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에 위치한 인천제2교회는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가족 같은 교회를 지향하며 성경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개혁과 보수를 병행하는 교회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 근대사와 발걸음을 함께한 인천제2교회는 인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대 담임목사였던 이승길 목사님은 목회 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하시던 중 약 8년간 옥고를 치르신 애국지사로서 후손들에게 참된 신앙과 애국의 본이 되셨으며 본 교단 25회 총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2대 담임목사였던 이삼성 목사님은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일평생 헌신하시며 현재의 교회 크기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으며 본 교단 75회 총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 분은 덕장이셨으며 원로목사의 참 본을 보여 주신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3대 담임목사로 이건영 목사께서 그 두 어르신 목사님과 설립교역자였던 김덕수 전도사님의 아름다운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천제2교회는 60년 교회 역사 중 담임목사 교체가 두 번 밖에 없었으며 그 교체 이유가 소천하심과 정년은퇴 뿐이었으니 참으로 은혜로운 교회입니다. 특히 교회 설립 60주년 기념 사역으로 주일이 아니라 주중 장애우 교육 및 치료사역을 위해 연건평 약 1000평의 삼일특수교육센타를 건축하였으며, 지금은 약 4300평의 새로운 본당 및 교육관을 건축 중에 있습니다. 이 모든 건축 사역을 마친 후 찾아오는 교회, 돌보는 교회, 그리고 찾아가는 교회의 사명을 더욱 힘차게 감당하고자 기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진행/ 이상화 목사 | 교갱협 사무총장
사진/ 유성문 편집장 | 교갱협 홍보실장

지난 3월 14일 첫 삽을 뜨시고 한창 교회를 건축하고 계신데 바쁘신 중에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건축 얘기를 먼저 질문해야겠는데요. 교회 설립 60주년을 맞아 새성전을 건축하면서 ‘신앙교육 효율화와 이웃섬김 위한 공간 확보’라는 목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한 목표를 세우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약 36년 전에 건축된 본당으로는 현재 다양한 예배와 신앙활동을 감당하기에 너무 역부족이었습니다. 큰 교회를 건축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요 교회가 질적, 양적, 그리고 구조적으로 성장하므로 신앙교육의 효율화라는 필요에 따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소천하신 원로목사님과 옛 성도들이 우리들에게 지난 날 참 좋은 예배당을 제공해 주셨다면 우리들도 교회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도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교회 건축이 목적 자체는 결코 아닙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 목적은 물론 영혼구원과 양육이 첫 번째 목적이지만 동시에 앞으로 더욱 더 이 지역사회를 섬기며 함께 가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비신자들의 눈에 “저기서 도대체 뭣 들 하나?”라고 수군거리게 만드는 숨겨진 교회에서 드러난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서있는 교회에서 움직이는 교회가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교인들은 다목적 다기능의 새성전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 기도제목은 점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섬김사역의 중심에 있는 ‘삼일특수교육센터’는 재개발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교회 건축보다 더 우선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만큼 장애우들을 향한 교회의 목회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교회가 이처럼 각별하게 장애우들을 섬기려면 목사님뿐만 아니라 성도 전체가 같은 비전을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삼일특수교육센터’를 2001년부터 시작하셨는데 이러한 사역을 시작하게 된 어떤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8년 전 교회 내 몇몇 장애우 어린이를 위한 사랑부 주일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일예배가 그루터기가 되어 현재의 장애우센터가 이루어졌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요 그 다음으로 사랑부 교사들의 전적 헌신과 교인들의 동참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결과입니다. 삼일특수교육센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장애우를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한 학사 및 석사 선생님들에 의해 학습, 언어, 음악, 미술, 체육, 컴퓨터및 놀이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주중 이런 특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장로교회는 아직은 우리 교회가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지역교회가 있기를 늘 소망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특징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좀 더 자유롭게 육신치료 및 신앙교육을 하기 위함입니다. 본 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약 700여 명이 센터의 재정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장애우 뿐 아니라 그의 부모님들도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우들이 일년에 한번 학습 및 세례를 받을 때에는 온 교인들이 마치 자기 자녀 일인양 기뻐하는 모습이 축제와 같습니다.
