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섬겼던 목회牧會 사역을 마치고 물러난 은퇴목사들이 모이는 ‘은목회’ 모임에 가는 길이다. 10시에 집을 나서 우리 아파트 건너 사는 홀 사모(남편이 별세하고 혼자 사는 사모)를 모시고 가야 한다. 김 사모님이 남편 목사님을 잊지 못해 하는 모습이 유별나다. 자주 목사님 이야기를 하신다. 말하자면 그리움과 아쉬움과 사모하는 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녀 2남 3여가 결혼해서 어머니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어서, 사모님 혼자 살면서 주일은 아들이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한다. 사모님 말씀대로라면 한 달에 네 번은 만나보는 목사 아들이 큰 효자란다.

아파트 출구 쪽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묻는다 “많이 불편하셨어요?” 감기로 새벽 기도회에서 만나지 못한 것이 여러 날이라서 하는 인사다. 사모님의 감기 목소리로 내놓은 인사말에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이 서러움이 배여있었다.

“외국에 사는 아들이 전화를 했는데 그냥 ‘아무 일 없다’ 해놓고는 눈물이 나옵디다. 아프다 말해서 뭐 할 거요. 와 보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지. 자식들에게 짐주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지요. 한 주간이면 꼭 두 번씩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지만 아프단 말은 못 합니다. 몸이 아픈 게 괜히 마음이 서러워지고, 돌아가신 그 양반 생각에 혼자 울었네요. 누가 이런 마음을 알겠어요. 사모님은 목사님 계시니까 얼마나 좋아요. 함께 계실 때 잘 하세요." 하고 당부한다.

아내가 말을 섞는다. “고생하셨어요. 어디가 아파도 자식들에게는 말도 못 하지요. 새끼들도 살기가 바쁜데 짐 되면 안 되니까 그냥 괜찮다 괜찮다 하며 살지요. 부모들 마음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나이 먹으면 의지하고 위로되는 사람은 부부뿐이더라고요. 세상 친구들도 멀어지고, 교인들도 가까이할 수 없고.” 하며 사모님의 아픈 마음을 달래드린다.

돌아가신 남편 박 목사님이 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사모님이 종종 말씀하신 대로 ‘속는 줄 알면서도’ 예배당에 딸린 사택을 찾아와 손 내미는 사람들을 맨손으로 돌려보낸 일이 없으셨단다. 내가 보아도 모임이나 회의 때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으신 겸손하신 분이셨다. 아들과 사위가 아버지 대를 이어 목사가 되어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이날 은목회 예배는 회장인 내가 사회를 맡고 설교는 김 목사님이 맡았다. '울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장례행렬을 만났는데, 한 과부의 독자가 죽어 장지로 나가고 있었다. 남편 없이 아들 의지하고 살았을 여자. 아들을 소망 삼았을 과부의 슬픔을 누가 알아주었겠는가. 의지할 사람 없고 외로운 것이 과부의 삶일 것이다. 이렇게 성경 내용을 설명하다가 돌아가신 사모님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떠난 빈자리가 컸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아무도 없는 빈방에 들어설 때 마음이 참 외로웠습니다. 아내를 보내고 사는 동안 외로움과 고독이 너무 컸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형편도 말씀했다. 속으로 ‘이 분이 사모님이 아플 때나 장례 후에 별말씀이 없었는데 속으로는 큰 슬픔과 아픔을 겪었구나. 자식 낳고 사는 부부요 교회를 함께 섬겼던 동역자라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 이 과부에게 “울지 마라.” 하시고 매장하러 가던 장례행렬을 멈추게 하고 아들을 살려주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다. 울음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믿음이 되었던 것이다.

설교를 마친 김 목사님께 “설교하다가 울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평상시에 사모님 이야기를 안 하시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더니, 혼자 사느라고 마음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하며 선배 목사님의 손을 잡아드렸다. 교직에 있는 딸이 잘 돌봐준다는 이야기도 하신다.

어르신들이 “건강할 때 건강 잘 지키라”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생각하게 되었다. 건강을 잃은 노인들의 지극한 당부임을 깨달은 것이다.

근래에는 나도 후배 목사들을 만나면 같은 말로 격려하고 위로한다.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 일 우선으로 마음과 몸을 다 바쳤으니 때로는 건강 문제는 제쳐놓고 무리하기가 다반사였다. 노년도 건강하게 살아야 교회를 위해 섬겨드리고 개인적으로 활발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건강 문제가 화두였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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