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백주년을 앞두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이를 재조명하고, 격랑의 세계질서 속에서 새로운 민족적 전환의 계기를 삼으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조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최전선에 서서 민족을 위해 쓰임 받은 한국교회가 앞장서 이를 재조명하여 교회의 사명과 책임을 새롭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수형인명부 및 수형기록 수집현황’을 전수조사로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수형자 5323명을 확인했다고 언론을 통해 1월 17일 발표했다. 관련 보도자료에서 지역별 현황과 수형형량에 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종교별 현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꼭 금번 조사 자료가 아니어도 3·1운동을 전후해 당시 기독교계가 항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면면을 이만열 교수의 <한국기독교사 특강>(성경읽기사)의 다음 대목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신빙성이 극히 적은 통계이지만 총독부의 3·1운동에 관한 자료에 의하면 3월과 4월에 시위 1214회, 만세 시위운동에 참가자가 110만 가량이었고, 3월에서 5월까지는 1542회에 205만 명이 참가하였다. 여기에 기독교 계통의 참여도를 살펴보면 초기 1200여 회의 운동 중 주동세력이 뚜렷한 340회를 지역별로 나누면 311개 지역이다. 이 가운데 특정 세력이 주동이 된 경우를 보면 기독교 78, 천도교 66, 기독교·천도교 공동 주동이 42개 지역으로 나타나있다.

3~5월의 체포자 1만 9000여 명 중 기독교가 3373명으로 17%, 6월 30일 현재 투옥된 9456명 중 기독교인이 2033명으로 전체 21%였다. 그렇다면 기독교 세력이 3·1운동 전체에 차지하는 역할은 17~40%에 이른다. 당시 한국 인구는 1600~1800만 내외였고, 이 가운데 기독교 인구는 30만 정도로 전체 인구의 약 1.6~1.7%에 불과하였다… 3·1운동에 뛰어들어 이를 주동하거나 이로 인해 체포·구금된 사람 가운데 차지한 기독교인의 비율은 전체 참여자의 20%에 달하였다.”

이를 통해 미루어 본다면 금번 국가보훈처의 조사 자료에 나타난 독립운동 관련 수형자 가운데 약 20% 내외의 기독교인이 포함되었으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미약한 교세를 가졌던 한국교회가 이렇게 민족을 위한 큰일을 앞장서서 감당한 모습을 주목하며 교회의 참된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과 같이 규모와 크기로 교회를 저울질하는 세속화된 관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의 진정한 힘은 바른 복음으로 무장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우러나는 것임을 역사의 교훈을 통해 깨닫고, 한국교회가 스스로를 새롭게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또한 당시의 교회는 민족의 어두운 시기에 선지자적 통찰력을 가지고 민족을 일깨웠을 뿐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만주와 전 세계에 민족의 위기를 알리고 자주독립을 위한 힘을 모으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을 각종 역사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바른 복음으로 무장하여 깨어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의 횃불로 교회를 사용하신다. 오늘날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이 영적 대각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한 시기를 맞고 있다. 교회가 선지자적, 왕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지도자들이 결정적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결정적 걸림돌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예배당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수구적이고 폐쇄적인 복음관으로 다음세대를 기르는 일들을 멈추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나라 세계관을 갖도록 훈련시키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주역으로 살아갈 하나님나라 다음세대들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내 교회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우물 안 개구리’식 교회교육으로는 세상을 향해 승부를 낼 수 없다. 아니 그런 우물 안 교회에서 다음세대들이 떠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나온 민족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내셨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큰 자랑이고 대단한 긍지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실을 자랑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한국교회 앞에는 ‘꺼진 등잔’과 같은 미래가 다가와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이만열 교수의 책 다른 대목에는 “한말 항일운동의 출발은 1905년 장로교공의회(한국어회의) 길선주 장로의 발의로 그해 양력 11월 감사절 다음 날부터 7일 간 전국교회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기로 결정하는 등 여러 형태의 기도운동으로 시작되었다. 11월 7일 을사조약 체결 후에는 전덕기, 정순만의 인도로 서울 상동교회에서 일주일 간 서울 시내 연합 위국기도회가 열려 수천 명이 눈물로 바다를 이루어 기도하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교회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가 소금과 빛으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을 따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한다. 잠들어 있는 새벽기도의 제단을 일깨워야 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먼저 나 자신의 일터에서부터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이 민족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요, 주님의 몸인 교회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민족과 열방 가운데 다시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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