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1) 교갱협 제12차 영성수련회 주제특강

디모데전서 3: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아마 목회자들은 똑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저 역시 샘물교회의 아프칸사태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제가 이번 여름에 가지게 되었던 고뇌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고뇌이고 하나는 사람들에 관한 고뇌였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에 관한 고뇌라는 것은 왜 침묵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배형규 목사님이 순교하던 날에는 제 마음의 갈등이 극에 달했었는데 '왜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며, 왜 조롱당하고 계시는가'였습니다. 그리고 또 사람에 관한 고뇌는 이번 억류사태가 일어나고 네티즌들과 한국 국민들이 보여준 기독교에 대한 모독스러운 반응들이었습니다. 이 정도까지 한국교회를 폄하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목사로서 굉장한 자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마음의 뿌리는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이중적인 마음의 고통이었는데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오래 괴로워 하고 생각을 하면서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계시지만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계시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비지니스를 하면서 조금 자리가 잡힐만 할 때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셔서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는데 시골의 개척교회 같은 어려운 교회에서 사역하셨었고 교회를 너무 사랑하셔서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시고 17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안계시면 우리 집안과 내 인생은 망한 겁니다.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시는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침묵하실 수가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데 제 마음 속에 방어하는 한 가지 생각이 하나님 없다고 결론짓기에는 그동안 제 삶을 통해서 너무 많이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 고귀한 전도에 대해서 이렇게 본질을 흐려놓게 만들었습니까? 5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도 도저히 하나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펼쳐졌거든요, 우리 교회 시무장로님 가정의 자녀가 유학을 갔는데 어느 날 비보가 날아왔습니다. 애가 갑자기 쓰러져서 정밀검사를 해보니까 뇌종양으로 온 머릿속에 종양이 퍼져서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사형선고를 받고 수의를 챙겨서 장례를 치르려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온 교회가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결과만 말씀드리면 지금은 멀쩡하게 살아서 우리교회 성가대에서 매 주일마다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 작년 이맘때 쯤이었던 것 같은데 고3 학생이 자꾸 시름시름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암 3기라는 겁니다. 열일곱 번인가를 항암치료를 받았는데도 병은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다가 12월 말에는 병원으로부터 급기야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선고가 있던 날 학생의 어머님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치료하신다는 확신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원과 약을 모두 끊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작년 후반부에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자꾸 아픈 사람은 일어나라고 하고 아픈데 손 얹으라고 하고 철야기도 때마다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어머니가 참석을 했었다고 합니다. 2월 달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까 암 덩어리가 완전히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도 이상해서 의심을 하면서 의사선생님을 괴롭히니까 나중에는 화를 내시더랍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지금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침묵하신다는 명제에 다다르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타 교회에 다니시는 자매 분인데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는 모릅니다.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여러 가지로 힘드신 때인 줄 알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 목사님께 상의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아파트 단지라 계속 입주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도에 좋은 기회로 보고 많은 인력과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 열심을 냈습니다. 물론 처음 의도는 좋았고 열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입주 시 여러 교회가 자신의 교회로 전도해 가려 경쟁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전도라기보다는 수평이동이지요. 그런 과정 중에서 교회들끼리 경쟁하다가 서로 비방하기도 하고 성도들을 가로채 가기도 하고 교인이 이사 오는 것 같으면 자신의 교회 교패를 먼저 붙이는 등 지역 내 8~9개 교회의 교역자와 성도들이 돌아가며 현장을 하루종일 지킵니다. 그러다 보면 물론 성과도 있지요.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 땅을 황폐화시키기도 합니다. 어제는 제 당번이라 나갔더니 한 남자가 와서 욕을 하며 '차라리 나가서 전도를 해라. 남 영업하기 힘들게 몰려다니지 좀 말아라' 이렇게 추궁을 하는 겁니다."

편지 뒷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자기 교회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담임목사님에게 여러 차례 건의를 했지만 담임목사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인근교회가 다 똑같이 그렇게 하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성도들을 다 뺏기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 메일이 '하나님,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라고 항의하는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대답처럼 느껴졌습니다. 전도가 뭡니까? 우리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주님께서 원하셔서 순결하게 화답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면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허무를 향하여 달려가는 이 시대 민족 백성들이 너무 불쌍해서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에 샘물교회 사태가 터지고 나서 가만히 봤더니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비지니스로 보고 있고 목사들이 탐욕 때문에 자기 교회 숫자를 늘리려고 하는 게 전도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까? 누가 이 고귀한 전도에 대해서 이렇게 본질을 흐려놓게 만들었습니까?