또 다른 교육 특징은 철저히 1:1 교육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학생 한 명에 선생님 한 분만 같이 하는 교육입니다. 그로 인해 서로의 신뢰 및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대기 학생이 약 60명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40명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중학교 졸업 나이로 제한하여 운영의 묘를 살리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결코 정상인이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예비 장애인입니다. 장애우 사랑은 생각이 아닙니다. 행동이어야 합니다. 그 목표가 우리 교회 교인들의 나침판이 되어 그 어떤 이견도 없이 새로운 성전보다 장애우를 위한 새로운 건물을 먼저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제2교회는 인근에 상가가 밀집해 있고 주택가와 먼 철저한 비거주지역이기 때문에 도보로 출석하는 성도가 5% 남짓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교회를 계속 찾고 있고 또한 인천 최초의 우리 교단 교회로서의 위상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멀리에서까지 교회를 찾아오는 성도 자랑을 한 번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구도심인 중구에 위치하고 있는 비아파트지역입니다. 동시에 공구상가 및 공장이 수백 개나 되는 상업지역입니다. 교회 근처에서는 정말 전도대상자 찾기가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것은 그들의 특별한 교회 사랑 때문인 듯합니다. “나 없으면 이 교회 되나 봐라!”가 아니라 “나 한 명이라도”라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 결과 건축 중에도 출석 성도님들이 전혀 줄지 않는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심지어 강원도 평창에서 혹은 충남 당진에서도 매 주일 오십니다. 그것이 결코 자랑은 아닙니다. 다만 요새는 아파트 단지 혹은 동네만 달라도 출석교회를 바꾸는 시대인데 그 멀리서 수많은 교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 여름 밤 설교 준비 중에 졸다가도 정신이 다시 납니다. 물론 단 한번도 성도들에게 멀리 이사해도 본 교회를 열심히 출석해야 한다는 설교를 해본 적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교회, 우리들의 교회 뿐 아니라 내 교회 의식이 있는 교인들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 6월 기독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목사님은 교회는 평안을 나누어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저서 “배달나간 목사님”, “배달나간 목사 부부 이야기”, “한번 보면 유머 두번 보면 탈무드” 등과 장년 성도들을 위한 찬양사역 모두 그러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목사님의 목회철학이 궁금합니다.

저의 목회 철학은 일보다 관계입니다. 이는 제가 개척한 교회가 아니라 기성교회에 와서 담임목회를 하게 된 저만의 생각일 듯합니다. 일보다 관계를, 성장보다 안정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덧 평안한 교회와 성장하는 교회를 하나님께 바치게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역 문제로 동역자 바나바와의 관계를 크게 훼손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회의 큰 후회가 되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며 그의 다양한 서신에서 형제, 자매라는 단어를 약 330여 번 사용하며 관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열정과 함께 냉정함이 있는 목회, 열심 있는 신앙과 동시에 절제 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목회, 그리고 좀 늦더라도 같이 가는 목회철학은 이미 우리 교회 당회 및 각 종 모임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단 한 번도 당회가 둘 혹은 셋으로 갈라져 싸우는 일이 없는 은혜를 받았으며 그 흐름은 모든 교회 모임에 누룩처럼 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관계를 우선하는 목회는 때론 담임이 기생과 같은 마음과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기생목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좀 기생이 되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하셨는데 말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죽어야 겨우 무승부인데 죽이지 않고 기생하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은 많이 아시는 바와 같이 주일학교부터 인천제2교회에서 자라서 부교역자 기간을 거쳐 담임목회자까지 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계시는데요. 지난 번 인터뷰 때 홍문수 목사께서도 부교역자에서 담임목사가 되고 보니 성도들은 자신을 계속 부목사로 여기는 시각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자랐으니 더욱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물론 쉽지는 않았고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이 교회에서 목회한지 21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37명 장로님들 중에 저보다 연세가 어린 분은 4명에 불과합니다. 안수집사님, 권사님들과 교인들의 연령 분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본 교회 주일학교 출신이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흔하지 않은 그런 목회를 하라 하신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능력과 지혜도 주십니다. 