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을 한 달 남짓 남겨 놓고 있는 시점이다. 분명한 것은 21세기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급속하게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관한 많은 예견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다음의 몇 가지 상황들을 내다 볼 수 있다.

우선 비인간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라는 것은 일정한 체계를 갖게 되며 우리의 삶 전체를 그 체계 안에 집어 넣고 그 기술의 논리에 우리의 삶을 강요토록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컴퓨터를 직접 다루지 않더라도 컴퓨터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도록 되어버린 것은 쉽게 볼수 있는 실례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의식구조까지도 그렇게 되도록 강요를 하고 있고 사람은 서서히 그 논리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둘째로, 과학의 발달은 자기 증대성을 갖고 있다. 급속도로 가속력이 붙은 과학의 발달이 올바른 방향성을 잃어버린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것이다. 역사를 보더라도 과학의 맹목적인 자기증대의 결과는 인류에게 얼마나 큰 재앙을 주었는가? 핵의 원리를 발명한 사람들은 원자탄이 갖는 가공할만한 파괴적 현상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맹목적 증대성이 보여주는 무서운 결과다. 이미 여러 곳에서 이런 현상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유전공학을 통한 인간복제라든가 생태계의 파괴라든가 우리는 벌써 그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로, 기술문명 속에 감추어진 악마성을 보아야 한다. 기술문명의 달콤함 그리고 그 편리성과 효율성은 우리의 영성을 이미 허물기 시작했다. 기술문명은 하나님보다도 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우리의 필요와 부족을 채워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과 과학기술을 활용할 생각은 가지면서도 기도는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현실이다. 점점 사람들의 의식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 바탕을 두기 시작했고 효율성에 길들여진 나머지 기도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기술 문명의 발달 속에 숨겨진 악마성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과 같은 인생의 실제 현장이다. 1세기의 대안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대안은 그래서 기도이다. 기도 외에는 없다.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소리는 본질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소리였다. 지금 가장 어리석은 소리는 “기도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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