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도 '리콜(recall)'하라!

▲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이 책은 저자가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있는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가 주최한 영성수련회에서 7년간(1996년 8월 ~ 2003년 8월) 설교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서 발간한 설교집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책 내고 싶어 발간하는 그런 일반적인 설교집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한국교회와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들을 향한 저자의 끊임없는 '갱신'의 외침이다.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노라면, 마치 저자가 한국교회를 향한 열정적이고 일관된 사랑을 독자의 마음의 비석 위에 철필(鐵筆)로 세기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우리사회는 멀쩡하던 전기밥솥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사건 때문에 한때 소란스러웠다. 유사한 사건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자, 전기밥솥 제조사는 '리콜'(recall)서비스 광고를 주요 매체에 대대적으로 게재했던 것을 기억한다. 다행히 제조사의 발빠른 대응으로 최근에는 동일한 폭발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의 밥솥을 만든 제조사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다. 만일, 이 회사가 빠른 '리콜'서비스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이 회사가 만드는 다른 제품에 대한 불신이 국민 전체에 퍼져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신속한 대응 덕분에 사태를 잘 수습할 수 있는 큰 선물을 얻었다. 회사는 이번 사건으로 잊지 못할 큰 교훈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제품의 결함을 알고 그 결함을 주요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리콜조치를 조기에 단행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회사의 '생존'을 위함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동안 갱신에의 목마름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한국교회도 '리콜'을 실시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핵심 주제가 바로 한국교회에 대한 '리콜', 즉 '한국교회의 갱신'이기 때문이다. 리콜의 대상은 한국교회고, 리콜을 실시하는 주체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다. 왜 한국교회를 '리콜'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아주 간단하다. 교회의 '생존'을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 가운데 세계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굴지의 대기업처럼 아주 가파른 성장을 했다. 적어도 양적으로는 비대하게 팽창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질적 성장을 놓고 고심해야 할 입장에서 양적성장을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역전되어 심각한 정체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장기불황에 늪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 경제여건과도 비슷한 형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상황과 한국교회의 상황은 질적으로 다르다. 경기 침체로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부정과 부조리가 우리사회 곳곳에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예전처럼 돈이면 다 되는 구조에서 투명성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구조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다행스럽게 한국교회에서도 양적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많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의 감소와 둔화현상은 교회의 질적 수준의 낙후에서 기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로 보아서는 병들어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곧 양적성장의 감소와 정체현상은 한국교회의 질적 수준의 미달과 역부족과 같은 의미이다. 한국의 경제 상황과 한국교회의 상황은 둘 다 위기인 것은 같지만, 경제는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임에 반해 한국교회는 이전보다 더 악취 나는 부패와 세속화 때문에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이렇게까지 사회에 영향력이 없고 목회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때는 없었다고 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가 오스 기니스의 말을 인용했던 것처럼 최초로 세계화된 문화의 도전 때문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든 영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발생된 다원주의의 위협적인 도전 앞에 교회가 안일하게 대처했기 때문인가? 이 책의 저자는 한국교회의 쇠퇴와 부패와 세속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목회자가 소명에 합당한 삶과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줄기차게 강조한다. 아무리 세상이 썩고 부패해져 간다하더라도 목회자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말씀 앞에 신실하게 반응하며 살아갔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교회의 현실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목 놓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을 놓지는 않는다. 한국교회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나라의 진취적 확장과 세계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망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한국교회의 소명자로 살아가는 교회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교회갱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교회의 영향력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교회 지도자들을 보면 우습게 여기는 현실이 우리가 당면한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다. 목회자를 존경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저 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직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보편화되었다는 통계조사 결과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교회끼리는 성도 빼앗기 경쟁에 눈을 불을 켜고 있고 같은 교인끼리는 서로 상처주고 정작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교회의 '생존' 문제가 가장 큰 과제로 남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역전의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 시작은 목회자부터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예수 닮은 사람을 교회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예수 닮기를 열망하고 손해가 되더라도 예수님처럼 살아보는 삶의 모습을 먼저 목회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닮은 목회자들이 더 많이 생겨난다면 목회자로 인해 실추된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한 영혼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소명자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소명자를 찾으시고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교회에 목회자가 부족해서 지금의 어두운 상황이 발생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목회자는 해가 갈수록 많아지는데도 우리들이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가슴을 찢으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진정한 소명자, 목회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목회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영혼에 생명 걸고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목회할 수 있는 진정한 소명자가 그리워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도 '리콜'해야 한다. 먼저는 교회지도자들인 목회자들부터 자신을 '리콜대상'에 올려 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나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영혼구원의 사명을 받은 진정한 소명자로 부름 받았는지? 아니면 어쩌다 목사가 되어 목사들이 누리는 영예와 복을 누리는 것이 좋아서 하나님의 본래의 부르심에 귀를 닫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교회 목회자로 섬기는 소명자로서 교회가 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말씀을 가지고 점검해야 한다. 이런 점검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 목회사역의 일부여야 한다.

저자는 목회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라면, 인기나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일부터 버리라고 도전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소명자는 신실함과 성실함과 정직한 인격을 가지고 한 영혼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도 있다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목양지에 몇 명이 출석하는지, 목회하는 지역이 어디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곳에 그 양떼들에게 자신을 보내신 분명한 소명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진정한 소명자이다. 이 소명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정치 권력에 기대고, 인기를 끌려고 동분서주하고, 돈과 명예와 이성의 유혹 앞에 쉽게 무릎 꿇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로 부름 받은 소명자는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작은 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며 살고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작은 자에게, 한 영혼에게 주목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 진지한 물음 앞에 정직하게 반응할 수 없다면 그는 진정한 소명자라 말할 수 없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갱신에 예외일 수는 없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얼마 전에 교갱협에서 주최하는 한 공청회에 참석했었다. 목회자 후보생으로서 필자가 속한 교단의 문제를 놓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또다시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썩어서야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교단은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지만 교단에 속한 일꾼들이 섬김의 정신으로 일하지 않고, 물질주의와 권력에 노예가 된 상태에서 교회지도자들로 설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분노와 허탈과 함께 뒤섞여 나왔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도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의 내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께서는 교회갱신을 열망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으셨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찾아왔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면서 언제나 소수의 준비되고 깨어있는 자들을 통해서 일해 오셨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다"(사 60:22)는 예언의 말씀은 지금도 실현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누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교회를 변혁시켜 나갈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준비되어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임을 고백하고 삶으로 나타내며, 낮고 작은 자들을 주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 큰 대양(大洋)이 작은 물방울들이 모인 집합체임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작지만 진정한 소명자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토록 저자가 바라고 꿈꾸며 외치는 갱신의 시작이다. 오늘도 건강한 한국교회의 영광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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