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회] 거룩한 행복
상태바
[기도회] 거룩한 행복
  • 권성수 목사
  • 승인 2011.02.28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1/02/28) 거룩성 회복을 위한 기도회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한 기도회가 교갱협 주최로 지난 2월 28일(월)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기도회는 2005년 9월 열린 거룩함과 순결함 회복을 위한 기도회 이후 6년만에 갖는 것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연이어 터지는 문제가 모두 합동 교단과 관련돼 있다는 위기의식과 자괴감에서 비롯되었다.

요한복음 15:5~1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능력을 상실한 교회

“교회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에 이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회에 지난 7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누구의 고백이신지 아시겠지요?

“저는 지난 10월, 3주간의 휴양 기간을 통해 일부 성도들과 미국 횡단 여행을 가며 적절치 못한 행동과 판단을 함으로써 동행한 성도들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주었고 본 교회에서의 주일성수를 범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누구의 고백인지 아시겠지요?

“처음 출마했을 때 양심과 법에 따라 선거를 치렀으나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패배한 후 ‘주여, 내년에는 흙탕물에 빠져서라도 대표회장이 되어 한기총의 개혁을 이루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돈 뿌린 선거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분의 고백입니다.

우리나라의 소위 대형교회 목사들의 고백이요,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기관장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 본인들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수치스러웠겠습니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서 숨어 지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비록 교인들 앞에서 고백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온 나라 앞에서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통탄스러웠을 것입니다.

대형 사건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봇물처럼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 소위 ‘장자교단’에서 가장 크게 터졌습니다. 우리나라 교단의 쌍벽을 이루는 합동과 통합에서 섹스, 머니, 폭력 사건이 터졌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와 관련해서 폭행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런 사건을 듣고 보고 있는 우리는 충격으로 가슴이 아프고 수치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교계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도 보도되었기 때문에 국민들 중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안티기독교인은 먹을거리를 찾아서 계속 달라붙고 있습니다. 사탄이 비방의 데시벨을 최대로 올려놓고 있습니다.

분명히 모델이 되는 목회자들이, 교회들이 있습니다. 근데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비난입니다. 분명히 안 그런 목회자도 교회도 있는데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제일 신뢰하는 직업은 무엇인가? <시사저널> 2009년 8월 4일자 기사에 의하면 목사가 불변의 1위, 부동의 1위가 되어야 하겠지만 사실은 소방관이 1위입니다. 간호사가 2위, 환경미화원이 3위입니다. 종교인으로서는 천주교 신부가 11위, 불교 승려가 18위, 개신교 목사가 25위입니다. 아마 지금 조사하면 개신교 목사의 신뢰도는 더 떨어질 것입니다. 기업인이 27위, 기자가 28위, 정치인이 33위라는 것이 우리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의 신뢰도가 부동의 1위, 불변의 1위가 되어야 설교가, 전도가 통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사건은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의 곪아터진 문제가 대표적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개신교가, 교단이, 우리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거룩성을 상실했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매순간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에게 붙어있는 것이 거룩입니다. 주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이 거룩입니다. 주님과 실존적, 생동적 관계를 맺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도 같이 못 박혔고, 주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같이 부활해서 주님과 신비적 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매순간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넘어질 뻔하면서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아무리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과 함께 만족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 이것이 거룩입니다. 세상의 것은 있든지 없든지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내가 주 안에 거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설교 준비를 위해서 들어왔다가 설교가 끝나면 나가 버리는 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그 말씀, 강단에 서기만 하면 예수님이 터져 나오는 그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렘 23:18)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설교를 준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24시간 묵상하고 암송하고 말씀에 생명을 걸고 사는 동안에 그 말씀으로 인해 심장에 불이 붙는 것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한국교회를 보고 이 사회를 볼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가슴앓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직업적인 설교자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강단에서 주님의 심정을 토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우리가 강단에 서서 교인들을 깨우는 사람들로서 불같은 말씀을 전했습니까? 방망이 같은 말씀을 전했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것이 거룩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대부분의 설교가 도덕 설교요,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설교가 아니니까 성도들이 이렇게 타락하고 교계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예수님께 포인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헬라인들이 “우리가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교인들은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도덕적 훈화가 듣고 싶어서 온 게 아닙니다.