 

영적 재앙을 피하는 세 가지 대안 - 회개, 겸손, 기도

올해가 평양 대부흥 100주년 아닙니까? 한국의 5만 교회가 이렇게 집중적으로 한 토픽을 놓고 기도했던 것도 드문 일입니다. 모든 한국교회가 평양 대부흥의 재현을 갈망하는 2007년도에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무슨 뜻일까를 생각해 보니까 어쩌면 하나님의 기도응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역대하 7장 13~14절을 꺼내 읽었는데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이 말씀은 우리 노회에서 평양 대부흥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릴 때 부족한 저를 강사로 세우셔서 제가 설교했던 본문입니다. 이번에 아프칸 사태가 터지고 이 말씀을 다시 읽는데 마음에 전율이 왔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무서운 재앙을 경고하셨고, 이 재앙이 찾아올 때 더 무서운 하나님의 침묵을 예고하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2월 둘째 주일에 하나님이 이런 일을 우리에게 주실 때 대안도 주셨다며 전해드린 14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찌라"

노회에서 설교하면서 대안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회개하기 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설교를 했는데 이번 아프칸 사태가 터지고 나서 수 주 동안 고뇌하다가 발견한 가슴 아픈 결론은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대안으로 제시해 주신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순종한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 회개

첫 번째로 회개의 문제입니다. 저, 회개 많이 했습니다. 교갱협 수련회에 올 때마다 눈물을 안 쏟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슴을 찢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회개 많이 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번에 상암에서, 해운대에서, 20만 명이 모이고 10만 명이 모여서 지역마다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여름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회개는 그게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회개를 어떻게 정의하시는가 하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동기가 부여되긴 하지만 그렇게 하고 끝나는게 회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프칸 사태가 터지고 온 나라가 한국교회를 비난하는데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그 즈음, 배형규 목사님이  순교하던 소식이 전해지던 그 어간인데 어떤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2층에는 개척교회가 있고 분당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수천 명 모이는 대형교회가 그 건물의 1층을 교육관으로 장악을 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그 개척교회 밑에 대형교회가 공간을 쓸 수밖에 없으면 상식적으로 간판을 달면 안 되잖아요. 2층 개척교회 밑의 그 큰 교회가 큰 간판으로 온 벽에 사방으로 도배를 해놓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인식할 지 그날 따라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오는 충격이 '그러면 너는 깨끗하냐?'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이런 슬픈 일을 허락하시고 침묵하시는가? 체육관에 모여서 울고불고 하나님께 회개한다고 그러면서 그 다음 주일에는 개척교회 앞에서 전단지 나눠주고, 저 같이 교활한 사람들은 표 안나게 은근하게 그런 쪽으로 몰고 나가고, 머리가 조금 둔한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욕 먹어가면서 그런 짓을 하고, 궁극적으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가 내 심령 안에서 온전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여름 두 주 동안 침묵하면서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돌이키라는 겁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2) 겸손

두 번째 겸손의 문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번 아프칸 사태 이후,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질타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가 몇 개가 있는데 '독선, 오만, 안하무인' 입니다. '안하무인'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이 단어를 찾아보고 분당우리교회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시덥지 않은 은사 하나 체험했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함부로 눈 아래로 보고 정죄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대리인이나 되는 것처럼 날마다 교회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 다음에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책망은 '너는?'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껏 말씀드립니다. 교회가 좀 커졌다고 해서 눈 아래로 깔고 사람들을 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자기 확신이 가져다주는 교만, 항상 목사는 옳고 항상 목사는 옳아야 되고 그 옳은 목사에 대해서 좋지 않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다 교만의 뿌리였습니다. 내가 옳은 일을 하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교만의 뿌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기도

