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초, 영국 런던 <타임즈> 신문에 다음과 같은 구인광고가 난 적이 있다. “혹독한 여행을 함께 떠날 사람 구함. 보수는 쥐꼬리만 함. 살을 에는 추위가 있음. 몇 달이나 어둠이 계속되는 곳임. 끊임없이 찾아오는 위험이 있음.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음. 다만, 성공할 경우에는 명예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될 것임.”

이 광고는 어니스트 쉐클톤(Ernest Shackleton)이 남극탐험대원을 모집한 광고였다. 4줄 26자로 된 이 짧은 광고에 무려 5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최악의 조건을 내 건 이 광고가 수많은 영국의 젊은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미지의 새로운 땅을 개척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를 선택하실 때 먼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주셨다. 이들은 예수님의 구인광고에 어떻게 즉각적으로 헌신했을까? 그들은 아마도 주님의 권세 있는 부르심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주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무엇 때문에, 그리고 왜 그들은 주님의 제자로 선뜻 따라 나섰을까? 안정된 직업도 아니고, 보수도 없고, 장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노후가 안정될 약속 하나 없는데도 말이다.

혹 그들은 운명처럼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그 길이 영광의 길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들은 사람을 낚는 일이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은 그들의 영혼에 비수와도 같이 꽂히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평생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주신 것이다. 물고기나 잡으며 안전하게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일을 하게 해주리라는 말씀에 그들은 주님께 그들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맡기고 주님을 따라나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보장을 약속해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은 인생의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그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비전을 보여주셨을 때, 그들은 주님의 비전에 공감하였고, 그들은 주저 없이 예수님의 구인광고에 즉각적인 반응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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