 일부에 국한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해 기독교 전체의 철저한 몸부림, 즉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회개는 13일 저녁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의 설교와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이 목사는 ‘은총(은혜)의식’ ‘경계선 의식’ ‘종의 의식’ 등 다윗 왕의 3대 의식을 들어 목회자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게 하는 건 우리 자신의 공로의식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비전도 추한 야심과 야망으로 전락할 수 있다. 주의 종이라면서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는 무례를 범할 수 있다”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목회자가 주님을 향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유지하자고 했다.

“전적으로 하나님으 은헤라는 고백이 사라지면 은총의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로의식이 자리잡게 된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추한 모습이 없다. 인간됨의 아름다움은 불완전한성도 수용하는 것이다. 비전이 소중하지만 그 꿈과 비전의 경계선에 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노(No)’라고 하시는 데 토를 달지 말아야 한다….”

이 목사는 이같이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그동안 저 또한 수많은 유혹에 직면했었다”면서 “그때마다 QT(경건의 시간 묵상)와 함께 전도사 시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을 때 자신 있었던 통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적을을 떠올리고 주의 종임을 재확인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14일 오전에는 미국 덴버신학교 정성욱 교수가 말씀과 성령의 균형잡힌 신학 추구, 종말론에 대한 관심 확대 등 세계신학계의 흐름을 전하고 한국교회의 미래 방향을 역설했다. 정 교수는 “서구신학과 한국신학의 장점들을 창조적으로 통합하고 세계교회와 동등한 협력자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은 주일성수, 수요예배, 새벽기도, 철야기도 등 소중한 전통을 다시 강조하고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등 교회와 목회의 본질 회복에 최선을 다할 때”라고 했다. 이어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고 대형교회와 중소형교회의 상호 협력과 나눔 실천을 통해 건강한 교회 모델을 확산해야 한다”며 “교회는 세속화 경계를 뛰어넘어 초월적 본질을 회복할 뿐 아니라 신학교육의 개혁 또한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13일 수련회 중 열린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손인웅 명예회장, 전병금 대표회장을 비롯해 한목협의 새 임원진은 안성수양관 내 고 옥한흠 목사의 묘소를 찾아 옥 목사의 부인 김영순 사모를 위로하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교회를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김 사모는 “옥 목사님의 장례식이 끝난 뒤 가슴이 답답해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9개월 넘게 안성수양관에서 지내왔다”면서 “교회와 옥 목사 기념관 설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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