정치 이슈를 듣고 싶어서 온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강단에서 매시간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강단에서 예수님을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하려면 말씀이 우리 안에 거주해야 합니다. 흠집을 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홈을 파야 합니다. 도로를 내야 합니다. 활주로를 내야 됩니다. 우리가 입을 열 때마다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거룩해집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에 많은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을 살펴보십시오. 14장부터 16장까지가 예수님의 성령론입니다. 그 중심에 15장 7~8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성령께서 예수님의 영으로서 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부각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죽음을, 부활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건축용어로 하면 투광 조명floodlighting이라고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무대에 예수님을 위치시키고 조명을 비추십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면 반드시 그 생명이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목회가 안된다, 개척이 안된다고 합니다. 교회가 쇠퇴하고 정체한다고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맞지만 진리 면에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어떻게 목회가 잘되고 개척이 잘되고 교회가 잘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생명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주님이 여러분의 삶과 교회와 한국사회에 나타나면 거룩해질 줄 믿습니다. 개척교회가 잘되고 목회가 잘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다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 강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고 흘러감으로 자신의 살아계신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럽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해 보세요. 야유합니다. 하나님을 다 알고 대대로 믿었는데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거룩을, 능력을 실제 생활 속에서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여러분의 강단과 삶을 통해서 교인들과 불신자들에게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행복

윤리 회복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거룩성 회복입니다. 거룩성 회복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접촉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고 흘러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원문에서 ‘강’은 복수입니다. 강 정도가 아닙니다. 목회 현장이 보통 풍부하고 풍성한 것이 아닙니다. 안된다는 말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생명의 약동이 있고, 전파가 있고, 파급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한국교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단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생동적 관계를 실존적으로 체험하면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강한 군대로 바뀌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게 하시고, 흘러가게 하실 때 마른 뼈들이 살아있는 강한 군대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보면서 안된다고 합니까?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마른 뼈가 있는 골짜기 같은 한국교회라 할지라도 주님의 생명이 약동하고 흘러가면 다시 살아날 줄을 믿는 마음이 용솟음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주님이 더 안타까워하십니다. 우리가 우는 것보다 주님이 더 울고 계십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에 대한 확신이 마음속에 불과 같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성 회복은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분수처럼 솟구치고, 하수처럼 흘러가는 것이 거룩성 회복의 모습입니다. 거룩한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제자가 될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예수님께 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미친 광인(狂人)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장인(匠人)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생동적으로 교제하면서 말씀으로 사는 것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거룩’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이 구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결과적인 측면에서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생활을 닮아서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사역을 하는 것이 과정 면에서 ‘거룩’입니다.

거룩하면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쁨이 여러분 안에 충만한 것이 감당하기 힘든 행복입니다. 이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어떤 고난보다 훨씬 더 큰 위로를 체험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위로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면 행복합니다.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는 세상이 주지 않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한 행복한 목회자, 행복한 설교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거룩한 행복을 모르면 주님 대신에 세상을 섬깁니다. 거룩한 행복의 생수를 마시지 못하니까 더러운 행복의 탁수를 꿀꺽꿀꺽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 더러운 행복의 탁수를 마시고 흘려보내니까 개신교 지도자의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2009년 11월, 기윤실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에 대해서 ‘별로’ 혹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2008년 48.3%, 2009년 33.5%였고, ‘보통’은 2008년 33.3%, 2009년47.4% ‘매우’ 혹은 ‘약간 신뢰’는 2008년 18.4%, 2009년 19.2%로 조금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감을 가진 종교 순위를 보면 ‘천주교’가 2008년 28.8%, 2009년 33.7%였고, ‘불교’는 2008년 31.5%, 2009년 26,4%, ‘개신교’가 2008년 20.6%, 2009년에 28%로 조금 올라갔습니다. 개신교의 호감도가 조금 낮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올라간 상태입니다.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언행불일치’ 32.2%, ‘무분별한 선교’ 10%, ‘타종교 비방’ 9%, ‘교회 성장에만 관심’ 7.4%, ‘집단이기주님의’ 7.4%, ‘종교의 권력화’ 5.4%였습니다. 이것을 분석해 보니까 윤리적인 면이 45%입니다.

