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단은 규모에 있어서 세계적인 교단이다. 그러나 규모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장 성경적인 개혁주의 신앙을 지켜가고 있다는 자부심일 것이다. 우리 교단이 민감한 현안들에 대하여 민첩하게 성경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한국 교회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신학적 정립 뿐 아니라 대내외적 입장, 각종 사역에 있어서도 선도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사역에 대한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총신에 여성 원우가 줄고 졸업자들의 이탈도 심한 편이라는데 언제까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사회적으로 그 파워가 오히려 남자를 능가하는 시대에 언제까지 함구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는 여성 사역자의 역할에 대하여 교단적인 관심을 높일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여성 안수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파워가 확대되고 그 역할 역시 크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 사역자에 대한 현행 우리의 입장이 진정으로 성경적인가? 진게츠의 <직분론>에서 웨인 하우스는 “불행하게도 교회 역사는 많은 부분에서 여성의 리더십 역할을 제한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여성이 섬기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여성 사역자의 필요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여성이 섬기는 다양한 사역의 성경적인 방식을 논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적인 여성 사역자의 역할과 방식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성경해석의 차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성 사역자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진실로 성경적인가?를 올바른 성경해석학적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에게 여성 사역자에 대한 문화적 편견이나 제도적 모순은 없는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볼 때 개인적인 문화적 편견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문화적 정서가 성경해석을 잘못하는 장애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제도적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교단 신학교의 M.Div 과정은 목사 안수를 전제로 모집한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여성들도 입학을 허용하여 똑같이 코스웍을 시키면서 안수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교회 현장에서 직급이나 급여에 배려가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사역의 의지를 꺾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실력 있는 여성 인재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총회에서 GMS는 선교 현장에서 여성 사역자의 효율적 사역을 위해 성찬을 허용해 달라는 헌의안을 냈고 총회가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이는 지금 우리 제도에는 모순이다. 여성 사역자에 대한 법의 이중 잣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딤전 2:11)말씀 때문에 교회 안에 여성 리더의 위치가 제한되고 있는데 목사를 길러내는 신학교에서는 여성 교수가 목사 안수 없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주일학교는 여성 교사가 아니면 기능이 마비될 것이다. 이것도 역시 제도적 모순 아닌가.

셋째, 바울이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가졌는가? 바울서신 중에 교회에서 여성의 리더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성경이 디모데전서 2장 11~14절이다. “여자는 일체 순종하므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 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 할 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며 여자가 죄에 빠져 속았음이라.” 그러나 그 외 바울 사도의 여자에 대한 언급을 보면 바울은 결코 여성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질 때는 공동체 안에서 성별의 차이를 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골로세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라고 하여 모든 지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피차)가 가르치며 하나로 기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바울의 가르침에 모순이 있었는가? 바울은 신실한 신앙인이요, 매우 탁월한 신학자요, 사역자였다. 무엇이 복음이며 그 근본 복음을 위하여 문화적 적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몸소 실천했다. 그의 사역은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던 것처럼 ‘성육신의 원리’로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고전 9:22)으로 사역했다. 영혼구원의 본질을 위해서 문화적인 적응을 지혜롭게 했던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넷째, 이제라도 여성사역자의 역할을 위한 전문연구위원회를 제안한다. 여성사역자의 역할과 위치와 명칭 등 일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자는 것이다. 여성 사역자의 위치와 역할을 재평가하고 성경적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여 합리적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신학과 전통은 구별돼야 하고 진리와 교리는 함께 가야 한다. 낡은 사상과 편력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과감히 고쳐야 한다. 이제라도 여성인력을 교단의 에너지로 활용하는데 적극적인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 너무 늦으면 손실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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