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그 때, 박요한 목사

박요한 목사님(1973년 제58회 총회장)은 금년 제90회 총회가 개혁측과 합동하고 축제로 드리는 감사예배에 설교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눈물이 나와서 설교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 하는 말씀을 시작으로 감동적인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박 목사님은 89세 고령도 불구하고 금년에도 다도해를 다니며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와 6·25 때 하나님이 살려주셨으니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 일을 하시겠답니다. 매년 여러 달을 섬에서 지내는데 어느 해는 200여 섬을 다녔답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부친 박도삼(朴道三) 장로님이 선교 초기에 대한성서공회 권서로 섬지방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여러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박 목사님이 소흑산도(가거도)에 갔을 때 최웅삼 노인을 만났습니다. 최 노인은 목사님을 끌어안고 "당신이 박도삼 장로 아들입니까?" 하고 감격했습니다. 박 장로님으로부터 성경과 초학문답을 배워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더랍니다. 도서지역 교회들이 대개는 역사기록이 없어서 박도삼 장로님에 대한 많은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구전으로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습니다. 천막을 치고 북을 치며 사람을 모아 복음을 전했는데 최웅삼씨도 그렇게 복음을 들었던 것입니다.

박도삼은 1876년에 해남(화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배에 물건을 싣고 여러 지방을 다니며 장사를 했는데 해남과 완도만 아니라 멀리 경남 사천까지 왕래했고, 때로는 엽전이 엄청 많아서 머슴이 지게로 저들이기도 했답니다. 그러던 그가 미국 남장로교 소속으로 목포선교부에 속해있던 맹현리(맥컬리 H. McCallie) 선교사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신앙생활을 문중 어른들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쫓겨나고 족보에도 지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전도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사업도 정리했습니다. 맹현리 선교사의 주선으로 대한성서공회 권서가 되었습니다.

▲ 흑산도를 품에 안은 구원의 등대 예리교회. ⓒ 황영준 목사
1907년. 평양에서부터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불길은 박도삼을 도구로 하여 섬지방까지 번져갔습니다. 돛단배에 쪽 복음 성경을 싣고 바람 부는 대로 다도해를 다녔습니다. 도서지역 특유의 무속신앙 때문에 무당들과 충돌을 빚고 때로는 주민에게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뱃길에 풍랑이라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그럴 때면 어느 섬에나 들어가서 전도했습니다. 맹현리 선교사는 도서지역 선교에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보트를 구입해서 다도해 멀고 가까운 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무안군 진도군 완도군 고흥군 등 서남해안 전 지역이 그의 선교구역이었습니다. 박도삼이 그와 함께 했습니다. 다도해 섬마다 일찍이 교회가 세워진 것은 이들의 헌신 때문입니다.

권서로 활동하던 박도삼이 1915년에는 맹현리 선교사 지원으로 흑산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4월 15일에 예배를 시작한 곳이 예리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곳도 무속신앙이 강했습니다. 태풍으로 당산나무가 넘어져 길을 막고 있어도 그것을 치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민회의를 통해 쓰러진 당산나무를 박전도사에게 맡겨 주었습니다. 박전도사는 그 나무를 베어서 화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아무 탈이 없자 주민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서 탈이 없다며 놀라워했답니다. 지금은 그 교회가 흑산면 기지 교회가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목포로 나가는 배가 한 주에 한 차례나 있었고 다른 섬은 돛단배로 왕래했습니다. 통신수단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박전도는 흑산도 인근의 대둔도 다물도 상태도 하태도 소흑산도까지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 흑산도 항구에 세워진 표지석. ⓒ 황영준 목사
도초로 옮겨 신교리교회(도초중앙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섬 내에 수다교회 지남교회도 세웠고, 성덕학원을 세워서 신세대의 눈을 띄워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라난 그 지역 출신 교역자들이 뜻을 모아 '박도삼장로선교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김종길 목사님은 박장로님이 임자 암태 압해 자은 팔금 자라 기좌 장산 우이 비금 도초 죽도 진도 조도 거차도 흑산도 대둔도 다물도 영산도 홍도 상태도 하태도 만재도 가거도 그리고 멀리 완도와 청산도까지도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자료가 부족한 것이 아쉽습니다.

박 목사님은 선친이 사명에 충실했고, 주일에는 마당도 쓸지 않았으며, 헌금궤를 만들어놓고 십일조를 준비했다며 신앙생활이 철저했다고 회고합니다. 박 목사님의 아들 박정식 목사님(섬기는교회)은 "내가 소유한 복음이 내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어떤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희생이 드려졌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가문의 오랜 내력이 들춰지면서 커다란 충격과 감동이 마음을 뒤흔들었다."고 말합니다. 복음 전도자로 살아온 그 가문의 대물림이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 해같이 빛날 귀한 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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