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작년 10월에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지만 원로목사라 하기엔 너무 젊은 목사이다. 교회를 개척해서 만 20년 목회하고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너무 젊은 나이에 초조기(超早期?) 은퇴를 했으니 그다지 보편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아마 다른 사유로 은퇴했으면 몰라도 한 교회에서 20년 목회 사역을 가득 채우고 정상으로 은퇴한 원로목사로서 나이가 60세가 되지 않은 경우는 우리 교단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교단 헌법이 보장한 정년을 따르면 13년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말이 20년이지 아무리 세월이 빠르다 한들 20년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청년이 되었고, 그때 풋풋하던 대학생들이 이제 40대 중년에 접어들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지나온 모든 발걸음을 생각하며 깊은 감회가 있었다. 가족들조차도 알지 못하며,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독과 아픔도 이젠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이 시대 개척교회의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음을 고백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이 찍혔다고 했는데 상처뿐인 영광이 바로 목회의 길인 듯싶다.

사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네게도 목회 사역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부친(증경총회장, 섬선교회 고문 박요한 목사)의 청렴결백과 정직, 성실함 그리고 성자로서의 삶은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그를 위해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는 결코 아버님만의 몫이 아니었다. 어머님과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무게로 다가왔다. 특히 이미 천국가신 어머님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목사 되길 그렇게 거부했지만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과 거룩한 소명은 결국 나를 목회의 광야로 인도하셨으며,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기존 교회 부임이 아닌 교회 개척의 길을 선택했다. 만일 개척교회의 아픔과 슬픔을 미리 알았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또 기존 교회를 싫어했어도 개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눈곱만큼의 타협이나 변질 없이 성경대로 교회를 세우며, 예수님 같은 목사 되고, 참 성도를 세우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교회를 개척하여 어느 덧 20년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너무 이른 나이에 조기은퇴를 결심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한된 지면에 다 나눌 수 없지만 첫째, 하나님께서 교회 유익을 위해 이제 내가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이며, 열매를 거두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고 하셨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제 사명을 다 감당했다고 나는 믿는다. 지도자는 자리에 나아갈 때보다 물러설 때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줄곧 목회 말년이 추하거나 노욕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해 왔다. 또한 나의 부족한 점이 후임 목회자를 통해 채워질 수 있다면 교회가 다양하고 풍성하게 성장하는 데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아울러 내 평생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소중한 동반자이며, 동역자이고 삶의 배필인 아내의 투병도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교회 개척과 목회 때문 매우 연약해진 몸과  질병은 내가 여생을 통해 사랑과 돌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감당할 책임이라고 믿는다. 목회 내조의 과정에서 얻은 질병으로 일찍 천국 가신 어머님을 보며 아내만큼은 그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작은 교회의 목사에게는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었다.

마지막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게 약 10년 전에 선교의 소명을 주신 것이다. 너무 구체적이고 그 비전이 가슴의 불을 일으키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개척교회의 설립자로서 내 책임을 감당하며 한 세대를 마무리 짓고 후임 목사를 세우며 건축을 완공하는 것이 아름다운 퇴장이요, 책임 있고 성실한 모습이라고 믿었다. 20년 목회 은퇴 후 원로목사가 된 다음 인생 후반전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선교 사역에 헌신하길 소망했었다.

내가 가장 소원했던 것은 선한 목자로서의 목사, 예수님의 심정을 가진 목자였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물러난 느낌이 든다. 지금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삶과 사역이 오직 하나님 은혜였다고 감히 그러나 분명하게 고백한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럼에도 절대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직 은혜로써 인도하셨고 붙들어 주셨다. 목회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가장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 받은 시간과 장소도 바로 예배당에서 새벽기도를 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한다. 진실로 나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와 은혜를 빼놓고는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다.

20년 목회 현장에서 가장 강렬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목회자와 일반 성도 가릴 것 없이 교회를 진심으로 온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된다는 것이다. 온 우주에서 주님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 분의 피로 구원하시고 신부 삼으신 순결한 교회이다. 하나님이 교회에 두신 거룩함과 영광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교회를 겸손하게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호칭은 비록 원로목사이지만, 동시에 나는 영원한 섬기는교회의 성도이며 지체이다. 이제 남은 생애를 또 다른 하나님의 종으로서 헌신하며, 지체들을 섬길 것이다. 비록 미래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 보장도 없지만 믿음으로 나아 갈 것이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인도하셨듯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때를 따라 모든 것을 공급하시며 채우실 것을 믿는다. 오히려 나는 남은 인생 후반전에서 펼쳐 갈 사역을 큰 희망으로 기대하며, 내 삶의 모든 권리를 다 내려놓고 더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