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차] 다시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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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차] 다시 회복하자
  • 이정준 목사
  • 승인 2017.08.23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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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교갱협 제22차 영성수련회 새벽기도회

사도행전 4장 18~21절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오직 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늘 이 시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지 탐방을 했습니다. 장시간의 비행을 통해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에게는 두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간접적으로 보았던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것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켠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개혁자들을 통해서 역사의 물꼬를 여셨던 성령의 불덩이 같던 그 현장에 내가 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두려움이었고 떨림이었습니다.

일정에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이 걸었던 그 길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생명 걸고 외쳤던 그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무릎꿇고 기도했던 그 현장에서 기도했습니다. 개혁자들이 그렇게 목놓아 외쳤던 설교 강단에 서서 당시의 상황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감격했습니다. 이것이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의 마음은 무거워졌습니다. 왜냐하면 흔적은 있는데 생동감이 없고, 자취는 있는데 생기가 없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는 끄떡끄떡 하는데 이상하게도 심장이 뛰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가슴을 쳐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의 무거움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답을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과거의 화려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답을 찾은 것입니다. 너무너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안녕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섬기는 교회는 안녕하십니까?' 하는 질문이 파도와 같이 밀려왔습니다.

저희 교회는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는 대한민국 내륙에 있는 유일한 포구, 영산포입니다. 1897년 목포가 개항하고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사님들이 배를 타고 끝까지 들어온 곳이 영산포입니다.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전해서 1908년에 세워져서 올해로 109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입니다. 호남의 모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교회입니다. 1,500평 대지로 높은 동산 위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추억을 담고가는 포도존입니다. 저희 교회는 높은 동산에 정원이 있고 아침에는 새소리를 들으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예배당은 건축한지 70년 되었습니다. 손바닥만한 돌을 성도님들이 머리에 이고, 머리통 만한 돌을 등짐을 지고 4Km를 날라서 쌓고 쌓아서 지어진 교회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장군의 아들이라고 하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졌고, 과거의 화려한 이력을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길러졌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만 700명이 다녔던 큰 부흥을 경험했던 교회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10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개혁지에서 그 먹먹한 가슴으로 물었습니다. '영산포교회, 안녕하십니까?' 과거의 화려한 이력은 가지고 있고 과거에 아름다움과 뜨거운 성령의 역사는 있으나 지금도 있는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계속해서 던졌습니다. '한국교회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도 매일 같이 던지는 질문이지요? 한국교회가 어떤지 질문을 던지면 신학자들, 목회자들, 성도들, 예수믿지 않는 불신자들까지 ‘위기’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기’라고 하는 단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기’라고 하는 단어는 하나님의 교회에 쓸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핏값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몸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기’라는 단어는 써서도 안 되고, 찾아도 안 되고, 붙여도 안 되고, 만나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한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백성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대하드라마가 오늘도 교회를 통해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위기’라고 하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가를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이땅에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델하우스와 같기 때문에 ‘위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선교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회가 성장기를 멈추고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비관적으로 말합니다. 현재의 교회는 과거에 비해 여건과 상황과 환경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성도들의 지적 수준도 높아졌고 성경 지식도 많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지 않고 본문만 보아도 스스로 설교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합니다. 교회의 시설과 모습들이 얼마나 월등합니까? 교회 건물은 또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합니까? 수천 명, 수만 명이 움집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비추는 빛은 심지가 꺼져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 유럽의 그 교회들과 같이 우리 한국교회도 책장에 꼽혀있는 한 권의 앨범으로 전락하고 말것입니다. 과거는 있으나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위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 목회자들, 성도들마저도 교회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과거는 있었으나 지금이 없어요. 지금이 없으니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여기저기서 많은 행사를 진행합니다. 포럼과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가까운 곳은 참석하고 먼 곳은 영상을 통해서 봅니다. 하나같이 말하기를 ‘회복해야 된다. 돌아가야 된다. 일어나야 한다. 영적인 침체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 입술로는 '아멘'이라고 연발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고백하면 제 마음의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무엇으로부터 회복해야 하는지 손에 쥐어주지 못했습니다. 어디로 가야되는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공허한 소리로만 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오늘 한국교회를 딱 한 문장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변화를 주도해야 될 주체의 변질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변질’이라는 단어로 한국교회를 진단하셨습니다. 목사의 변질이 교회의 위기를 자초했고, 강단의 변질이 성도들을 병들게 했고, 설교의 변질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성도를 만들었고, 성도의 변질이 세상을 밝히지 못하고 더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열정을 가져야 될 자들이 헛된 것에 열심을 품고 있는 변질이 오늘날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자가 되어야 할 우리들이 세상의 영화와 세상의 명예를 좇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이다. 변화를 주도해야 할 주체가 변질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라고 옥한흠 목사님이 진단하셨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교회의 머리이시고 주인이신 예수님이 오늘날 교회에 머무실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차지하고 있고 예수님이 밀리고 밀려서 문 밖에 서 계십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핵심과 주제는 오직 예수님 이신데 우리의 강단에서 예수님이 빠져버렸습니다. 사순절에 한 번 옵션으로 등장하는 예수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이신데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우리 강단이 회복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것의 가장 본질은 예수이고 이 예수를 회복해야 합니다. 저주의 인생을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실패한 인생, 병들은 인생을 건져내는 것은 어떤 은사나 재주가 아니고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가능합니다. 구원, 생명, 기쁨, 소망은 예수 안에 있기에 우리는 오직 예수를 회복해야 합니다. 저는 오직 예수의 회복이 종교개혁의 완성이고 종교개혁의 본질이라고 확신합니다. 살리는 이름 예수, 구원의 이름 예수, 나의 소원은 예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목회하는 이유와 목적과 본질은 무엇입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내가 목회하는 이유, 목적, 본질은 오직 예수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 몸에서 오직 예수만 존귀하게 드러나기 원합니다. 예수 외에 다른 이유와 목적이 있다면 변질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를 내주지도 않았는데 우리 가운데 근심이라고 하는 것이 한 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근심의 방의 문을 열어보았더니 그 곳에는 염려, 원망, 불평, 두려움, 걱정이 우리 안에 다 있습니다. 여러분, 근심을 이기고 계십니까? 근심의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길이 어디에 있는지 묻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이다. 내가 곧 생명이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라. 여러분 우리 교단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단의 내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행복의 길, 하나님 나라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심령을 찢고 잃어버렸던 이름 예수님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번 수련회 주제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핏 값으로 죄사함 받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이 의인입니다.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 건강한 믿음, 승리의 믿음, 행복의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로 살리라. 예수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 곧 개혁입니다.

