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어느 도시에서 한 대학생에게 어렵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다. 3일 동안 많은 대화를 하며 교제를 나눈 끝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구원자가 되심을 증거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전했다. 그러자 규칙적으로 종교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무슬림(회교도)으로 생각하는 그 청년은 질문을 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자기처럼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인구 2,300여 만 명 중에 성도가 겨우 2,000명 미만인 그들에겐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되새기며 한국교회와 그런 곳들을 비교해 보게 된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때로 한 건물에 교회가 서너개 씩 있고 작은 농촌마을에도 2~3개의 교회가 있어 경쟁적으로 복음을 들려주고 있다. 도시의 크고 작은 교회에서 끊임없이 말씀이 전해지고 각종 성경공부, 세미나, 훈련모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성도들과 불신자들이 이제 복음을 듣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하고 심지어 싫어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인가? 죽는 순간까지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해 영원히 멸망해 가는 전세계의 미전도 종족들과 우리의 상황은 마치 남한의 가정들과 음식점에서 일년에 1조원 이상의 음식물 쓰레기들이 버려지고 있는 반면 북한의 탈북 어린이들이 굶주림 속에서병들고 죽어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쪽은 너무 배불러 피곤할 지경이고 한족은 먹지 못해 배고파 죽는 모순적 현실이 아닌가?

한국 교회는 반드시 갱신되어야 한다. 특히 교단과 신학교와 큰 교회들이 정말 새로워져야 한다. 남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바르게 쓸 지혜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귀한 돈과 시간과 능력들을 교회의 본질적 기능인 복음 전파나 영혼구원과는 거리가 먼일들 외형적, 형식적, 회의중심적, 소모적, 논쟁적인 일에 허비하고 있지 않는가? 시간이 흘러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헛것일 수밖에 없는 일에 지도자들이 휩쓸려 있는 현실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속히 변화되어야 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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