마지막 세 번째로 주시는 대안은 기도입니다. 14절 말미에 하나님이 기도를 어떻게 정의해 주시는가 하면 '내 얼굴을 찾으면' 즉, 영적인 본질 회복을 추구하는 몸부림이 기도라는 겁니다. 죄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인생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간할 수 없이 무지하기에 본질을 구하는 것,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기도라는 겁니다. 날마다 이것이 옳으냐고 하나님께 되묻는 행위가 기도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보다는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기도를 훨씬 많이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돕는 손은 구했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행위는 우리의 기도 안에 담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여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배형규 목사님과 심성민 형제가 살해당할 때만 하나님이 침묵한 게 아니라 요셉이 웅덩이에 갇혀 형제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억울하게 인신매매 당해서 애굽으로 끌려갈 때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으며, 그 장한 요셉이 여자의 유혹을 이겨내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 비열한 인간들이 억울한 음모를 꾸며 강간미수범이라고 감옥에 쳐 넣을 때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 때만 침묵하셨습니까? 1866년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했던 토마스 선교사가 이 땅에서 비참하게 피를 흘릴 때에도 하나님은 냉정하게 침묵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 미개한 조선 땅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억울하게 피를 흘릴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맛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런 무서운 하나님의 침묵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영적부흥을 꿈꾸며

제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서 내린 결론은 이 샘물교회의 아프칸 사태는 평양 대부흥을 갈망하는 한국 5만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징계적인 측면, 우리가 진심으로 악한 길에서 되돌아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징계와 그 반면 하나님의 복이 담겨져 있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힘을 내야겠고, 하반기 사역에는 우리 성도들과 더불어 꿈을 가지고 달려 나가야 되겠다는 마음의 확신이 솟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고하신 이 세 가지 말씀을 조목조목 점검하며 하나님 앞으로 달려나갈 때 진정한 부흥이 우리 교회에 임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 당회에서 선언적으로 몇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복지재단은 이미 하고 있지만 박원순 변호사님이 하시는 '아름다운가게'가 성남의 낙후된 지역에서 8월말에 오픈됩니다. 분당의 잘사는 사람들이 입지도 않고 쌓아놓은 옷을 다 갖고 오도록 했습니다. 수 천벌의 옷을 세탁해서 양복 한 벌에 오천 원, 바지 한 벌에 이천 원으로 수급하는 일을 하기로 했고, 농어촌교회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을 위해 '생명보험 들어주기 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분당우리교회의 존재가 하나님과 사람들 눈에 탐욕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저는 1961년생으로 한국 나이로는 47세입니다. 저는 2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금식기도 하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이후에 우리 가정에 엄청난 후유증이 광풍처럼 몰려왔습니다. 저는 우리 아버지를 이해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은혜 받아서 목사가 되었으면 목회 잘하면 그만이지 금식하다가 돌아가시면 어떡합니까? 또 우리 어머니도 이해가 안됩니다. 저희 어머니는 처음에 목사 사모로서 시집간 게 아닙니다. 결혼할 때는 저희 아버지가 불신자였으니까요. 결혼했더니 어느날 갑자기 바울처럼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니 신학교로 가신 겁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교회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교회 위해서 기도하러 가겠다고 가더니 시체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저한테 최근에 고백하시기를 어머니 생애에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머니가 자꾸 저보고 목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가 기도하다가 돌아가시는 영광은 누렸지만 열매는 못 거뒀으니까 네가 그 뒤를 이어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좀 이상하십니다. 남편이 그러다가 목숨을 잃었으면 그걸로 되었지 우리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집요하게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었던 게 그 얘기입니다.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 29살까지 버텼습니다. 어머니가 고3 때 저 보고 너는 일반대학을 가서 세상 학문을 경험하고 목사가 되라는 겁니다. 누가 목사가 된다고 했나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비지니스를 시작하고 완전히 딴 길로 갔는데도 어머니는 꿈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교회를 가면 작전을 바꿨는지 혼자 독백을 하십니다. '리더십이 아까운데... 목사가 되면 잘 할텐데...' 하시며 혼자 중얼중얼 하십니다.