다만 교인들에게 과욕과 자만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말아야 하며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고의 설교자는 못되어도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때 거룩한 이중성인 겸손과 권위, 권위와 겸손이 선물로 임합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이제는 저의 인격보다 주의 종이라는 위치를 먼저 생각하며 기쁨으로 동역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는 말입니다. 내일 일은 전 잘 모릅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보면 “사모님은 전통적인 교회에 알맞은 성품을 지니신 분입니다. 마치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기처럼 지혜롭게 교인들을 섬기므로 “따오기 사모”라는 애칭을 가지고 계십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저의 아내를 “따오기 사모”라고 하는데 저는 동의합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노랫말처럼 사모 역할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요새 일부 교인들은 사모가 앞장서 일하면 너무 설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좀 숨어서 조용히 봉사하면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사모는 어디 갔냐고 합니다. 그래서 사모는 보일 듯이 보일 듯이 그러나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 역할과 위치가 어찌 그리 말처럼 쉽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아내요 담임 사모 때문에 교회 내외에서 작고 큰 아픔이 아직은 없었으니 저는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과분한 아내요 동역자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옛날 저는 제2교회 청년이었으며 아내는 제3교회 자매였는데 주 안에서 만나 연애결혼 한 지 올해로 30주년입니다. 이제는 평생 좋은 친구 같은 아내가 되었으나 30주년을 계기로 신혼의 사랑과 교제를 더욱 회복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회복의 중심에는 여러 가지 복된 요소들이 있으나 특히 취미가 같아진 것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늘 사진촬영 및 편집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시간이 주어지면 출사를 나가는 것입니다.  11월 11일이 우리 부부 30주년 기념일입니다. 그 때 할 말 먼저 합니다. “자령 엄마!  진정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  다음 주 월요일 함께 출사 나갑시다!!”  
또한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교인들에게 감사한 것은 제가 국내외 그 어디를 가더라도 사모와 같이 갈 수 있는 배려를 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구 반대쪽을 비행기 타고 가야 할지라도 역시 저 혼자 보내는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거마비와 활동비를 겸하여 주시면서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이나 사모님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진심으로 전합니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받는 저와 아내는 그 돈으로 그 지역에서 만나는 분들을 물질로 섬길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 2월 10일 교단의 ‘어른’이자 교회의 원로목사이신 이삼성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는데요. 조기은퇴와 안정적인 지도력 이양으로 귀감이 되었던 은퇴 후에도 목사님과 같이 심방길에 오르는 등 목사님과는 각별한 관계였고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 분이었습니다. 원로목사님과의 소중한 추억을 한 토막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도 가끔 지방집회를 인도하러 가면 소천하신 원로 목사님을 저의 육신의 아버지로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원로 목사님은 저의 목회의 아버지요 영적인 아버지이시지 저를 낳아 주신 아버님은 아니십니다. 그러나 그 어르신은 저를 친아들처럼 여겨 주셨으며 저도 그 분을 친아버님처럼 공경하였습니다. 저의 아내도 마찬가지였기에 같은 교회를 출석하시는 저의 친부모님께 죄송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 원로목사님 댁으로 명절 인사를 교역자들과 함께 갔습니다. 세배를 받으신 후 저희들에게 선물을 주셨는데 좋은 겨울 털옷이었습니다. 18명에게 일일이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가격은 거의 같은 것인데 디자인이 다 다른 까닭은 교역자들의 다양한 나이를 고려하여 구입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외동딸에게 부탁하여 그 옷들을 준비하셨다는데 디자인이 정말 딱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하여 그 다음 주일 오전예배 설교 후 저를 포함 모든 교역자들이 그 옷을 입고 본당 앞으로 나왔습니다. 양복 혹은 양장이 아니라 우리들이 이렇게 겨울 털옷을 입고 특송하는 이유를 교인들에게 설명한 후 다같이 찬양을 하였습니다. 감동의 박수가 본당에 가득하였습니다.
어느 후임목사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로목사님이 돌아가신지 3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무덤에서 말씀하시며 지시하신다고 합니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선임과 후임과의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피차 만들어가면 나중에 참 좋은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복된 관계라고 확신합니다. 인천 어느 요양원 입구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나 젊어서 너였고, 너 늙어서 나된다!”



