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1/03) 장로교 4개교단 목회자협의회 연합수련회 주제강연

한국교회의 미래를 말하려면 한국교회가 가진 문제에 대한 개혁과 갱신을 논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부분들이 지적되었다. 즉 돈과 밀착된 교회와 목회자, 권력과 결탁하려는 교회 지도자, 교회를 위한다며 행하는 교회의 범법행위, 기본적인 목회윤리조차 배제한 교회성장 지상주의, 교권을 차지하기 위한 파벌싸움, 자본주의적 개교회주의, 교회의 과다치장, 신앙과 생활의 혼란과 부실 등으로 오늘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의 발흥은 바로 오늘 우리 교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나열하고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과연 이러한 부정적인 한국교회 모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교회의 본질적인 과제에 대한 재인식

교회의 개혁적 과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우선 시대적인 상황변화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다가을 21세기는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교회도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상정한다. 물론 시대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게 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 하더라도 그 본질이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전신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말한다(엡 1:23). 그리스도로 충만함을 나타내는 것이 교회의 외형적 모습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이 교회의 내적 실상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영적 공동체로서의 충만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교회에 닥치는 위기감은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질이 상실되고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한다. 교회가 그리스도로 충만하며, 그리스도의 충만을 전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영적인 공동체여야 할 교회가 영성을 잃어버리고 있음이 문제의 핵심임이 분명하다. 영적 긴장감을 상실할 때 교회는 참다운 교회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위기가 다름아닌 영적 위기를 나타내고 있었음을 이스라엘이 경험한 거짓 예언자의 문제에서 발견하게 된다.

 

거짓 예언자를 통해 생각하는 교회의 바른 영성

성경 역사상 가장 극적인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의 정면대결이 일어나는 예레미야 27-29장의 장면은 예레미야를 중심하여 참과 거짓을 극명하게 구별하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취된 후라야 참 예언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건의 결국을 보기까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어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인 것 같은 지침이다.

예레미야 29장에서 나타나는 예레미야가 바벨론 유배지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두고 일어나는 갈등에서 보이는 대로 하나냐를 비롯한 거짓 예언자들은 그 애국심에서 결코 참 예언자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며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자세로 살 것을 권유한 예레미야는 외세에 굴복한 제국주의 입장이나 반역자 정도로밖에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말씀에 충실한 예레미야가 옳았음은 이후의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음을 통하여, 참 예언자는 그의 메시지를 상황(context)에 근거하지 않고 말씀(text)에 근거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상황은 말씀을 왜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상황을 직시하게 한다'는 지적은 옳은 것이다.

 

영성을 잃어버린 지도자들의 문제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교회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조금은 분명해진다. 전투는 전사가 행하지만 승패는 지휘관의 손에 달려 있다. 축구경기에서 골은 잘하는 선수가 넣지만, 그 골을 생산하는 데는 감독의 결정적인 기여가 있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지도자들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교회의 분열, 교회의 세속화, 물신숭배가 평신도들에게 외칠 때에는 아직 미래가 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그 길로 나아가면 대책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역사는 늘 대체적으로 교회를 파괴시키는 요소는 소위 성직자들에게서 시작하여 교회 전체를 타락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는 결국 지도자들의 영성과 관련되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느 교단의 어떤 목회자가, 어떤 부흥사가 자신을 거짓 예언자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말할 것인가? 따라서 우리는 왜곡된 영성을 가려내고 바른 영성을 찾아가는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개혁과 갱신의 주체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위해 부름받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이 역사의 중앙에 서 있다고 여긴 사람이 없었다. 출애굽의 대사명을 부여받은 모세는 다섯 번씩이나 자신의 무능, 준비되지 못함, 설득력 없음을 들어 소명을 거부하려 하였다. 아모스는 자신을 비난하고 유다로 물러가라는 아마샤의 도전에 자신은 예언자가 아니라는 말로 자신의 사명이 결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님을 입증하려 하였다, 자신은 목자였을 뿐이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어쩔 수 없이 사역에 나서게 되었음을 애써 설명하려 하였다.