제가 29살에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충동이 밀려왔습니다. 꿈에 어머니를 앉혀놓고 설교도 하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집요하게 세뇌를 당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은 뜨겁게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사랑했습니다. 29살 가을에 또 그 충동이 밀려왔습니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양단간에 결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신구약성경을 한 번 읽으면서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했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두 달 만에 일독을 했으니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짐작이 가시죠? 하나님의 작전에 완전히 휘말린 겁니다. 소선지서 쯤 읽는데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에 옥한흠 목사님의 테이프를 미국서점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스가랴서에 나오는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확신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총신대신대원에 90년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나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다

옥한흠 목사님은 제가 신학하는데 촉매제로 쓰신 분이셔서 사모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주 사랑의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그러던 즈음에 92년말 신대원 3학년 때 사랑의교회로 부임을 했습니다. 학교에 공고가 났는데 "교육전도사 모집, 청소년 파트, 1학년 중에서, 옥한흠 목사"라고 되어 있었지만 저는 졸업반이었는데도 무조건 원서를 냈습니다. 원서를 내고 불철주야 기도하기를 심사위원들의 눈을 가리셔서 내가 3학년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않게 해주시라고 매달렸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역을 제가 하려고 해서 한 게 아닙니다. 뭐든지 시켜주면 무조건 하기로 했으니까 고3 부서 하라고 해서 들어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을 본격적으로 했는데 한 3, 4년 지나니까 싫증이 났습니다. 교회 사역의 3D 중에 가장 힘든 게 중고등부입니다. 유치부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그런데 귀여워요. 청년대학부는 귀엽지는 않아요. 그런데 말귀를 알아들어요. 중고등부는 귀엽지도 않은 것들이 말귀도 못 알아듣습니다. 한 3, 4년 하고 1,000여 명 모이니까 교회에서 2, 3명의 파트사역자를 보내주셔서 저랑 동역하도록 해주셨는데 3, 4년 지나서 보니까 이 후배가 분명히 4년 전에 학생이었고 나는 그 때 강도사였는데 나는 아직도 똑같이 중고등부에 있는데 이 후배는 졸업하더니 쭉쭉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불안해져서 한 5, 6년 정도될 때 하나님께 서원 비슷한 걸 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개인적인 스케쥴은 반납하겠습니다. 이제 청소년 사역 5년 하고 어른 목회 3년 하고 그 다음에 개척하고 청빙받고 이런 스케쥴을 안가지기로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이 안 시키시면 이거 하다가 인생을 끝내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작정을 하고 본당과 담을 쌓았습니다. 사랑의교회 교육부 사무실은 본당과 떨어져서 있습니다. 얼마나 제가 청소년 사역에 몰두를 했는지 간혹 동기들이 전화가 와서 사랑의교회에서 이런 행사가 있는데 좀 도와달라면 저는 "우리 교회에 그런 행사가 있어요?" 하니까 친구가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이 목사, 도와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합니다. 근데 저는 그 자체를 진짜로 처음 들었었습니다. 그 정도로 청소년 사역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98년인가 99년에 옥한흠 목사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제가 40대가 되니까 목사님 보시기에 안쓰러우셨는지 "너 나이가 자꾸 드는데 언제까지 중등부만 하겠냐? 이제 내려놓고 어른 사역에 와서 몇 년 훈련받고 개척을 하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가 귀에 들려지는 순간 하늘 문이 열리고 평강이 물밀 듯 밀려오는데 '내가 이제 저 인간들 떠날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제 입에서 뜬금없는 이상한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이 통전적으로 저를 다스리는 분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등부만 열심히 하더라도 어른 사역 많이 한 어떤 목회자 못지않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 제가 사랑의교회에서 중등부만 하다가 떠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게 미쳤나?' 했습니다. 제가 그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데 옥 목사님께서 팔짱을 끼시고 창 밖을 한참 응시하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무겁게 한마디 하시는데 저보고 "너 참 고집 세다. 너 좋은 대로 해라" 하셨습니다.

 

분당우리교회를 개척하다

그래서 사랑의교회에 92년 말에 들어가서 2002년 2월 마지막 주 사임할 때까지 고3부 2년, 중등부 5년, 고등1,2학년 2년, 마지막 해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고3부를 마치고 개척을 했습니다. 2월 마지막 주일날 졸업예배를 드려주고 3월 첫 주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청소년 사역에 몰두를 했는지 어른 사역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랑의교회에 10년 있었는데 사랑의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랑 가까운 몇몇 목사님들한테 밥 사주고 하면서 사랑의교회 시스템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옥 목사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주일학교 교사들 한 30여 분 정도가 같이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정이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죽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그 주옥같은 옥한흠 목사님 설교를 더 이상 못 듣게 된다는 게 보통 일이겠습니까? 그 좋은 사랑의교회를 떠나 저 같이 어설픈 사람을 따라가는 게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분이 저를 댁으로 초청해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제까지 청소년 사역만 했는데 개척을 앞두고 장년 목회에 어떤 목회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그 분이 막 웃으시더니 용케도 저를 따라왔습니다. 한 서너 달 지나서 창립멤버들이 모였는데 그 분이 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었습니다. 자기는 자기 영혼과 자기 자녀들의 장래가 걸려있는 문제여서 심각하게 물었는데 세상에 그런 계획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농담이겠거니 하고 믿고 따라왔는데 와서 보니까 진짜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제가 교구편성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했으니까요.

