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과 어떤 관계이어야 할까?

▲ 굿미션네트워크 편, 조성돈, 정재영 편집, 예영커뮤니케이션, 2008-01-25, 276쪽, 10000원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

대학시절 읽었던 소책자의 제목이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불타 없어질 죄 많은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인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도 부러워할 만큼 크게 출세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인가? 둘 다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어야 할 활동 무대일 뿐,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도 아니다. 이것이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일 것이다.

「시민 사회 속의 기독교회」 역시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기독교회는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는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편에서는 세상의 모습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교회의 행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교회의 세습, 최근 TV에서 보도된 목회자들의 호화로운 생활 모습 등은 돈, 권력, 명예를 추구하는 세상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교회가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대안과 희망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비난의 소리도 높았다. 아마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반응이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한국 교회에 대해서 도를 넘어선 분노와 저주를 퍼부어 댔다. 하지만 옳고 그러고를 떠나서, 많은 이들의 이러한 과격한 반응들이 과연 옳은 일을 행하다가 겪게 된 교회의 고난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영화 '밀양'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회는 피상적이고 값싼 구원을 떠드는 '자기들만의 천국'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이 세상과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인가? 구별된 자로서 어떻게 다시 세상과 소통해야 할 것인가? 「시민 사회 속의 기독교회」는 이런 고민을 담고 있다. '시민 사회'에 대한 관심은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진다. 따라서 건강하고 성숙한 시민 사회는 모든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 사항이다. 하지만 시민 사회의 성숙이 종교, 특히 기독교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신학계에서의 시민 사회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사회과학계에서 시민 사회와 종교의 관련을 진지하게 논의한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언뜻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이 두 세계는 사실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민 사회는 개인의 이기성을 넘어서는 깊은 종교적 차원의 문화적 바탕을 필요로 한다. 또한 기독교회가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바로 이러한 가치와 문화를 제공해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시민 사회 속의 기독교회」는 이처럼 시민 사회와 기독교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올바른 실천의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시민 사회와 기독교회 사이의 관계이다. 첫 세 편의 논문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박영신의 글은 깊은 '의미' 차원에서 시민 사회와 종교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다루고 있으며, 이승훈의 글은 시민 사회의 개념과 역사를 소개하면서, 기독교가 시민 사회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밝히고 있다. 한편 이범성의 글은 '하나님 나라'라는 신학의 관점에서 시민 사회와 기독교회의 관련성을 논의하고 있다.

둘째 부분은 시민 사회에 참여하는 기독교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방법 등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앞의 세 논문이 이론적 차원의 논의라고 한다면, 이어진 세 편의 논문은 구체적인 현황과 참여 방법을 다루고 있다. 정재영의 글은 교회가 시민 사회 참여를 통하여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으며, 조성돈은 교회가 행할 수 있는 시민 교육의 실제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혁배는 기독교 NGO의 유형을 분류하고 기독교 NGO의 구체적 현황과 그 과제를 밝히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디딤돌교회, 울산새생명교회, 굿미션네트워크 등의 이야기를 통해 시민 사회에 참여하는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각각의 사례들이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민 사회와 기독교회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관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민 운동 참여 교인들과 NGO 활동가들의 심층인터뷰를 자료를 제공하고, 이들이 시민 사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을 통해서 겪게 되는 변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 사회에의 참여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값진 자료라고 생각된다.

'교회가 세상과 어떤 관련을 맺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요즘처럼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제기된 때도 드물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시민 사회 속의 기독교회」는 이러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보기 드문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들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한국 교회와 세상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논쟁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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