목회자가 싸워야 할 대상은 교인들이나 장로들이 아님에도 지금 한국 교회는 세상과 사단과 싸우지 않고 교인끼리 오해, 질투, 다툼과 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싸움의 대상이 잘못됐는데 누구도 말리지 못하고 있고, 당회와 담임목사까지 그 싸움의 중심에 서 있는 서글픈 현실 속에서 목회자가 지녀야 할 신앙 인격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그 누구와 다투거나 싸우기 전에 늘 먼저 자신과 싸우는 훈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였기에 교인 혹은 장로님들과 다투며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씨름에서 이기면 그 일과 관계의 잘못됨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신이 먼저 주저함없이 이해나 용서를 그에게 요청하게 될 것입니다. 혹 몇 번이고 진심으로 용서를 원했건만 결국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분은 성품이나 신앙에 큰 문제가 있는 분일 것입니다. 내 손에서 이미 벗어난 교인인 줄 알고 성령님께 맡기는 방법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인 혹은 장로님들과 싸워 KO승을 거둔 목사님이 자랑삼아 그 무용담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얼마 후 자신이 KO패 당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KO승 하지 마세요. 어느 날 KO승할 기회가 분명히 왔어도 한 발 물러선 후 판정승해야 합니다. KO승은 내 힘으로 만들었기에 상대에게 상처가 크고 오래가지만 판정승은 교인이나 성령께서 판단하시기 때문에 상대에게도 상처가 작고 빨리 아물 수 있습니다. 
때론 가끔 그들에게 얻어 맞아 피를 흘리며 일부러 판정패 해 보세요. 놀라운 나비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가르쳐 주는 교훈은 자신이 먼저 피 흘림으로 해결되지 못할 문제나 인간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 안 밖의 인간관계 속의 오해, 질투, 다툼, 그리고 분쟁은 서로 KO승만 원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도 먼저 변화해 보세요.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도성에서 의인 10명만 있어도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1대 이승길 목사님과 2대 이삼성 목사님 모두 총회장을 지내셨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목사님에 대한 기대감도 분명 있을 텐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으신지요?

우리 교회 두 분의 원로 목사님께서 총회장을 지내셨다는 것은 우리 교인들의 자존심은 아니나 자부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 중에 앞으로 때가 되면 저도 총회장이 되어야 할 것을 주일오전예배 때 기도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두 어르신들과 저는 그릇 자체가 다릅니다. 겸손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강권하시면 거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회장 직분만이 총회를 봉사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꼭 총회장이 아니라 어느 직책으로라도 총회를 위해 봉사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위대해 보였던 것은 곁에 안드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산이 그렇게 크게 보이는 것도 곁에 작은 산들이 있기 때문이듯이 말입니다. 작은 산들 중에 하나로 만족합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대회제 문제, 총회 임원선거 개선 문제 등 굵직한 이슈를 처리해야 하는데 제비뽑기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총회로 서기 위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선제로 회귀냐 제비뽑기 고수냐의 논쟁의 중심벽에는 금권선거라는 악명이 쓰여져 있습니다. 제비뽑기는 금권선거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증된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미흡하다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직선제로 회귀하면 금권선거는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혹 총회적으로 원만히 활동할 수 있는 더 좋은 그릇을 선택하는데 유익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문제는 만일 직선제를 도입할 때 어떻게 금권선거를 막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총회 선거일정을 맡기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영적 혹은 도덕적으로 앞장서 인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목사요 장로입니다. 그 기관에 맡기는 순간 우리 교단은 머리칼 잘린 삼손이 되고 말것입니다. 교회들은 길거리 바닥에 버려져 그들에게 무참히 밟힐 것입니다. 정말 막가는 안티크리스챤들이 그 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금권을 방지할 강력한 제도와 처벌을 도입하자고 합니다. 신고 및 고발창구를 만들고 돈을 뿌린 증거가 확실히 드러나면 그 후보를 다시는 총회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단체 중 신고정신이 제일 취약한 곳이 바로 종교단체요 교회입니다. 예전에 총회 소속 여러 단체가 선거를 진행하며 신고 및 고발센터를 설치했지만 신고와 그것을 토대로 확실히 조사한 사례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 취지는 좋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검은 돈을 은밀히 일대일로 주고 받는데 하나님 외에 그 누가 확인하겠습니까? 또한 우리에게는 사법권이 없으므로 그 대상자가 억울하다며 일반법에 고소하면 더 누추한 모습만 남겨지게 될 뿐입니다.