송림중고등학교 땅이 10,000평입니다. 이사장님은 교회도 안다니는 분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호의적인지 지금도 교회를 계속 쓰라고 내주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걸 가지고 목회 비결이 뭐냐? 도대체 어떻게 하냐? 사랑의교회에서 많이 왔냐? 그러는데 사랑의교회 같이 좋은 교회를 놔두고 왜 우리교회를 옵니까? 사랑의교회에서 오신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건 인간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해 송림중고등학교로 갔는데 개척교회가 1,000석 가까운 강당에서 설교를 하니까 메아리가 쳐서 설교가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썰렁했는데 그 해 연말부터 하나님이 표적을 보여주시는데 매 주마다 50명씩 하나님이 줄을 세워서 보내주셨습니다. 평균적으로 50명씩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구정이 지나자 갑자기 100명이 늘어났습니다. 교역자회의를 하면서 농담으로 하나님이 50명 법칙을 깨뜨리셨나 보다 하니까 창립 당시 후배목사가 말하기를 "지난 주 설날이라 한 주 쉬었잖아요. 그러니까 두 배가 왔지요"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실화입니다. 교역자회의 때 나왔던 얘기입니다. 5년 만에 6,500명이 모였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저에게 못을 박아서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표적으로 주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옥 목사님 방에 가서 통전적으로 역사하심을 이론적으로 하나님께 고백해 드렸는데 지난 5년 동안 하나님이 저의 입술의 고백을 제 삶 속에서 표적을 통해서 그대로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교역자들과 대화할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은 "부교역자 시절에 쓸데없이 자료 모으고 자신이 목회할 때를 위해서 자꾸 챙기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부교역자 시절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거하다 죽을 사람처럼 섬기면 우주를 통전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책임져 주신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세 가지 믿음, 본질, 비전

지난 몇 주 동안 마음으로 고뇌하고 괴로워 하면서 깨달은 날마다 싸우면서 회복해야 될 몇 가지를 간단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1) 믿음

첫째는 믿음의 회복입니다. 총신대에 입학을 했더니 신학교의 교훈이 촌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시골 초등학교 교훈처럼 뭐가 되라, 뭐가 되라, 뭐가 되라, 이렇게 다섯 가지나 있는데 볼 때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그건 이해가 되지만 신자가 되라는 볼수록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신자가 됐으니까 미국의 비지니스를 다 정리하고 목사가 되려고 여기에 왔지 신자가 아니면 여기에 왜 왔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총신을 졸업하고 목사안수 받은 지 십 몇 년이 지나면서 양심껏 고백한다면 뒤의 네 가지는 안중에도 없고 이 신자가 되라는 말이 뼈에 사무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유명한 나사로 사건이 나오는데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는 예수님을 너무 너무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던 마리아를 위시해서 너무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도 각별히 그 삼남매를 사랑했는데 어느 날 나사로가 죽어갔습니다. 하룻길쯤 되는 거리로 사람을 보내서 우리 오빠가 다 죽어간다고 얘기하는데 예수님이 이상하게 이틀을 지체하셨습니다. 사람 보내서 전갈하는데 하루 걸렸고 예수님이 가시는데 하루 걸렸고 예수님이 지체하시는데 이틀 걸렸고 나흘이 지나서 가니 이미 상황이 끝났습니다. 이미 죽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마리아는 마중도 안 나왔습니다. 마르다는 겨우 마중을 나왔는데 만나자마자 "예수님이 계셨으면 우리 오빠 안 죽었을 텐데..." 그렇게 마음이 상해 있는데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 마르다의 믿음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향해서 섭섭했는데 예수님을 향하여 마르다가 부활신앙을 고백합니다. 11장 24절에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지금은 예수님이 안 도와주셔서 우리 오빠가 죽었지만 다시 오빠가 부활할 날이 있을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르다를 정말 존경합니다. 자기 오빠를 고쳐낸 상태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침묵으로 말미암아 오빠가 죽은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활신앙을 고백했던 여자가 마르다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는데 예수님이 그 마르다를 데리고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셔서 11장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깨달았던 것은 나의 믿음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방해하는 방해꾼 노릇을 마르다가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 보니까 교회사역을 방해하는 사람은 초신자가 아닙니다. 교회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전부 불철주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중직자들이 교회를 방해합니다. 이게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방법으로 목회하면 이론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저만 그렇습니까?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주님이 그깟 돌 하나 못 옮기시겠습니까? 그런데 돌은 너희들이 옮기라는 겁니다. 주님이 저보고 가서 나사로 살리라고 하시면 저는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마음만 먹으면 돌은 옮길 수 있습니다. 사복음서에서 주님이 행하셨던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저보고 하라고 하시면 못하지만 산상수훈에 나와 있는 원수를 사랑해라, 누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줘라,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 그건 제가 할 수 있더라구요. 그런데 안 하는게 우리 목사들입니다.