예수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에 힘쓰며 기다렸습니다. 그곳에 요엘 선지자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이 임하시는데, 바람같이 불같이 각 사람 머리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기 시작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시고,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외치기 시작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이 복음이 선포될 때에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니 상한 자를 만나시고, 병든 자를 만나시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시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무너진 재단이 수축되고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오게 되고 놀라운 변화와 갱신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다른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선포햇습니다. 그 때에 귀신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샘 곁에 심겨진 무성한 나무와 같이 그 핍박의 세월, 그 고난의 세월을 뛰어넘어서 복음이 뻗어갑니다. 동으로 서로, 북으로 남으로 오대양 육대주로 복음이 뻗어갑니다. 로마를 정복합니다. 복음의 편만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개혁의 출발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원색적인 복음이 이 땅을 예수의 피로 물들였습니다.

당시 최고의 의결 기관이었던 산헤드린은 민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이 퍼지는 것을 금지하려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막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겁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라. 나는 예수를 만났고 보았으니 내가 본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나는 예수를 말하리라" 여러분, 이것이 개혁자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순교의 역사입니다. 콜로세움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서 하나 같이 "시저~!"를 외쳤습니다. 콜로세움 한 가운데에 초췌한 사람들이 끌려와 우뚝 세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시저~!"를 외쳤습니다. 화려한 입은 황제가 등장했습니다. 시저의 손가락 하나에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시저냐 예수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이 말은 생명과 죽음의 마지막 선택권이었습니다. 그 때 누구 한 사람이라고 할 것 없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평생 소원은 주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가기 원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주님을 바라보며 찬송을 부릅니다. 시저의 손이 꺾여집니다. 손이 꺾여지자 굶주린 사자가 달려나와서 그들을 물어 뜯기 시작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피비린내나는 현장에서도 끝까지 예수님만을 붙잡았습니다.

여러분, 이 죽음을 이기는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 안에 예수가 계셨습니다. 갱신이 무엇입니까? 어제도 백동조 목사님께서 정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갱신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것이 갱신입니다.

제가 참 못하는 것이 있는데 죽기는 잘 합니다만 돌아서면 부활합니다. 부활을 너무 잘 합니다. 죽지를 못해요. 왜 갱신이 안되고 왜 개혁이 안되는지를 알았습니다. 죽었으면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사셔야 하는데 예수님이 안 사시니까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혼자 아무리 해도 안되서 사투를 벌이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명찰을 차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서나 언제나 1년 365일 이 명찰을 떼지 않습니다. 제가 명찰을 차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명찰에는 소속 교단과 교회와 이름과 직위가 써 있습니다. 왜 명찰을 차냐면 제가 누구인지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하면서 잊고, 친구들을 만나도 잊고, 식당에 가도 잊고 너무 쉽게 잊어서 내가 목사임을 잊지 않고 이 땅에 사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예수님의 흔적을 위해 사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명찰을 찼습니다.