또한 직선제로 가면 금권선거만큼 과거의 치명적인 아픔이 재현될 것입니다. 그것은 총회라는 공동체의 하나됨의 모습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입니다. 표심을 붙잡기 위해 더욱 지역별로 치열한 경쟁과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할 것입니다. 그 결과 총회라는 집안 안에 기차의 두 레일처럼 결코 하나될 수 없는 아픔이 가중되고 말 것입니다. 그 예표적 증거가 이번 총장선거가 아닙니까? 마지막 끝장 투표까지 하였습니다. 제비뽑기가 아니라 직선제 투표를 하루에 8번이나 했는데 총장은 결국 선출되지 못했으며 서로의 깊은 골만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총회는 내가 살기 위해 너와 우리가 죽어야 하는 조직체가 아닙니다. 구주 예수님을 머리로 한 지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입니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해야 할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비뽑기가 완벽한 제도냐는 의문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도 적지 않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비뽑기의 보완책을 논의할 연구위원을 선정해 보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오랜만에 돌아온 제비의 다리를 꺽어 버리지 말고 치료하여 돌려보내자는 것입니다. 선거제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논의할 연구위원들을 이번 총회에서 선출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그 보완책을 논의할 연구위원들의 구성이 중요합니다. 총회 총대 및 교회 목사 및 장로님들의 대부분이 넉넉히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신뢰란 믿고 힘을 실어 드릴 수 있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총회선거 아픔의 원인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철저한 금권선거 방지책 및 처벌규정을 만들어 놓은 후 기독신문 사장 및 이사장 선거, 혹은 총신이사장 및 GMS 이사장 선거 중에 한 곳이라도 직선제를 먼저 해보는 것입니다. 그 후 냉철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그 결과를 판단 및 확인한 다음에 선거제도를 재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성숙한 주의 종들이 하나님 존전에서 결의한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겨우 10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 부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일 성급히 직선제로 돌아가면 분명 예상하기로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제비뽑기로 다시 돌아가자는 외침이 총회 구석 구석에서 울리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간(9월 첫째 주) 서울에 있는 모감리교회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당회원들과 대화하던 중 감리교 감독선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때 그 분들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비뽑기로 선거하는 합동측 장로교회가 부럽습니다. 한국 교회 선거제도에 선구자 역할을 한 교단의 목사님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네요.” 그렇습니다. “당장에!”라며 두 손 불끈 쥘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단의 제비뽑기를 타 교단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음을 부인할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좀 늦은 듯한 것이 결국 빠른 것임을 경험하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한 때입니다.

목사님은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가운데서도 교갱협만은 놓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교갱협 상임회장으로서 창립 초기부터 교갱협과 함께 해오면서 교갱협이나 옥한흠 목사님, 김경원 목사님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실 텐데요. 끝으로 그간의 소감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옥한흠 목사님과 김경원 목사님을 뵐 때 저는 저 자신을 향하여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총회 안 밖의 권력은 이동하지만 두 분을 향한 나의 존경심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참 오랜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두 분을 향한 저의 존경심과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갱협 임원들 중 저는 제자훈련을 받지 않은 목사입니다. 아니 받을 수 없는 목회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교갱협 임원 중에 천연기념물이나 희귀동물 같은 목사일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그것을 교회에 적용한 결과 좋은 열매가 있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목회적인 면, 인격적인 면, 그리고 삶의 여러 방면에서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꿈꾸던 목회자 상을 보여 주신 두 분이기에 존경하며 본받고 싶을 뿐이요, 또한 부족한 사람이 그 분들 곁에 있음이 행복입니다. 특히 두 분께서 지금까지는 세례요한처럼 광야에서 소리를 발하였으나 이제는 예수님처럼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개혁과 갱신을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니 더욱 존경합니다.
이제 옥한흠 목사님의 영육이 더욱 강건하셔서 초 교단적으로 힘차게 쓰임 받으시기를 기도드리며 대표회장이신 김경원 목사님에게 성령께서 더욱 지혜와 결단력을 주셔서 계속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본이 되는 지도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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