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총회가 끝이 났습니다.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총회인지라 후일담이 참 많습니다. 예장고신 교단이 빠져서 아쉽기는 했지만 9월 24일(수) 저녁 한국 장로교 분열의 역사에 함께 책임을 지고있는 4개 교단 총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드린 연합감사예배는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특히 그날 예배시간에 발표된 '한국 장로교회 제주 선언'에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분열을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한 우리의 가증하고 부끄러운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찢으며 진심으로 회개한다"고 전제하고, "우리 4개 장로교단(기장, 통합, 합동, 합신 - 가나다순)은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교회가 지난 100년 동안 풍성하게 받은 은혜를 되돌아 보며 연합으로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앞으로 100년 동안 하나님과 이웃을 섬김으로써 겸손과 사랑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살펴 다음과 같이 우리의 결의를 선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날 예배에 참석한 인원은 얼추 오천 명이 넘는 인원이었고, 그 중에서 4개 교단의 총회 총대만 하더라도 사천여 명이나 됩니다. 만약 이분들이 선언만이 아니라 선언한대로 실천력을 담보하고 움직인다면 한국 교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설교 후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한지 꼭 70년 만에 공적으로 회개기도를 한 일과 교회의 분열을 회개한 것, 그리고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개는 참석자 모두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렇듯 연합예배는 한국 교회가 새롭게 되고 성숙할 수 있는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하기에 충분한 듯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중심으로 총회회무가 진행되는 시간은 모든 시간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희망을 갖기에는 어려운 양상들이 많이 노출되었습니다. 굳이 노출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회무 진행 내내 "지금 이 시간 인터넷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회의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라는 경고성 멘트가 사회자와 발언자 모두에게서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쓴 <처음처럼>에 보면 세상에서 제일 먼 여행길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며, 그 보다 더 먼 여행길은 '가슴에서 발끝으로의 여행'이라는 글귀가 나옵니다. 문득 이 글귀를 생각하며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있었던 장로교단 연합예배와 총회현장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뿌리 깊이 고착된 죄를 회개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혁의 노정을 손을 맞잡고 함께 전진하겠다는 수요일 저녁예배의 약속들이 왠지 머리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상을 점거하고 때로는 몸싸움도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발언대를 독점하며 자기의사 전달에만 골몰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과 이웃을 섬김으로써 겸손과 사랑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겠다"는 제주선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냉철하게 보자면 총회가 있을 때마다 교단의 정책이 휙휙 바뀌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일관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고금의 상식입니다. 또 정책을 바꾸려면 반드시 바꾸는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분이 총회장이 되느냐에 따라 총회의 정책이 가변된다는 것은 힘을 가진 분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총회가 휘둘린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변화되는 환경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오로지 유지되는 일관성은 '부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회라는 항공모함과 같은 거대한 공동체가 모터보트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방식으로 정책이 입안되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는 한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제주선교 100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93회 총회가 함께한 예배 시간에 선언한 그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김으로써 겸손과 사랑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총회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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