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8) 거룩성 회복을 위한 기도회

요한계시록 3장 1~5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려 하면서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넥타이를 매야 되는가? 오늘 우리 기도회의 주제가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한 기도회”입니다. 왜 우리가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같은 인식 아닙니까? 작금의 한국교회가 거룩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그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거룩성을 잃어버린 것도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교회의 생명은 거룩함 아닙니까?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교회가 죽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까만 넥타이를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루터의 얘기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지 않았는데... 우리가 거룩함을 잃어버렸을 지라도 하나님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 낙심할 필요없다. 절망할 필요없다. 오늘 우리가 회개하고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여기서 한국교회의 살 길이 열려질 것이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초록색 넥타이 골라 맸습니다. 오늘 여기서부터 한국교회의 생명이 시작되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요. 사데 교회 하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이 말씀 아닙니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무슨 뜻이에요? 무엇을 근거로 사데 교회는 살아있다 하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까? 본문 1절 주님의 말씀을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아마도 그들의 행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데 교회에서 나타나는 그런 행위들을 바라보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야”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실상을 보시는 주님이시지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살았다 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가 이렇게 다른 것이지요? 그것은 아마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잖아요? 여러분, 오늘의 교회를 판단하고 평가할 때 대부분 뭘 가지고 판단해요? 목사님들 평가할 때 뭘 가지고 평가합니까? 그 교회의 사이즈가 얼마나 될까? 모이는 숫자가 얼마나 될까? 그 교회의 1년 재정이 얼마나 될까? 그 교회의 건물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 무조건 많은 건 좋은 거예요. 무조건 큰 건 좋은 거예요. “아, 그 교회는 살아있어!”라고 우리는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게 사람들의 평가기준이지요. 사데 교회도 그런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그런 이름을 얻게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 사데 교회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저는 오늘 우리 교단의 문제도 똑같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교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랑했던 게 뭔가 하면 “우리 교단은 그래도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다. 우리 교단 신학교는 아직 좌경화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몇 안 되는 가장 정통주의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보수신학의 마지막 보루다.” 그게 우리의 자랑 아닙니까? 또 우리의 자랑이 뭐가 있어요? 우리 교단의 사이즈지요. 일만교회운동, 이만교회운동. 몇 백만의 성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 최대의 교단, 한국교회 장자교단. 우리 교단은 한국에서 제일 큰 교단 그게 우리의 살았다 하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주님도 그렇게 봐주시냐는 것이지요. 주님도 그렇게 인정해 주시느냐는 것이지요. 우리가 말하는 그런 요소들 때문에 주님이 우리 교단을 살았다고 인정해 주실까요? 아무리 힘센 사자라도 죽어있으면 개미에게 뜯어 먹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죽어있는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고양이가 생쥐라도 잡습니다. 교단의 사이즈가 문제가 아입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명분들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우리가 살아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해요. 여러분, 우리가 살아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기도제목 자체가 그걸 부정하고 있는 거 같아요. 우리가 우리의 거룩성을 시급하게 회복해야 한다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성은 내면의 문제고 영성의 문제입니다. 거룩성이 교회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얘기합니다. 거룩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생명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 교단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단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인가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소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면서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성령님이지요. 일곱 별은 말씀을 증거토록 하시기 위하여 각 교회로 파송하시는 주님의 사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어버린 이 사데 교회를 향하여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느냐? 그것만이 교회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 교회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사데 교회는 오직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성령님, 일곱 교회 사자가 증거하는 그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회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단의 문제도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어요. 물론 먼저는 여러분, 우리 교단이 거룩성을 잃어버린 것은 우리도 모르는 새 세속주의가 우리 교단 안에 들어왔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 교단은 자유주의 신학을 지켜내는 일을 굉장히 잘했습니다. 개혁주의 보수신학의 전통은 굉장히 잘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세속주의, 물량주의, 외형주의, 교권주의 이 세속조의의 침투는 잘 방어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어버린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지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 영으로 우릴 충만케 해달라고, 그 영으로 우리를 완전케 해달라고. 그리고 보내신 사자를 통해 들려주신 그 말씀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달라고 우리를 재무장시켜 달라고 다시 기도해야 됩니다.

이제까지 자유주의 신학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교단과 신학교를 잘 지켜왔던 것처럼 이제는 세속주의의 공격으로부터도 우리 교단과 신학교를 지켜내야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도 말씀하잖아요.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사실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보면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남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거든요. 우리에겐 아직 남은 것이 있어요. 다 죽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아직 내게는 남은 것이 있다고 말씀해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정통 개혁주의 보수신학은 너무나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거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과 섭리를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신앙을 우리가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직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시길 원합니다. 거룩하게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갱협이 우리 교단 안에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만 일깨면 되는데. 너는 일깨라고 말했어요. 일깬다는 말의 의미는 정신차린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갱협만 정신 차리면 됩니다. 우리에세보터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깨어서 우리가 정신 바짝 차려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것마저 죽지 않도록.

또 3절에서 그랬지요.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망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하면 아직도 우리는 살아날 기회가 있습니다. 교단의 현실 앞에서 한국교회의 현실 앞에서 까만 넥타이 매지 말자구요.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만 일깨면 됩니다. 우리만 일깨면 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 앞에 엎드리면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그 안에 붙잡고 계시는 주님께서 완전하시고 충만하신 성령을 우리 교회에 다시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에 다시 보내주실 것입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신 사자를 통하여서 말씀으로 우릴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신 이 역사를 오늘 우리의 기도에서부터 시작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소망 갖고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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