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는 나의 밧모 섬 - 故 김신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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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는 나의 밧모 섬 - 故 김신아 장로
  • 황영준 목사
  • 승인 2020.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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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 갈 때면 중앙리 병사病舍에 들려 김신아 장로를 찾아갔다. 부인이 중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봉사자의 도움으로 생활했다. 우리 교회 여 성도들이 일 년에 몇 차례 김치를 담아다 교회에 나누어 드리는 길에 동행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가 지은 노래를 함께 불렀다. ‘겟세마네 쓴 잔 내게 아파도 주와 잔을 함께하면 영광 또한 같으리니…’ 찬송하면서 모두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찬미예수 1500.p.1320』

차디찬 바위에 밤은 깊어가고
겟세마네 쓴 잔 내게 아파도
주와 잔을 함께하면 영광 또한 같으리니
주께서 마신 잔을 내 어이 사양하리까

그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책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읽으며 내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았다.

어린 십 대 때 한센병 증상이 나타났는데, 좋은 약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던 때라서 담방 약을 잘못 썼고, 그것이 오히려 해를 가져와서 오히려 시력을 잃었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병이 깊어져 손발도 굳어져 버렸다. 학창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한 그는 시력을 잃은 후에도 찬송가를 부르며 조심스럽게 악기를 연주하고 교인들의 찬송을 지도했다.

80을 넘겨서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지나간 세월을 찬찬히 되돌아보고 생각에 잠기는 듯 쓸쓸해져 찬송가를 부른다. 깊은 계곡을 흐르는 옥같이 맑은 물,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깊은 심령의 노래에 함께 한 사람들도 서러움에 젖는다.

자신을 붙들고 떠날 줄 모르는 한센병에 대한 원한, 가족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한평생 같은 병을 앓으며 고생하다 병상에 누어버린 아내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밤 깊은 시간, 예수께서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를 생각하며 겟세마네 동산의 차디찬 바위에서 기도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가 고등학생 시절, 부끄러운 한센병을 숨기고 조심했지만 몸에 드러나는 증상을 어찌할 수 없었다. 부모의 피눈물 나는 슬픔과 형제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병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때의 괴로움과 아픔을 이렇게 썼다.

“숨어 살다시피 하던 나에게 친구들 몇이 있었다. 송 군은 노래를 좋아해서 ‘봉선화’, ‘고향생각’ 같은 곡을 자주 들려주었다. 저녁때만 되면 찾아와서 함께 밤길을 거닐며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봉선화’나 ‘고향생각’ 같은 곡들을 일제의 탄압에서 좀처럼 부르기 어려운 곡이라 노래를 부르던 우리의 마음을 한결 울려주고는 했다. 특히 ‘고향생각’ 노래 가사들이 나에게 왜 그토록 감동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찾는 이 없는 나에게 늘 찾아와 위로해 주던 그의 우정이 그립기만 하다.”

노래를 좋아하고 찬송하기를 즐겼든 그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한센인 수용시설에 들어와서도 교회에 나가서 찬송가를 기도하듯 즐겨 부르며 찬양대를 인도했다.

40대 때, 시력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결국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력장애자가 되었다. 영락없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출입하게 되었고, 아내가 길잡이가 되었다. 지금껏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어느 해에는 자신이 지도한 찬양대원들과 동행해서 전국의 요양 시설을 순회하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위로했고, 소록도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성실성경학교의 음악교사를 맡았다. 가진 재능을 계발하고, 교회 봉사자들을 길러냈다. 소록도 7개 교회가 연합으로 드리는 예배 때면 연합찬양대 대장을 맡아 마음과 정성을 쏟았다.

세상은 썰물 바다이다. 바닷물이 물러가듯 친구들도 떠나고, 교인들도 멀어지고 먼 하늘 흰 구름 같이 믿음의 소망을 붙들고 산다.

교회에 나가 혼자 기도의 자리에 앉으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언제나 날 찾아 만나주시는 예수, 부활 하사 하늘의 영광 보좌에 않으신 예수를 바라보았다. 육신의 눈, 세상을 보는 육안肉眼은 잃었으나 믿음의 눈,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영안靈眼이 열렸던 것이다. 은밀하게 심령을 열어 기도하고 찬송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강물같이 임하는 은혜와 평화와 소망이었다.

겟세마네 동산, 차디찬 바위에서 기도하던 예수님께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 지기를 원하나이다.” 하던 그 절대 순종과 헌신이 김 장로의 기도였다. 영혼으로 만나는 주님과의 사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안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못 보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세상만 바라보았던 내가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우리는 이곳 소록도에서 주님과 함께 삽니다. 소록도는 나의 밧모 섬이고 우리 한센인들의 밧모 섬입니다.” 그렇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기도하면 찬송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김신아, 새로운 신新, 움 아牙,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거듭난 사람, 영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노년, 황혼에 이른 그의 찬송을 듣는 듯하다. 믿음으로 헌신했던 삶, 그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1924~2007. 9. 22)‘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니 그의 장례식 때 나는 장례예배 마지막 순서로 화장장에서 두 손 높이 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했다. 그의 찬양 3 절이다. 그의 삶의 마지막, 숨질 때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손과 발 옆구리 피가 흐르고
수욕의 가시관 내게 아파도
주와 함께 못 박히면 영광 또한 같으리니
주께서 쓰신 가시관 내 어이 사양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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