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 장정일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11-13, 371쪽, 12000원
작년 초겨울에 산 책인데 너무 바빠서 틈틈히 읽느라 끝을 보는데 오래 걸린 책이다. 이 책은 일단 작가가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를 즐겁게 했다.

어릴 때부터 존경했던 어르신들이 변절하거나 엉뚱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왜 저럴까 하고 고민했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머리말부터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결론은 간단하다. '기계적 중용 또는 중립'을 지키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단 '중용'을 취하면 처음엔 원만한 인격을 가진 자로 인정받고 나아가서 스스로도 균형잡힌 상태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대착오적인 위치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중용이 왜 생기는 지를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은 실제로 그 분이, 우리가, 나 자신이 무식하고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용'을 외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양비론'이라고 한다. 중간에만 서 있으려고 하니까 시간이 갈수록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떤 문제에 대해 왜 그런지 말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우니까 말만이라도 극단적인 양비론을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주장하길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공부라고 한다. 대학시절까지 내가 나의 무지를 참을 수 없어서 공부했던 적이 있었나? 알아야 되기 때문에 공부한 적이 있나? 없었다.

나의 주위에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다. 공부에 관련된 무관심과 좌절감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겪으면서 우리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략하고 속히 답을 외워서 성적과 학점을 따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에 지금껏 무슨 일에든 성급하게 결과를 얻어내는 데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목사들도 마찬가지다. 신학 관련 토론을 하게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도대체 말하려고 하는 게 뭐냐?", "결론부터 말해 봐라." 라는 것이다. 결론으로 유도하는 중간 과정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성급함 때문에 많은 오해가 생기지 않았던가!

이 책의 부제가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이다. 작가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보다는 주제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시각이 변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나면 결론만을 따지고 드는 천박한 인문학을 탈피하고, 독서가 독서를 불러서 교양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편중된 독서를 하기 쉬운 목사들에게 이 책은 신학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에 대한 넓은 시각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신학은 부실하고 편협하게 되어 우리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 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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