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살아가면서 돈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대사라고 욕했던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의 현실성을 깨닫게 된다.

일찍이 셰익스피어는 돈의 위력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 같다. “세상은 돈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비천한 것도 고귀하게, 심지어는 악한 것도 선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돈은 늙은이를 젊게 만들고, 문둥병도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고, 늙어가는 과부에게 젊은 청혼자를 데려올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들은 셰익스피어 시대보다 오늘날 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돈으로 아름다움도 사고, 젊음도 사고, 권력도 산다. 돈은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는 전능자가 되었고, 그의 품에 안기면, 영생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물’은 단지 인격이 없는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종으로 삼아 섬김을 받고, 경배를 받는 ‘재물의 신’인 맘몬(mammon)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부자청년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고민하며 돌아갔다.

부자청년의 주인은 그의 많은 소유였다. 부자청년이 영생에 대해서, 선한 일에 대해서, 온전함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척했지만, 그는 궁극적 관심인 자기 소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을 만난 이후, 놀라운 선언을 한다. 삭개오의 선언은 자신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선언이었다. 그 동안 돈은 삭개오에게 힘이고 능력이고,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돈을 모았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주인이 바뀌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주님’이라는 말에는 고백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겠다고 하는 고백이 담겨있다. 그러나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이 고백에 대한 유혹과 도전에 직면한다. 하나님과 경쟁하는 신(rival-god)으로서 맘몬은 우리의 주가 되려하고, 우리의 경배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 도전에 순수하였는가? 한 지교회에 분쟁과 어려움이 생기면, 승냥이처럼 달려들어 ‘봉투’를 물어가는 인사들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헛된 명예욕과 그 허영을 이용하여 ‘봉투’를 챙기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말이 헛소문이길 소망한다. 이것은 맘몬의 신도들이 되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政治)’가 아니다.

제102회 총회는 총회임원 선거의 직선제를 전격적으로 결정하였다. 금권선거의 폐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자 했던 17년 전 결의가 무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결의가 단지 ‘17년 전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는 직선제의 폐단과 제비뽑기의 약점을 경험했고, 절충안으로 치른 선거의 비실효성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끗한 선거로 신실한 일꾼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담보되어야 할 것이 금권선거의 배제이다. ‘직선제가 되었으니 금권선거로 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라는 비관론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 선거도 ‘고무신’, ‘막걸리’, ‘돈 봉투’ 돌리던 선거에서 공명선거가 되었는데, 교회의 선거가 왜 불가능하겠는가! 강력한 처벌과 방지책을 마련한 세상의 선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의 선거제도를 보완하면 가능하리라 본다.

맘몬에게 절하지 않으리라 헌신하는 1500여 명의 총대들이 금권선거 방지를 위한 감시단이 되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면, ‘봉투’는 사라지고 부정선거는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현재 타 교단에서도 부정선거와 금권선거의 방지를 위해서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strike out)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교회는 사회의 빛이 되어야 하고, 현실이 어렵지만 새는 알을 깨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중세 유럽에서 베네딕트 수사들은 날마다 선택과 결단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새로운 수사들이 들어오면, 모두 기존의 입던 옷을 벗고 수도사의 옷으로 갈아입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전에 입었던 옷은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옷을 새로 받은 수도복 옆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 되면, 수도사들은 선택해야 했다.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수도사의 옷을 입고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입던 옷을 입을 것인지!

오늘 우리 총회는 선택과 결단 앞에 서 있다. 맘몬에게 절하여 금권선거로 얼룩진 역사의 치욕으로 나아갈 것이지, 아니면 주님의 제자로 새 역사를 열어 갈 것인지! 총회! 맘몬에게 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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