물론 개신교도 할 말이 많습니다. 기윤실에서 2010년 1월 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복지사업과 관련하여 개신교가 운영하는 법인 비율이 52.15%였고, 불교가 25.96%, 천주교가 15.6%였습니다. 종합사회복지관 운영주체별 분류에서는 개신교가 188개, 천주교, 불교가 각각 49개였고, 노인복지시설은 전체 86개 중에 54개를 개신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로 전국지역아동센터 3013개 중에서 개신교가 운영하는 기관이 1601개로 전체의 53.13%였습니다. 사립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초.중.고등학교 종교사학 현황을 보면 전체 361개 중에 259개, 전체의 71.75%를 개신교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북지원 분야에서도 개신교 활동이 두드러집니다. 지난 3년간 민간단체 지원의 49.29%를 개신교가 담당하고 있고, 해외원조단체도 개신교 17개, 불교 3개, 원불교 2개, 천주교 1개입니다.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에서는 전체 자원봉사자 122만 명 중에 70여 만 명, 약 57%가 개신교를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분명히 개신교가 불교와 천주교에 비해서 엄청나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개신교의 호감도와 공신력이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입니까? 첫째 원인은 성경을 잘못 적용해서 그렇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 6:4) 이 말씀을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려면 마태복음 5장 16절도 봐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두 말씀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모르게 하라는 것만 가지고 갔기 때문에 선한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도 개신교인은 자기들만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광, 교회의 영광과 관련되어 있으면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되어 있으면 널리 알려서 안 믿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홍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인들의 의식이 달라집니다. 동시에 언론의 개신교 편파 보도와 안티기독교인들의 개신교 죽이기가 문제입니다. 저는 안티기독교인들이 왜 실망했는지 그들의 심정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인 제공을 했지만 그들은 의도적인 편파보도로 교회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됩니다.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해산해야 하는데 해산할 능력이 없습니다. 불이 있어야 하는데 난로만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을 바로 적용해야 합니다. 악의적인 언론 보도를 시정하도록 만들려면 먼저 더러운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성향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지성적으로 자기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감성적으로 아파하고, 의지적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상들에게서 돌아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악에서 돌아서서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합니다. 인터넷 음란메일을 열고 여인을 마음에 품는 간음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부임하는 목회자에게 노회에 소속시켜 주겠다고 돈을 요구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출마자를 불러내서 돈을 요구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돈을 적게 주면 “이걸 돈이라고 주냐”고 투덜대고, 좀 더 주면 “이 정도는 보통이야” 하고 넘어가고,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줘야만 “이만하면 쓸만해” 하고 찍어주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권력을 잡아서 명예와 지위를 얻고, 명예와 지위에 근거해서 돈과 쾌락을 얻는 분위기에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호텔에 모여서 교권을 잡는 음모를 한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아야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쓴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집회 명목으로 교인들의 헌금으로 외유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립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렘 9:1) 백성의 죄악을 날카롭게 도전하던 아모스가 그립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포효하시던 예수님이 그립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오늘날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6.25 발발 이후에 박윤선 목사님과 한상동 목사님을 중심으로 초량교회에서 일으켰던 회개 운동을 기억합니다. 전쟁 때문에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부산에 목사님들이 모여서 일주일 동안 회개 운동을 벌였습니다. 박형룡, 박윤선, 김진홍, 한상동 같은 분들이 강사로 섬겼는데 매시간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특별히 셋째 날 새벽기도에서 박윤선 목사님은 한부선 선교사님에게 들은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자기 자신부터 공개적으로 회개했습니다. 회중석에서도 한명 한명 회개했습니다. 그 때의 회개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흘 후에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 9.28 서울 수복을 이루어 주신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6.25 같은 비극이 터지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보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산과 교세가 많으면 교만하고, 한쪽에선 무시하고 시기하는 이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죄도 회개하고 특별히 배은망덕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1962년에 국민소득이 87달러였는데 아프리카 케냐보다 더 가난하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2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를 보면서 만족하지 못하고 세계 10대 교역국이 되었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구제역 침출수, 조류독감, 폭설, 고유가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징계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6.25 같은 전쟁이 터져서 생화학무기와 미사일과 핵폭탄을 맞으면서 피범벅이 된 회개를 하기 전에,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이 때 회개해야 삽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무너진 성벽을 막아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상태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고 흘러가는 생동적인 관계를 통한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남침례신학교 빌리그래함대학원의 학장인 톰 레이너가 2005년에 「돌파 교회」 (Breakout Churches: Discover How to Make the Leap) 라는 책을 썼습니다. 미국에 40만 개 교회가 있는데 그 중에 5만 개 교회를 실사하듯 연구한 책인데 5만 교회 중에 목회자가 바뀌어서 급성장한 교회는 제외시켰습니다. 동일한 목사님이 동일한 교회에서 목회하는데 어느 날 성장하는, 돌파하는 교회 5만 개 중에 13개 교회를 뽑았습니다. 어째서 급성장을 하는지 특징을 찾았는데 그 비결은 지도자였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누구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한국교회의 상황을 원망하지 마세요. 불신자 탓하지 마세요.