우리만큼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들이 또 있습니까? 제가 청소년 사역을 10년 했다고 뭐 청소년의 대가다, 청소년의 아버지다, 청소년의 전문가다 하지만 저는 이 말씀 앞에 가책을 느낍니다. 제가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 앞에 수없이 했던 질문이었어요. "하나님, 이 인간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요. 얘는 가출했고, 본드했고, 얘는 안 되요. 얘는 못 돌아온다니까요" 이게 현장에서 하는 우리 목사님들의 목소리는 아닙니까? 그 집사 안 된다니까요? 그 장로 죽은 지 나흘 되었다니까요? 이게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날마다 우리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저 인간은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이 돌을 옮기라고 할 때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교갱협에 오셔서 추상적인 기도를 많이 하시기보다는 모든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남한산성에서 요양하고 계실 때 소천하시기 직전에 젊은 몇 분의 목사님들이 인사를 갔답니다. 인사를 드리고 한경직 목사님께 젊은 목사들한테 주실 말씀을 여쭈었더니 그 분이 하신 한마디가 "여러분들, 예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셨답니다. 살릴 수 없는 죽은 나사로 살리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돌을 옮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으로 사랑하기 시작하고 용서하기 시작하고 선입견을 내려놓고 고정관념을 지우기 시작하는 것이 돌을 옮기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2) 본질

두 번째는 본질 회복입니다. 얼마 전 '밀양'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33세 된 젊은 여자가 갑자기 남편을 사고로 잃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자기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갑니다. 거기서 피아노학원을 차리고 잘 사는데 어느 날 아들이 유괴를 당하고 살해를 당합니다. 이 여자가 거의 미쳐서 절망에 빠져있는데 건너편에 약국하는 예수님을 잘 믿는 장로님 집에서 이 주인공을 전도합니다. 금요철야기도회에 참석을 했다가 억눌렸던 응어리가 다 터지게 됩니다. 통곡을 하며 우는데 담임목사님이 머리에 안수기도를 해줍니다.

