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이 한 권의 책은 내면의 앙금을 풀어주는 소중한 책이었다. 그동안 여러 부류의 기독교도서를 접했지만 이 한 권의 책만큼 큰 감동과 도전을 준 책은 만나지 못했다. 이 한 권의 책 속엔 소명을 항한 한 목회자의 집념, 교회를 열정과 사랑, 그리고 소명에 대한 목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사상서라도 할 수 있다. 이 한 권의 책속엔 한 평생 제자훈련이라는 목회철학을 일관성있게 지향해온 한 목회자의 삶과 고뇌, 끊임없는 자기갱신과 참교회를 세우기 위한 탐구의 혼혈이 뭍어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진작 바른 목회를 지향하며 고뇌하는 목회자에게 마땅한 책들이 그리 많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고작해야 목회성공기와 설교집 정도다. 목회가 성공기라면 그 성공의 원리를 굳이 성공한 목사들에게 찾을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그들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책은 여느 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책은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나의 서고에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김교신전집, 안도슈사코, 필립얀시, 시오노나나미, 도스토예프스키, 유진피터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한국 교회사에 길어 남을 책이다.

지난 날 철없던 나이에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진작 목사인 내게 어느 누구, 어떤 강의, 어느 교재보다 더 큰 도전과 감명을 준 책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확신시켜준 명저다. 적어도 목회지망생과 현장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목회자에게는 반드시 읽고 묵상해야 할 적이다. 이 책이 목회지망생과 모든 목회자의 서고 중심에 한 자리를 차지하길 바란다.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을 결행하는 순간에 이 책을 손에 잡았다. 태평양을 오고가는 기내에서 이 책을 붙들었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97년부터 2003년까지 7회에 걸쳐 매년마다 교회갱신협의회 영성수련회에 참석했다. <갱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지난 날의 내 개인의 교회사가 어두운 때문이다. 근본주의신학, 율법주의 종교교육, 얼룩지고 멍든 교회의 기억,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한 교회의 실수들, 교단의 분열과 정치적 암투, 개교회 성장에만 병적 집착을 보인 지도자들의 잘못된 교회관은 나를 침침하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밀어넣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부정적 교회의 이미지는 대학 시절 내게 방황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총신신대원 재학시절 한신 계열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게 된 이유도 아마 내가 몸담은 교단과 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80년대는 정말 우울한 시대였다. 나 역시 386세대다. 내가 속한 교단과 교회, 목사와 지도자들을 바라보며 탄식하지 않으면 안되었든 그 시절, 혼돈의 역사앞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뇌하고 방황했다. 적어도 정의와 진리편에 서야할 교회는 군부독재정권과 야합하고, 그들을 축복했다.

침묵과 방관은 또다른 교회생존의 돌파구였다. 내가 속한 교단과 교회는 적어도 그랬다. 세상의 고통의 소리엔 침묵하는 교회는 내겐 별세계였다. 세상의 고통 소리에 귀를 막을 수 도 있는 곳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펴저리게 깨달았다. 나의 고민은 교회관과 되었고, 그것은 <교회관>에 대한 고민이었다. 비록 신학적인 해석이 달랐지만, 진보주의계열의 교회와 지도자는 적어도 우울한 80년대의 역사현장에서는 내겐 큰 도전이었다. 그들은 불법과 혼돈의 역사앞에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했다. 성경해석의 차이가 있었지만, 진보진영은 보수진영보다 진리와 정의 앞에 고난을 자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역사의 요청 앞에 고난을 자처하는 것이 적어도 제자훈련 교회의 필독서인 본 훼퍼의 사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속한 교단 교회에 일종의 수치감을 느꼈다. 아마 이것이 젊은날 교회에 받은 가장 큰 상처인 것 같다. 교회는 내게 <복음>을 깨닫게 해주었지만, <복음적인 삶>과 역사 앞에 <복음적 반응>이 어떤 것인 것을 가르쳐 주지는 못했다. 성장, 생존 그리고 체제유지에 급급한 교회는 이러한 역사적 요청에 관심을 보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쉽사리 벗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 귀국하여 <교갱협>에 참석하면서 교회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본서의 저자를 만나고, 교갱협수련회를 통해 저자의 삶, 목회철학, 제자훈련세미나, 설교를 통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교회를 향한 어두운 그림자들이 한꺼풀씩 벗어지기 시작했다. 목회자의 분명한 철학, 사람을 세우는 목회, 한 영혼을 향한 불타는 열정, 자기갱신을 위한 목회자의 끊임없는 노력, 소명자로서의 철저한 사명의식으로 무장된 저자의 이야기들이 어두운 의식들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회복의 중심에는 한 영혼을 제자삼겠다는 저자의 분명한 철학과 사상, 기반 위에 모인 동지들의 모임인 교갱협이 있었다.

