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는 교회를 허무는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리더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유능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파괴자가 된다. 총신 사태를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의 폐해를 보고 있다. 증경총회장과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린 진실하지 못한 목사, 그가 어떻게 한국교회 미래 지도자들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신학도들은 그의 이름이 담긴 졸업장을 거부하고 있다. 오호 통재라! 117년의 역사를 가진 총신이 어찌하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가?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다.

총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재산과 목숨을 바친 선진들의 헌신을 잊을 수 없다. 1964년 고 백남조 장로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도 목회자를 바로 세우는 것이 한국교회 부흥의 첩경이라 믿어 사당동 1만8000평의 땅을 헌납했다. 노모를 위해 좋은 저택을 지을 계획을 포기하고 판잣집에 모시면서도 한국교회 미래를 이끌 신학생들을 위해 헌신했다. 1969년 인가를 받기 위해 그는 또 헌신했다.

정성구 학장은 “백남조 재단이사장은 언제나 총신이 총회 직영신학교임을 강조하고 자신 의견보다 총회 결의를 존중했다”고 했다. 고 명신홍 박사는 직장암 수술을 4번이나 받았지만, 총신 건물 지을 돈을 모금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개혁파 신학교와 교회들을 찾아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혈변을 보는 불편한 몸이어서 호텔에 묵어야 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미시간의 칼빈신학교 기숙사에 머물렀다. 1964년 1월 10일자 그의 일기에는 추운 기숙사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추위에 떨면서 박형룡 박사에게 쓴 편지가 <총신 백년사>에 나온다. 몸 상태는 비행기를 타야 했건만 한 푼이라도 아껴 건물을 지으려고 배를 타고 귀국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필자의 눈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모은 4만불과 당시 전국 30개 노회가 헌금한 돈으로 구 본관을 지었다. 목숨 건 병약한 교수의 헌신과 전국 노회의 헌신으로 세워진 총신을 어느 누가 감히 손을 댈 것인가?

총신은 총회 직영대학과 신대원이다. 고 이영수 목사는 제70회 총회에서 교권을 잃었다. 하지만 총신도, 재단이사도, 신문사도 그가 주관하고 있을 때여서 마음만 먹으면 교단 분립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사랑하고 섬기던 총회를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라며 조용히 승복하고 총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진정으로 총신과 총회를 사랑한다면,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아야 한다.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상규 박사의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를 보면, 그 학교는 분명한 교육 이념과 목표, 우수한 교수진으로 명성을 얻었고, 루터파 신학 중심지였던 비텐베르크 대학을 능가했다. 설립된 지 5년 후 약 300명 학생이, 신학 예비과정(College)엔 1000명 이상이 등록했다. 제네바 아카데미에서는 신학, 성경원어와 철학, 변증학 등을 가르쳤고, 신학 예비과정엔 고전어와 고전, 논리학 등 교양과정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수많은 설교자와 교수가 양성되었고 유럽 전역에 개혁신앙을 보급하는 근원지가 되었다. 학교를 설립하고 유럽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칼빈은 “여러분은 통나무를 보내주십시오. 우리는 불 붙는 장작으로 만들어 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앞으로 총신 총장이 이런 편지를 전국교회에 당당하게 쓸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 수준의 총장이 서야 한다. 학생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비난 받는 이가 무슨 교육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혼란의 결과 총신은 입시관리 부실로 신입생 합격자 발표도 못하고 있고 졸업생중 160여 명은 졸업을 거부하며 투쟁하고 있다. 중세 가톨릭은 하나의 거대한 권력 기구였다. 700여 개의 교구를 거느린 교황은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렸다. 교황청은 그 자체가 음모와 모반의 온상이었다. 예컨대 교황 요한 12세(955~963년)는 “부패한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를 범했다”고 한다. 오래된 성당을 헐고 건축할 때 마루 밑에서 영아의 유골이 많이 발굴되었다. 중세 성직자들의 부패를 보여준다. 유명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1446~1536)도 화란 하우다 성당 신부와 가정부 사이에 출생한 사생아였다. 1447~1517년 사이 교황의 절반 이상이 사생아를 두었다. 스코틀랜드의 성(性)인 ‘맥타가르트’(MacTaggart)는 ‘사제의 아들’이란 뜻이며, ‘맥냅’(MacMabb)은 ‘수도원장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뜻 깊은 해가 저물어가는 오늘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는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총신의 그 한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총신과 총회의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누구나 물러날 시기를 놓치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전국 목회자와 장로, 신학생들이여 총회가 제시한 기도의 날 모이자, 기도하자, 그 길이 살길이다. 비겁하지 않은 목사와 장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사와 장로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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