이 여자는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마치 광신자처럼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기로 결정했다는 선언을 교회 성도들 앞에서 합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서 그 원수에게 자신이 용서한 사실을 전하겠다는 겁니다. 주위의 성도들이 다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기어이 감옥을 찾아갑니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우리 아들을 죽이고 난 다음에 절망에 골짜기를 갔지만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셔서 오늘 당신을 찾아온 것은 진정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서이다" 그랬더니 그 살인범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엎드려 빌 줄 알았는데 빙긋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나도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이미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고 그러고 나니까 이 감옥이 천국같고 하루하루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이 말을 듣고 정신을 잃고 급기야 실신합니다. 그렇게 이 여자가 하나님한테서 등을 돌립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이 영화의 키워드는 '허영'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밀양에 내려와서 이 여자가 가진 돈은 800~900만원밖에 없는데 33살에 남편 잃고 아들하고 사는데 사람들이 업신여길까 봐 돈 있는 척을 합니다. 부동산업자한테 땅 투자를 하겠다고 자꾸 연락을 하는데 그것이 살인범 귀에 들어가서 사건이 터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그 여자가 교회를 찾고 사람들한테 자신이 얼마나 예수 잘 믿는가를 과시하기 시작합니다. 본능적으로 그 마음에 감옥에 가서 자기 아들 죽인 원수를 용서하겠다고 말한 것이 이 여자의 중심에 있는 신앙고백이라기보다는 교회공동체에서 영적 허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나서 원수를 사랑하는 무덤에 돌을 옮기는 마음으로 그 감옥에 가서 살인범을 만났다면 하나님이 그를 먼저 용서하신 것이 격분할 일입니까? 그 여자는 마음으로 용서한 적이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 여자와 비슷한 삶을 살 때가 한두 번입니까?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 커서 그 사죄의 은총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집사님과 장로님을 용서한다기보다는 그래야만 되니까 하는 것이 바로 영적 허영입니다. 이번 교갱협 수련회에서 만나는 동역자들에게 허영심이라는 코드로 인사를 나누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허영을 벗어버리고 영적 본질을 회복하는 목회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비전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비전 회복입니다. 이 비전 회복을 위해서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가짜 비전, 종교적 스타가 되고자 하는 본능이 만들어준 야망을 벗어버리는 것으로부터 비전이 시작됩니다. 작년 초에 분당우리교회가 4,500명 정도 모일 때인 것 같은데 그 때에 장로님 세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서울에 있는 기성교단의 성락교회가 분당의 율동공원 앞에 큰 수양관을 지었습니다. 수 년 전부터 땅을 사고 건물을 지었는데 최근에 결정하기를 아무래도 분당으로 교회를 이전하는 것이 어려워서 이걸 부득불 넘겨야 하는데 분당우리교회가 학교를 빌려쓰고 있으니까 이 건물을 인수해 달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구미가 당기는 말은 교회가 성전을 가지고 장사하는게 아니니 들어간 돈만 내면 된다는 거였습니다. 부동산 관계자한테 문의를 했더니 무조건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170억이었는데 사서 되팔아도 100억은 남는다는 겁니다. 장로님들한테 말씀드렸더니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며 너무들 좋아했습니다.

며칠 동안 제 머릿속으로 그림을 수없이 그렸습니다. 주차장 완전히 확보되고, 공원이 뒤를 끼고 있기에 주일학교 분반공부는 걱정없습니다. 마음에 흥분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희한하게 막으셨습니다. 명분으로 봐도 그렇고 교세확장이 아니라 인원수용이 안되서 그러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계속해서 부담이 생겼습니다. 제가 그래도 옥한흠 목사님 밑에서 10년을 배웠지 않습니까? 제자훈련하는 교회라고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3년여 만에 몇 천 명 모이는 것도 감당을 못하고 있는데 그리로 자리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하면 제자훈련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장 수급을 어떻게 합니까? 제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눈물로 포기했습니다. 당회를 소집해서 "장로님, 지금은 아닙니다" 했더니 어이가 없다며 일단 사놓자는 겁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건물로 장사하기 싫어서 들어간 돈만 받고 넘기겠다는데 그걸 우리가 싸다고 사놓고 있는 자체가 얼마나 불신앙입니까? 그렇게는 못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걸 포기하는데 부끄러운 고백은 며칠을 앓아누웠습니다. 고열이 나고 두통이 생기고 제가 그 때 깨달은 것은 마음의 동기가 이렇게 몸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스타가 되고 싶은 탐욕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짱이 하나 있었습니다. 분당우리교회가 처음부터 송림중고등학교로 간 게 아닙니다. 저는 사랑의교회에 있으면서 큰 교회에서 누릴만한 것은 다 누려봤기에 큰 교회를 하고 싶은 생각은 당시에 추호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증인이시고 또 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개척을 할 때 옥목사님께서 후원을 해주셨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4층의 80평쯤 되는 공간을 얻었습니다. 좀 더 청구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80평 공간에 사무실, 화장실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약금 치르고 중도금 치르는 그 날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무장하고 은행에서 중도금을 치르려고 번호표를 뽑는데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분당에 있는 어느 목사인데 이 목사님 여기 못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난감합니까? 그래서 제가 계약을 하루만 미루자고 하고는 그 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통일교입니까? 여호와의 증인입니까? 제가 그날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인근의 몇 교회에 가서 양해를 구했는데 그 교회만 빠졌던 겁니다. "목사님, 이거 무산되면 사랑의교회 당회에서 개척시켜 주기로 한 것 취소하면 어떡합니까? 저 한 번만 봐주세요. 청소년 사역만 해서 제가 물정을 모릅니다. 2년 계약했으니까 2년 뒤에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십자가도 안 달고 교회 간판도 안 붙이고 주보에 인근교회 성도의 출입을 금한다고 쓰겠습니다. 그리고 2년 되면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입에서 너무 너무 슬픈 한마디가 나왔습니다. "이 목사님 말씀대로만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만 나는 목사를 안 믿습니다" 청소년 사역만 하던 제게는 비수같은 말이었습니다. 사정사정하다가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하고는 나왔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목회를 위해

