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 쓰는 말 중에 '개인 공간(Personal-spac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그어놓은 나만의 공간"을 흔히 "거리"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을 '밀접 거리'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연인의 관계처럼 서로 사랑하고 밀착된 아주 가까운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가 있습니다. 서로 믿어준다는 것이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참 평안을 '밀접 거리'라고 합니다.

그 다음은 '개인 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열지 않아서 한평생 같이 살지만 아직도 믿을 수가 없는 동상이몽입니다. 이 거리를 바로 '개인 거리'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사교 거리'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은 부득불 많은 사람과 만나야 됩니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기도 하고, 사업상으로 만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만남이 다 전적으로 신뢰해서 만나는 만남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나는 이것을 사교적 거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공중 거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허공에 떠도는 공간입니다. 말하자면 공간적으로는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마는 마음은 전혀 멀리 있습니다. 전혀 다른 생각과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리의 관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밀접 거리'에 있는 것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진정성을 알게 될 때 오는.... 먹먹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빚어지는 현상 중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뭐라 열심히 떠들고 있지만 듣는 사람은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공에서 비쳐지는 것은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본다." 어젠 그런 기막힌 고통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제단을 섬겼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성도들과 관계에서 나는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고통스런 아픔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수요 예배를 준비하는데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아버님, 모 집사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집안식구들이 장례식을 마쳤다."는 통보 문자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라고 하는데 그를 위하여 목자로서 말씀과 기도로 섬겼는데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렀다고 통보 하나만 보낼 뿐이었습니다. 그 문자를 통하여 던져진 느낌은 난 그 분에게 교회 클럽의 사교적 관계도 아닌 공중 거리의 관계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관계를 사업적 관계보다도 못한 공중거리의 관계임을 알게 합니다.

너무 맘이 먹먹합니다. 공중 거리.. 신뢰도 사랑도 십자가도 예수도 전혀 없습니다. 서로 따로 따로 노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가? 나의 개인공간은 얼마나 건강합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으며, 저 사람은 나를 얼마나 믿어 준다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이것이 바로 '신뢰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뢰성이 바로 마음의 거리입니다. 사랑과 신뢰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사랑하면 믿어집니다. 믿어질 때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사랑한다는 것도 잘못이요, 사랑한다면서 믿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여기서 진정으로 생각하면서 잠깐 짚고 넘어갑니다. 문제는 '신뢰'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관계를 볼 수 있는 흐뭇한 일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 신뢰성 유지가 가장 먼저입니다. 더욱 믿음의 공동체라고 말하면서... 실망하게 합니다. 가슴을 아프게 하며 허망하게 합니다. 이런 고통을 그만하고 싶다. 내 자신의 개인 공간은 어떤 거리로 존재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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