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면 추억으로 떠오르는 일들. 그것이 고마움이고 그리움이고 사랑이고 눈물이기도 하지만 원치 않게 아픔과 섭섭함과 미움과 분노로 남기도 한다.

목사로서 교회를 맡아 성도들을 돌보았던 일들이 목회를 마치고 은퇴한 내게도 이런저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가 하면 내가 기억하지 못한 일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사소한 일로 생각해서 관심을 갖지 못했고, 또 기억에도 없지만 마음의 상처로, 섭섭함으로 남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많았을 것 같다.

경북 의성에 계시는 김 장로님이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

“목사님. 세월이 가도 황 목사님의 그 열정은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주마등처럼 선명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저의 꼬막손을 꼬옥 잡으시는 목사님의 그 온기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저의 파노라마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공간일 것입니다. 그 누가 한센의 추한 흔적을 마음으로 꼬옥 손 잡아줄 자, 그 얼마일까? 높은 곳에 서서 강론하는 자 중에서도-. ᆢ목사님 한 번 뵙고 싶네요. 그때 그 모습으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센인 김○○ 장로 배상”

소록도 남성교회에서 수년 전에 뵈었던 분이다. 교회 설립 80주년 행사 때 만났다. 10년이 넘었을까. 거기서 살다가 자립 정착촌이 생기면서 퇴원하신 분이다. 퇴원이지만 일반인들과 단절된 마을에서 축산업을 하였다. 자녀들을 건강하게 든든하게 양육했다. 그렇지만 얼굴에 남은 한센병을 앓았던 흔적은 씻어낼 수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소망을 갖고 살았다. 딸도 아들도 결혼했다. 그런 자녀들이 얼마나 대견했을까. 눈물겨운 서러움도,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어려운 고비도 수 없이 겪었을 것인데. 얼마 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지난날이 눈물과 함께 서럽게 생각나는 모양이다. 나이도 많아지고 황혼에 드니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이런 글도 올렸다.

“똥지게 지고 시골 골목길을 지나 언덕배기 기어오르다 똥통을 굴러버린 심정을 이해하십니까? 아부지한테, 엄마한테(야단맞고) 쫓겨나던 그 시절. 그때가 눈에 선하건만. 아부지도 어무이도 안 보이네요. 산천초목에 꽃 피고 새 울고 지저귀는 봄은 왔건만ᆢ. 아~, 아부지요, 어무이요, 어디매 계시는지요. 이 못난 놈 때려주소. 부지깽이로 등사대기 때려 주이소. 어무이요. 아부지요. 이놈만 남겨두고 그 어디로 가셨는교. 사내 가슴에 흐르는 뜨거운 이것은 무엇인기요. 왜? 이 새벽에 보고싶은지요... 아부지요, 어무이요, 보고싶습니더! 그립심더! 잘해드리지 못한 이 불효자식 욕하소. 때려주소.”

아들이 한센병으로 소록도병원에 입원해 갈 때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는지? 헤어져 살면서 애간장을 얼마나 끓였는지. 참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았을 분들이다.

소록도에 다니며 만났던 믿음의 형제자매들.

믿음으로 슬픔을 달래며 위로했었다. 함께 예배드리며 설교하고 기도했다. 집에도 들어 다녔다. 그렇게 만났던 소록도 사람들. 빈부귀천 구별이 없는 세상 사람들. 그들과의 만남이 내게는 자유이고 평화이고 사랑이었다. 이런 글을 읽으니 고맙지만 주님 앞에서 심히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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