그때 제가 마석에서 SCE 수련회를 할 때입니다. 수련회 하면 보통 600~700명 모이는데 그 해에는 2,000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주강사로 내려갔다가 계약하고 다시 가려고 했는데 기진맥진해서 갈 힘이 없어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집으로 갔습니다. 몸은 지쳐있고 머리는 어지럽고 어른 사역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온갖 상념에 젖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그 때 3살 된 막내아들이 저한테 막 달려와서 안기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만큼은 부끄러운 일은 안 하마. 내가 너한테 부끄러운 일은 안하고 살께.' 그러고는 조금 누웠다가 마석으로 갔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었는데 식사를 기다리는 줄이 밖에까지 나가있었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니까 아수라장인데 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가 10년 동안 너희들한테 바르게 살라고 가르쳤던 목사인데 너희들한테 부끄러운 짓은 안하고 살께' 그 때 노회의 많은 총회관계자분들이 오셨기에 문의를 했더니 다 하시는 얘기가 서울 같으면 말이 다르지만 분당 같은 신도시는 강행해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잠이 안 왔습니다. 뒤척거리며 밤을 보냈는데 새벽녘에 제 머릿속으로 구약의 두 인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 사람은 이삭이었습니다. 우물을 팠는데 시비 걸면 줘버리고 하는 이삭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또 한사람은 에서였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팔 때 현실을 과장했습니다. 한 끼 굶었는데 자기가 죽게 되었다며 이까짓 장자 명분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제 꼴이 에서와 꼭 같았습니다. 사실 분당에서 몇 주를 뒤져서 유일하게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걸 놓치면 내가 개척을 못한다는 두려움에 하루 종일 쌓여 있었는데 이게 과장이었던 겁니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니까 잃은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창립멤버들을 비상소집해서 그것을 내려놓겠다고 하고 천 몇 백 만원 손해를 봤습니다. 약한 교회에 헌금했다고 치기로 했고 창립멤버들 사이에 처음으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포기하고 미금역 앞에 60평 되는 공간이 있었는데 인근교회를 다니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는 안하시는데 벌써 난감해하는 마음이 느껴지잖아요. 알면서는 차마 못 하겠더군요. 또 포기했습니다. 사랑의교회 사임은 이미 결정이 되었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막막했습니다. 그 때 연결된 게 송림중고등학교입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장님은 교회도 안 다니십니다. 제가 그 때 깨달은 것은 인간적인 야망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정말 일하신다는 겁니다. 제가 성락기도원과 인간적인 야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힘은 개척할 때 경험했던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게 손해 보는 것 같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내려놓으니까 하나님이 일하셔서 송림중고등학교라는 10,000평도 더되는 공간을 주셨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합니다만 저는 오늘도 저랑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종교적인 스타가 되고 싶고, 여전히 유명해지고 싶고, 분당에서 제일 좋은 교회라는 소문을 듣고 싶은 저급한 욕구가 제 안에서 꿈틀거립니다. 그리고 날마다 싸웁니다. '네 아들한테 부끄러운 짓 하지 말고 살아라. 너 가르쳤던 청소년들한테 부끄러운 짓 하지 말고 살아라.' 종교적 스타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비전이 덧씌워집니다. 그것은 숫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결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제가 성락교회의 기도원을 포기하고 저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 그것도 저급한 욕구입니다. 이후로 다시는 저에게 공간을 허락하는 일이 없다 할 지라도 그것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게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본능으로는 유명해지고 싶고 이 여세를 몰아서 수 만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제 안에 있기 때문에 저는 기도합니다.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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