지도자에게 ABC가 있습니다. A(awareness)는 인식입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정신 차려야겠다. 예수님과 생동적 관계를 회복해야겠다는 인식입니다. 인식은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B(belief)는 신념입니다. 신념은 똘똘 뭉치는 것입니다. 생각의 덩어리에서 신념이 나옵니다. 생각에서 감정이 나오고, 감정에서 행동이 나오고, 행동에서 습관이 나오고, 습관에서 인격이 나오고, 인격에서 인생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생각의 덩어리인 신념이 문제입니다. 이 속에 쾌락이 들어있고 탐욕이 들어있으면 결과적으로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하는데 C(crisis) 위기입니다. 위기의식 없이 사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전에는 오십견에 걸려서 팔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내 목회는 끝났다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다 보니까 건강해졌습니다. 위기의식에서 사람이 움직입니다.

사람은 인식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세미나 할 때마다 모두 변하면 누가 걱정하겠습니까? 인식만 하는 것입니다. 해 볼까 하다가 안 되니까 포기하는 것입니다. A(awareness)는 있었는데 B(belief)가 없었던 것입니다. B는 목회철학입니다. 언제나 “내 목회철학은 이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목회합니다”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이 하니까 테크닉으로 따라가는 것은 다 실패합니다. 신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안되는 이유는 C(crisis)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일을 목숨 걸고 해야겠는데 ‘50년 목회하고 은퇴할 때 보니까 그 놈이 그 놈이더라’ 하는 자괴감의 자기고백 밖에는 안 나오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거룩성 회복을 위해 모였습니다. 주님과의 생동적 관계를 말하지만 이것이 여러분의 인식과 신념, 위기의식을 통해 현실화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목사장로기도회에서 회개에 대해 많이 외쳤습니다. 회개는 지적으로 인정하고 감정적으로 아파하고 의지적으로 청산, 끊어버리는 것이니 빚을 청산하는 것처럼 회개하자고 했습니다. 근데 변화가 없습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호텔에 가서 권력 잡아서 돈과 권력을 탐할 테니까 떠들어라’ 자정능력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그래. 너희는 먹어라. 나는 바로 할 테니까. 우리는 교회만 지키고 목회 잘하면 되지 않냐’ 하는 사이에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목회만 바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같이 살아야 됩니다.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같이 망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행복의 길을 갈 것인가? 더러운 행복의 길을 갈 것인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가요와 드라마 같은 문화의 한류를 세계의 상당 지역에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서 깜짝 놀란 것은 가전제품 가게와 핸드폰 가게에 들어가면 한국제품이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가장 고가의 상품으로 전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1984년에 제가 영국 캠브리지에서 논문을 쓸 때 밖에 나가면 일본 학생들은 버글버글하게 많고 한국 학생들은 저를 포함해서 30명뿐이었습니다.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의 한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행복의 길을 선택하고 이 길로 들어서면 하나님께서 다음에는 복음의 한류가 흐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이 세계 선교에 수퍼파워 일등국가가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가슴을 치는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주님과의 생동적 관계가 거룩한 행복으로 회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