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선교 세미나를 다녀오면서

이번 여름은 내게 특별한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오랜 만에 아프리카 땅을 다시 밟게 된 것이다. 우간다에서 선교하던 우리 가정이 안식년으로 떠난 지 약 4년 만에 다시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되었다. 새롭게 만나는 아프리카의 드넓은 대지와 시원한 평원들, 차창 너머로 만나는 검은색 피부의 사람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언제 어디서 만나건 활달하고 친숙한 분위기의 이 정겨운 사람들... 얼마 동안이나 보지 못한 것일까. 새롭게 만나는 얼굴들이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었다.

이번 아프리카 방문은 특별한 주제로 열리는 국제 연구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서구 문화 속에서의 선교”라는 프로젝트Mission in Western Culture Project이다. 21세기 세속화된 현대 문화들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적 미래 교회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모임이다. 한국에서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코리아Christianity Today Korea의 지원을 받으면서 올해부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정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 국제 세미나가 금년 8월 3일에서 8일까지 잠비아에서 개최된 것이다.


▲ 이번 세미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기 삶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이웃과 세상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히 증거해 주었다. ⓒ 정모세

레슬리 뉴비긴은 인도 선교사로 있다가 30년 만에 영국으로 귀환하면서 고국 사회가 근대 문화의 이교성에 완전히 포로가 되어 있는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후로 그의 선교적 과업은 어떻게 세속화된 서구 문화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되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주제는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서구 사회 전체에서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현실이 되었다. 근대성과 후기 근대성의 영향을 받은 모든 문화들은 복음에 대해 심각히 적대적인 세력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이러한 적대적 문화가 한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근대 국가와 도시들에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기독교 복음의 최대 위협은 더 이상 원시 부족이나 이교 종교들의 모습이 아니라 근대화와 물질 문명의 매혹적인 옷을 입은 현대 사회 그 자체로서 우리 안에 공존하게 된 것이다.

북미와 영국, 호주와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서양 교회의 리더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수 년 동안 지속적으로 논의를 발전시켜 왔다. 그것을 이번 잠비아 모임에서 공식적인 국제 프로젝트로 발족하게 되었다. 모임 장소는 아프리카의 한복판에 위치한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Lusaka였고, 이곳의 현지 신학교Justo Mwale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숙식과 회의를 진행하였다. 참석자들은 서양 5개국과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교회 리더들이 함께 모였고, 한국에서는 2명이(수영로교회 정모세 목사와 필자가) 게스트로 참여해서 전체 25명이 5일간의 일정을 가졌다.

세미나의 첫 번째 순서는 참석자들을 통해서 서로 다른 나라들의 영적 상황을 듣는 시간이었다.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마을 회의 방식을 따라서 인다바Indaba라는 소그룹 모임으로 진행하였다. 각자가 속한 나라들 안에서 교회가 어떤 과제들을 직면하고 있는지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처해있는 수많은 도전들을 듣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특별한 애착과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비아의 이웃 나라인 짐바브웨는 너무나 극심한 문제 상황 속에 처해 있었다. 그동안 대통령이 독재자였고 나라 정치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서 모든 언론은 정부 홍보 용도로 통제되고 어떠한 표현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이 없어서 일반 백성들이 당하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1998년부터 기울기 시작한 나라 형편이 현재는 총체적인 난국과 혼돈에 빠진 것이 참석자들의 어두운 표정 가운데서 생생히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문제 이후로 새로운 정권들이 들어서면서 동일하게 심각한 어려움들을 직면하고 있었다. 정부 관리들은 부패하고 나라는 인종과 피부색과 빈부 계층들 간에서 극심한 반목과 대립의 분열 상태에 빠져 있다. 특별히 그동안 나라의 지배계층을 이루어 오던 백인 아프리칸들은 심각한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라의 불투명한 장래와 점점 붕괴되는 사회 질서를 보면서 자녀들을 이곳에서 키울 수 있을지 총체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남아공 교회들 안에 새로운 각성의 움직임이 서서히 확산되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그것은 주변 아프리카 나라들의 고통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공감하고 동일시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삶의 진정한 가치와 부르심이 깨어진 마음과 진실한 믿음으로 고통당하는 형제들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배워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하고 감동적인 나눔이 아닐 수 없다. 사회 모든 분야가 경이적인 발전을 이룩한 가운데서도 참다운 믿음과 사랑의 실천들이 부족하여 사회의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신앙인들의 현실을 반추해 본다. 현재 세계 교회가 처해있는 너무도 생생하고 극심한 아픔의 현장들을 새롭게 듣는 것이 큰 교훈과 영적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금처럼 빛나는 회개와 겸손과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들을 결단하는 소식들이 또한 큰 소망이 되었다.


▲ 잠비아 선교 세미나는 서양 5개국과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교회 리더들이 함께 모였고, 수영로교회 정모세 목사와 필자가 게스트로 참여하여 전체 25명이 5일간의 일정을 가졌다. ⓒ 정모세

이번 세미나 참석자들에서 한 가지 특별한 체험은 아프리카 최대의 문제인 에이즈의 현실을 보는 것이었다. 에이즈에 감염된 채 살아온 두 신앙인의 실제적인 간증을 듣는 시간이 참석자들 모두에게 놀라운 영향력을 주었다.