<소명자는 절대 낙망치 않는다>. 어쩜 저자가 주도했던 10년의 교갱협, 그리고 25년의 목회를 총결산하는 목회자의 대사명이며 헌장이 아닌가 싶다. 7년 동안 교회갱신협의회 수련회 때마다 들었던 저자의 설교가 고스란히 활자화되어 책이라는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났다. 모양과 시간은 달라도 여전히 저자의 가르침은 십자가의 고뇌와 소명없이 갈 수 없는 목회의 여정을 걸어야 하는 내 영혼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에서 목회자를 소명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목회의 승패가 결정되는 시점은 바로 소명의 순간임에 틀림없다. 소명없이 목회현장에 나가지 마라! 차라리 장사를 할지라도 소명없이 강단에 서지 마라!는 선지자적인 선포다. 그것은 바로 목회자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명없이 목회현장에 서는 자는 소경이나 마찬가지다. 저자는 과거 교회의 어두운 이미지를 근본원인을 바로 여기서 찾는다. 소명없는 목회자의 대량생산이 교회를 망하게 만든 이유라는 것이다. 목사 안 될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서 교회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목회자를 소망을 품는 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목회자는 누구인가? 그는 절망 중에 날마다 소망을 품는 자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십자가와 부활을 강조한다. 순간 순간 날마다 날마다 목회자는 성도의 아픔은 물론 시대의 아픔을 지고가는 고통에 동참하는 동시에, 낙망할 수 밖에 없는 목회적 현실앞에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부활의 실존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로마로 가는 바울의 향해를 클라이막스로 예증한다.

가끔씩 방문하는 절망과 좌절이라는 두 쌍두마차는 한번씩 괴롭힌다. 목회현장은 예측불허의 전장터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권의 책은 항상 소망의 세계로 인도했다. 절망할 수 밖에 없는 목회의 현장에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 책은 가르쳐 주었다. 목회 여정의 살얼음과 같은 현장을 거닐 때마다 서고에 꽂혀있는 <소명자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한 권의 책은 신실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절망하지 않는 목회자가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루터는 추운 서재에서, 본훼퍼는 감방에서 고뇌했다. 예레미야는 토굴 속에서, 엘리야는 광야에서 고뇌했다. 목회자는 고뇌할 수 밖에 없다. 암울한 시대와 목회의 현장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목회자는 시대와 환경을 초월한다. 목회자는 사람을 보지 않는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소명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는 인간이다. 어두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며, 절망하는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아야 하는 자리에 있는 자라는 점에서 목회자는 선지자이지만, 강단아래의 삶은 고독한 자다. 난 이러한 모습을 이 한 권의 책에서 저자를 통해 만났다.

한국 교회와 사회를 바라본다. 이 시대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목회자의 중심부에 들어설 때 교회는 희망이 사라진다. 중세교회의 비극과 타락은 바로 성직자의 <권력과 야심>에 대한 강한 집착이 아니었던가! 목회세습, 정치와 권력, 돈과 명예에 대한 강한 집착에 중독된 소수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며 절망한다. 이러한 절망 중에 한국 교회의 밝은 미래를 본다. <야망, 권력, 명성>을 뒤로 한 채 묵묵히 하나님께서 부르신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한 영혼을 제자 삼아야겠다는 순수한 복음적 열정으로 걸어가는 <교갱협의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명자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는 책을 쓸 영적 지도자가 아직 한국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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