유대 역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요시아 왕이 결국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지나친 자신감에 있었음을 지적하는 역대기사가의 지적은 반드시 새겨 들어야한다(대하 35:21-22 참조). 어느 종교개혁자가 자신을 개혁자로 기억해주기를 바란적이 있었는가? 진정한 개혁의 주체는 결코 꼭 같은 허물을 가진 인간 자신들일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개혁과 갱신은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철저한 복음적 생활에 기초한 인간의 인간다운 본연의 삶으로 나타나는 영성을 바탕으로 행하여야 하는 작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개혁을 위한 실제적인 과제들

1) 교회 정치적 개혁 우선

밀실정치, 붕당정치를 통한 교단 정치의 독점은 결국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총회와 산하 각종 조직에서의 자리차지를 위한 투쟁에만 관심을 갖게 한다. 이를 위하여 교단의 선거제도 개선, 행정 특히 인사제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제도적 개혁이 결코 교회개혁의 전부일 수도 최종 과제일 수도 없다. 그러나 이미 조직화된 사회와 교회 속에서 교회의 구조적 문제의 개혁 없이는 내용적인 변화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 목회신학적 변화와 개혁 모색

물론 이러한 정치적 개혁에 대한 노력은 자신의 목회현장에 대한 반성과 개혁 없이는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새로운 목회를 위한 노력을 함께 경주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부단히 목회자의 자기 갱신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목회와 신학발전을 위한 연구소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하여 자기 정체성 확인과 더불어 새로운 도전을 감당하도록 힘써 가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변화는 가장 우선되어야 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한다. 개혁을 외치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사람들이 목회자들이므로 자신을 바로 알기가 매우 어렵다. 자기 눈의 들보를 빼지 않고도 얼마든지 수많은 남의 들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목회자 상호간의 솔직한 충고를 할 수 있는 교제의 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각 교단 내의 연대운동이 바로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3) 목회자의 공동체성 개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목회자의 개교회 중심의 이기주의적인 자세에서 기인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모든 목회자들이 교단의 정치, 행정, 방향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의식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다수의 목회자가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교회의 갈 길을 숙고하기 시작하면 소수 독점에 따른 폐해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이 소속한 노회활동에 최선을 다하여 장로교 제도상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노력을 경주해가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노회는 목사를 안수하고, 장로를 세우도록 허락하는 등 교회조직의 결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노회가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가고 총회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하게 되면 교회의 변화와 개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하고 이를 주지시키는 일을 계속 해가야 할 것이다.

교단개혁을 통한 한국교회의 변화모색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처럼 철저하게 자신이 속한 교단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힘쓰는 것이 결국 한국교회의 변화를 위해 힘쓰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활동을 계속하려 한다.

 

교단일치의 과제를 향하여

결국 한국의 장로교회는 분열 당시의 이유가 많이 사라진 상황에서 일치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분열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일치의 방안을 찾아가는 노력과 함께 그 기저에 깔린 교권주의, 이권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등을 배격하도록 각 교단 내에서 젊은 목회자들이 최선을 다할 때 마침내 교회일치의 길이 열리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신학적인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통일성을 찾아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만큼 끊임없는 신학적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 일이 신학자들에게만 맡겨져 서로의 차이점만 확대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목회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

우리는 이러한 개혁운동을 하면서 인간은 점점 부패해져간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의 종말은 우리에게 온전한 인간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구제할 수 없는 종류의 존재로 만들어낼 것으로 말하고 있다(딤후 3장). 진화론자가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최후의 심판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두 손 들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사야에게 주어졌던 그 임무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결과에 지나치게 얽매일 일이 아니다. 일의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영적인 능력을 덧입어 끝까지 전투를 계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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