에스더 자매는 10대 중반에 반강제로 시집을 간 뒤 에이즈를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돌봄 가운데 에이즈 약들을 복용하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특별히 30대 초반인 지금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 안에서 동일한 입장에 처한 여성들을 위한 소그룹 모임과 사역을 진행하게 되었다. 희망의 울타리Circles of Hope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에이즈에 감염된 여인들이 함께 믿음과 용기를 일구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에이즈 여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마을에서 어려움에 처한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돌아보고 격려하는 모임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회가 지역 사회의 문제와 아픔들을 돌아보면서 의미심장한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 가는 작은 모델이 에이즈 여성들을 통해서 실천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이것이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리더들에게 선교적 교회와 선교적 리더십을 향한 커다란 도전과 소망을 일으켜 주었다.

에스더 자매의 리더십 덕분에 현재 잠비아 개혁교회의 200개 교회들 가운데 20개 정도의 교회가 이전과는 달리 에이즈 문제를 공개적으로 표면화 하면서 그들이 겪는 아픔과 차별들을 적극적으로 돌아보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 결과 이들 에이즈에 감염된 교우들 안에 일어난 생각과 태도의 변화는 일반 에이즈 환자들에게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평강과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또한 자신의 아픔을 넘어서서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며 위로하는 자발적인 봉사들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통하여 지역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도전과 증거가 되었다. 선교의 현장 안에서 작은 믿음의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영향력과 차이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다.

이들과의 만남은 아프리카에 편만한 에이즈 현실을 보면서 세계적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지닌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절실하고 긴급한 것인지를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기 삶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이웃과 세상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히 증거해 주었다. 이렇게 자기 울타리를 넘어가는 결단이 신자와 교회 공동체들의 생각 속에서, 행동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아프리카에 편만한 에이즈 현실을 보면서 세계적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지닌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절실하고 긴급한 것인지를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박찬학

첫 번째 주제 발표는 이 프로젝트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발제자는 영국의 신학자 콜린 그린Colin Greene 박사로서 최근에 “메타 비스타: 상상의 시대 속에서 성경, 교회 그리고 선교”Metavista: Bible, Church and Mission in an Age of Imagination라는 신간을 저술했다. 일찍이 레슬리 뉴비긴이 시도했던 현대 문화와 근대성의 분석 작업을 토대로 삼으면서, 그 이후 이성의 시대를 넘어서 상상의 시대로 변화되는 오늘날의 포스트 모던Postmodern과 멀티플 모던Mulitple Modernity 시대의 특성들을 핵심적으로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근대 문화와 세속적 사회 안에서 배제되어 버린 하나님 주제 즉 복음을 다시 우리 시대의 상상 작업들 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국제 책임자인 앨랜 락스버러Alan Roxburgh 교수는 “변화의 방법론”에 대해서 열정적이고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먼저 서구 사회에서 그리고 이후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문화 현장들을 총체적으로 점령해 가고 있는 근대화(또는 세계화)의 요소들을 주목하였다. 근대성Modernity의 문물과 사고방식과 체제들, 그것을 둘러싼 거대한 현실적 구조들, 세계화와 다원화 사회의 막대한 영향력과 구속력들 안에서 이것을 거스르는 어떠한 시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들을 설명하였다. 그것을 대항해서 복음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전략은 불투명하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밑바닥 현장의 평범한 생활인들이 시도할 수 있는 작은 어떤 행동과 움직임들이 종종 큰 변화의 물꼬를 일으키는 가능성을 지적해 주었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는 상부의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평범한 생활인들이 삶 속에서 시도하는 작은 행동으로 발생한다는 원리를 보여주었다. 동유럽의 어느 커피숍 안에서 각 사람이 나누기 시작한 간단한 싯구절들, “나는 더 이상 공산주의를 믿지 않는다”는 2줄 정도의 고백들로 출발해서 이것이 점차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어질 때 마침내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결과가 일어났던 것을 실례로 들었다.

앨랜 교수의 나눔을 듣고 아프리카 리더들 안에 뜨거운 환영과 공감의 무드가 조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수집하면서 그 안에서 이야기를 통한 변화를 도모하는 방식은 아프리카의 전통문화에 잘 맞는 너무나 효과적인 방법론이라고 했다. 어려운 학문적 이론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소수 엘리트들의 정책 결정들을 통해서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 스스로 안에서 이야기들의 충돌과 융합을 경험하는 가운데 각자가 결정하는 작은 행동들을 통하여 아래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능성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데 커다란 공감과 찬사를 표현하였다.

끝으로 이번 세미나는 선교적 미래 교회를 연구하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서구사회만의 이슈가 아니라 아프리카와 한국을 포함하여 근대성의 영향을 받고 있는 다른 모든 지역들을 포괄하는 국제적 작업으로 확대될 것을 결정하였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제안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후기 근대성(세계화 문화들)의 도전을 받고 있는 다양한 지역의 선교 현장들 안에서,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선교를 분별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국제 네트워크”이다Global network of friends or disciples of Christ, discerning what God is up to in a range of local missional contexts, in its face of “late modernity” or globalizing cultures. 세계화를 겪고 있는 다양한 문화들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누는 지역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이를 통하여 성령께서 진행하시는 선교가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나와 우리 가정은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의 선교를 마치고 이제 한국에서 선교 훈련 사역을 섬기고 있다. 새롭게 만나는 한국의 현실이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것을 실감한다. 일찍이 레슬리 뉴비긴이 경험했던 혼란과 충격의 일부를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지금 세계화의 문화적 홍수와 온갖 근대화의 모순들로 인해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본다.

이 사회적 격변과 동요의 한가운데서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심각히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사회와 세상을 향하여 어떠한 선교를 진행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방법으로 거기에 동참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지 겸손히 다시 묻고 싶은 시점이다. 국제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더불어서 21세기 새로운 선교의 부르심을 분별하려고 하는 이 프로젝트가 한국 교회에 축복과 격려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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