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 - 직무상의 본분. 이렇게 국어사전은 직분을 정의하고 있다. 교회 직분은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소명을 따라 교회를 섬기기 위해 맡겨주신 저마다의 직무를 위한 본분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의 이런 정의가 교회 현실에 들어오면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된다. 그 대표 사례가 감투나 명예로 아는 것이다. 감투로 알면 권력행사를 하려들고, 명예로 알면 쓸모없는 거드름이나 신분상승 또는 통과의례로 생각할 것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은 지극히 세속적이며 유교적인 신분의 서열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주님께서도 일찍이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인간의 타락한 죄성과 그에서 비롯된 교만은 직분의 성경적인 정신과 삶, 사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것은 더 나아가서 다른 지체들과의 바른 관계, 팀 사역을 가로막고 교회 공동체를 세우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 절반의 문제가 강단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변질이라면 또 다른 절반의 원인은 직분의 성경적인 개념과 정신, 실천의 변질로 보고 싶다. 이 문제는 그만큼 한국 교회에서 심각한 실제 상황이다. 시급히 직분이 사역을 위한 섬김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는 성경의 모습대로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직분이나 봉사를 뜻하는 디아코노스(디아코니아) 자체가 섬기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신약 첫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에서 집사란 단어도 바로 이 '디아코노스'란 단어이다. 테이어(Thayer)는 '디아코노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다른 사람 특히 주인의 명령을 실행하는 자로서 종, 시중드는 사람, 하인 등의 의미이다. 교회에서 그에게 맡긴 직분으로서 집사는 그들의 필요를 위해 모은 돈을 관리하거나 나누어주거나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한다."

직분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말미암아 직분은 쟁취의 대상이나 노력의 산물 또는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서리집사에서 안수집사 되면 고개의 각도가 달라지고, 안수집사가 장로 되면 목과 얼굴에 힘주는 정도가 완연하게 달라진다. 물론 이것은 목회자들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힘은 있을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말이 힘이지 교회에서 힘이나 권력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낮아짐과 비움, 포기와 섬김, 희생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며 우리 주님의 한 평생 삶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자아와 죄성은 결코 직분의 본질인 섬김을 그렇게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쯤이나 한국 교회의 직분자들, 특히 지도자 위치에 있는 목사나 장로 등의 중직자들이 주님의 섬김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교회는 섬김과 섬김의 직분을 위해 몇 가지 나름대로 실천한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 및 직분과 사역의 성경적인 본질과 의미를 철저하게 배우며 아는 것이다. 바르게 배우지 못하고 잘못 아는 지식은 그릇된 가치와 행동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직분을 맡기지 않았다. 또한 공동체의 다른 지체에게 검증된 사람을 세우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무기명투표는 별 효력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안수집사, 권사, 장로 등을 세우기 위한 내부 약속과 절차를 일반적인 공동의회 방식의 추천이나 무기명 투표를 채택하지 않았다. 사실 500명만 넘어가도 대상자를 잘 알 수 없고 인기몰이 또는 오도된 여론 등으로 잘못 세워지는 경우가 허다함은 이미 잘 아는 현상이다. 우선 공동의회에서 후보자 추천을 받는다. 이 경우 투표지에 단순히 이름만 적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추천사유를 적도록 되어있다. 즉 인격과 삶, 신앙의 구체적인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음으론 추천된 후보자를 담임목사가 기도와 그 동안의 신앙생활 및 교회사역을 총체적으로 검토하여 대상자를 압축 결정한다. 이 방식은 공동의회 구성원인 일반교인과 지도자인 목사의 상호견제와 공동검증을 거치는 장점이 있다. 다음에 본인들에게 통보하며 기도로써 수락 여부를 결정하도록 일정한 시간을 준다. 이 경우에도 본인에게 문서로 그 내용과 직분자로서의 결심이나 신앙고백, 헌신 등이 요구되며 동의와 서약을 해야만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전부 통과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운다. 공동의회의 후보자 추천 투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으며 다만 희망자가 요청하면 그 내용을 개인적으로 공개해 준다. 투표 결과를 단순 공개하면 마치 인기투표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며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직식에서는 본인의 신앙고백과 간증이 미리 준비되며 그 후에도 교회 내부 약속에 따라 목사와 장로, 권사 등의 중직자는 일정 임기 후에 시무투표를 반드시 거치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와 약점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방식이다. 시무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임하도록 되어 있다. 중직자들의 전횡과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주권에 치명적인 해악이 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 때문이다.

아무튼 어떤 경우에도 교회 직분은 감투나 명예가 될 수 없다. 섬기는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섬김이야말로 복음과 구원의 본질이며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결정적인 삶으로 본다. 섬기는 자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며, 섬기는 삶이 가장 권위있는 삶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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