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에 먼 수련회

10회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 참석한 수련회였다. 그것도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참석할 예정이던 교갱협 광주 지역 회장께서 대신 다녀올 수 있겠느냐는 급한 연락을 취해서였다. 일정을 살펴보니 선약이 오전에서 오후로 변경되어서 다녀오라는 하나님의 징조로 여겨졌다. 등이 떠밀린 셈이다.

편한 사람들을 만나다

개회예배를 마치고 회장께 다가갔다. 몇 분에게 불참 이유를 전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인사를 드리니 의례적이 아니라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10여 년을 한국 교회의 갱신, 일치 등을 위해 치열하게 보낸 투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어 지면을 통해서 알게 된 여러분들과 인사를 하고 얘기도 나누었다.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한목협 임원 중에는 신앙고백을 하는 교단이라면 연합해야 한다는 의견 때문에 교단에서 제명 당한 분도 있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신학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에 교단의 법으로도 어떻게 하지 못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수로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단다. 이단이라는 억지 소리를 들으며 지리하고 힘든 기간을 견디게 하시더니 그 분의 자녀들에게는 믿음의 복을 주셨다. 3대째 목회자의 집안이라고 한다. 목회자의 길을 들어서는 아들에게 이 시대를 위해 일하도록 당부한 아버지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보낸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허옇게 세었을까? 교재에 실린 지난 발자취 사진을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또 체구는 작아도 나뉘어진 교회 화합을 위해 하나님 편에 서서 이겨낸 거인도 있었다.

사람을 사귀기 힘들어 하는 나에게 처음 만난 이들이 오래 사귄 사람처럼 편한 것은 왜일까? 그랬다. 모세도 모든 사람 중에 온유한 사람이었고 예수님도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었다. 오래 신은 신발처럼 편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복이다.

잘 준비된 강의였다

우연일까, 의도적일까? 10년 전에 세운 강사가 10년 만에 다시 강의를 했다. 10년 전에 강의한 내용이 지금 그대로 거의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다시 그는 교회 회복을 위해 영성, 도덕성, 공동체성의 회복을 강조했다. 다른 강사들도 한국 교회의 문제는 지도자의 문제, 즉 목회자의 문제라고 얘기한다, 아픈 얘기다. 현장을 발로 뛰어 준비된 강의, 북 받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해 눈물을 훔치는 강사였다. 부럽다!

많은 분량에 작은 글씨, 어렵게 여겨지는 무거운 주제들로 채워진 교재 때문에 저절로 이해와 집중을 위한 기도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인 1997년에 교회를 설립하여 11주년 기념행사 중인 나와 교회에 유익한 시간이었다. 기도 응답이다.

희망을 보다

착각은 이북에서도 자유라는데, 교단의 유력한 분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젊은 목회자들의 참석이 눈에 들어 왔다. 같은 방을 쓴 대전에서 부목사로 5년을 지낸 목회자는 세 번째 참여하고 있었다. 유익해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부교역자들은 교회 행사 때문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목사 안수 후 20년이 지나니 늘은 것이 눈치인데 신실함과 자부심이 얼굴에 드러나 보인다.

위기는 절반이 기회라고 했다. 현재에 대한 바른 처방과 그 처방을 받아들일 10명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다면 포기는 이르다. 유럽 교회의 쇠퇴에서 배우면 약이 될 것이다.

가까이 해야 할 수련회

2박 3일이 줄어 1박 2일 수련회로 되어 사라진 여유, 개회 시간이 되어도 띄엄띄엄 앉은 자리, 질문 없이 마친 포럼, 밤 순서가 끝나고 돌아가는 걸음들, 등록비 보다 몇 배 많은 여비 등에 대해 보완과 개선을 기대해 본다.

수련회장 무대(강단) 뒤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를 생각나게 하는 꽃들이 들판 하나 가득하니 아름답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서 이룬 조화다. 조국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하나하나 모여지면 좋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이고 싶다. 빈 자리 있으면 태워달라고 해서 다음 수련회 걸음을 나서야겠다. 등 떠밀리지 말고. 참 좋은 사람들과 강의를 어디서 만나기가 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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