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느 교회이든 교회의 전부이다. 지역 교회를 ‘지 교회’라고 부를 때 그 지는 ‘가지’ 지자가 아닌 ‘지역’ 지자로 써야 한다. 어느 교회이든 가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 위에 교회 없고 교회 아래 교회가 없다는 것이 개혁파 교회의 기본 이해이다. 그 이유는 모든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모든 각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대신 각 교회는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각 교회의 장로들의 연합체인 노회(presbytery)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이 우리 장로회제도의 근간이다. 여기서 장로란 우리 헌법에서 정의한대로 목사 장로와 치리 장로를 통칭한다. 장로회 제도가 존 낙스에 의해서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할 때는 가르치는 목사장로가 그 중심이었다. 아무튼 각 교회의 장로들이 모여 노회를 형성하고 그 노회가 각 교회의 연합을 이루어 지역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써 기능하도록 각 교회의 목사 장로를 감독하고 치리하면서 각 지역 교회가 건강하고 온전한 주님의 교회가 되도록 돌아보게 했다. 노회의 기능은 이처럼 상부 교회가 아닌 치리회로써의 기능뿐이다.

노회는 또 다른 노회와 연결되어 이른바 총회를 구성하였다. 이것은 노회 치리의 기능을 더 강화하였고, 그 강화는 서로를 옥죄는 권력이 아닌 건강한 노회가 되도록 서로 협의하고 부족을 채워주고 보완하는 기능과 함께 대사회적인 복음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한몸으로써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그러나 각 노회가 건강할 때 이 총회는 순기능을 하면서 교회의 총화를 이룰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회가 열리면 최대 관심이 총회 총대를 선출하는 일이다. 그 총대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노회의 순기능 역할을 감담해서 총회를 통하여 노회가 의논한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필요한 능력자를 선출하여 보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총대들은 노회와 상관 없이 개인의 정치적인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피택을 바라고 있다. 그들이 올라가서 노회의 결의를 상정하고 그것이 채택되도록 하는 일엔 별 관심이 없다. 이러니 총회는 정치의 극치의 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을 야기시킨다. 정치적인 총회는 노회에 아무런 유익이 없고, 결국 지역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에 교회는 총회에 불신을 갖게 되고 총회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노회 총대들이 개인적인 정치에만 관심을 갖고 총회에 올라가면 이렇게 총회는 무의미한 총회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노회의 건강성을 매우 중요하다.

노회가 각 지역 교회를 옳게 돌아보고 주님의 몸의 연합을 잘 이루어나간다면 그런 노회들의 총회는 각 지역 교회에 엄청난 위로가 될뿐만 아니라 각 교회들이 복음의 증인의 역할을 지역에서 감당해 나갈 때 최고의 힘이 될 것이다. 노회는 장로들의 정치의 장이 아니라 교회들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와서 친교하며 상호 보충하며 선한 뜻을 모아서 지역 복음화의 링크 역할을 해야 한다. 목사들이 지역 사회의 복음화 전략들을 상호 교환하고 노하우들을 연결하는 곳이 된다면 오늘 우리 사회 변화에 최대한 대처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될 것이다. 이런 사례들과 태도들이 총회를 통하여 확장된다면 금상첨화이다.

노회는 이제 정치적인 자중지란을 멈추고 건강한 교회 돌봄이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그것이 본래의 노회이다. 각 지역사회의 충분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면 노회들이 파송한 총대들의 총회는 명실상부한 대사회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대사가 될 것이다.

이제 봄 노회가 마무리 된 상태이다. 노회가 파회한 후 노회의 임원들 중심으로 지도자들은 노회의 기능이 이제부터 제대로 잘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총대들이 총회에 가서 노회를 대표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논의해야 한다. 노회가 화석화 되지 않도록 노회의 지도자들은 부단히 애써야 한다. 그것이 노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곧 각 지역 교회를 위한 길이고, 동시에 총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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