'너는 영산포교회 담임목사다. 너는 예수를 위해 살아야 된다. 너는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된다. 너는 예수의 사람이다. 잊지 말아라. 잊지 말아라. 잊지 말아라.' 저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을 차고 있으면서 볼 때마다 뜨끔뜨끔합니다. '그래, 나는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이야. 나를 통해서는 예수님만 나타나야 돼.' 그러면서 '주님, 내 안에 사셔야 됩니다. 주님, 나를 주장해 주셔야 됩니다.' 저희 교회는 부교역자들이 총신대학교와 광신대학교에 다니는데 다 차고 있습니다.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도 다 채워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예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직장에 갈 때도 차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수석장로님은 소를 키우십니다. 한 150여 마리 됩니다. 소 밥 주러 갈 때도 명찰을 차고 가십니다. 이것은 소속을 잊지 않기 위한 갱신의 노력입니다.

얼마 전 저희 딸이 묻기를 우리집은 가훈이 뭐냐고 묻기에 거실에 크게 써 있는 '오직 예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딸이 "저거 말고, 근면, 성실, 정직, 이런 거 있쟎아요" 그래서 "아니, 오직 예수만 하면 근면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다 할 수 있다." 저는 저희 아이들에게 다른 것보다 오직 예수님만 남겨주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인사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입니다.

'오직 예수'라는 것을 뼈저리게 마음에 새겼던 사건이 있습니다. 전에 시무하던 교회의 집사님 가정입니다. 그 가정에는 두 자녀가 있습니다. 남편은 공무원이고 집사님은 교회 방송실 총책임자였습니다. 설교를 녹취하기도 하고 저의 좋은 동역자였습니다. 자녀는 딸과 아들 두 명인데 얼마나 아이들한테 꼼짝을 못하는지 아이들의 요청이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서 모든 것을 다 해주었습니다. 자식을 그렇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온 식구들이 흩어져서 아이를 찾아도 3일 동안 못 찾았습니다.

3일이 지난 어느 날 저수지에서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한테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제가 예수님을 제대로 전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제 책임이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하고 같이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생명을 심었더라면 그 아이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다음세대 아이들은 정말 안녕하신가요? 그 아이들에게 예수를 심지 않으면 다음세대는 없습니다.

우리 부교역자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 속에 예수님이 없습니다. 저는 불러다놓고 "이럴 수 있느냐?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뭐하는 곳입니까? 철학을 말하고 논리를 말하는 곳, 지적인 수준을 높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가 생명이고, 가치이고 본질이다. 너는 예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너는 예수를 위해 존귀하게 쓰여질 것이고 너는 예수님의 사람이 될 것이고, 너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 예수의 이름을 심는 곳이 교회 아닙니까? 교회 갱신은 문화를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기라성같은 목사님들이 지나가셨습니다. 전임 사역자님이 사임하셨어요. 그리고 많은 목사님들이 저희 교회에 오고 싶으셔서 도전하셨어요. 그런데 다 안 되고 어느 날 저에게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영산포교회 아무개 장로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를 아세요? 저희 교회 담임목사님이 사역지를 옮겨 가셔서 강단이 비었습니다. 혹시 말씀 한 번 전해주실 수 있나요?" 합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 오후에 말씀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공동의회를 했고 그 다음주에 결정이 났습니다. 2주 만에 끝나버렸습니다. 저는 이력서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장로님께 여쭤봤습니다. "장로님, 왜 그러셨어요?" 그랬더니 "목사님, 우리는 예수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듣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요즘 강단에 예수님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매번 교갱협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제가 교갱협에 참석하는 이유는 은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사님들을 직접 뵙고 싶어서 옵니다. 제가 보고 싶은 목사님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교갱협 선배 목사님들은 정말 보고싶습니다. 어제밤에도 기도하시는 선배 목사님들을 봤습니다. 교갱협 목사님들은 예수님의 냄새가 나고 향기가 느껴집니다. 저 분들을 보면 진짜 예수님은 저러실 것 같아요. 많은 목사님들이 계시는데 진짜 예수님을 닮은 분을 찾기가 너무 너무 어려웠어요. 예수님을 닮은 목사님을 만나보고 싶은데 없는거예요. 그런데 교갱협 목사님들은 달라요. 걸음걸이 하나도 조심조심, 말씀 하나도 조심조심, 이런 선배 목사님들을 뵈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는 올해도 선배목사님들의 예수님 닮은 모습 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고 이번에도 또 다짐했습니다. 많은 선배목사님들이 계시는데 저희 노회의 박은식 목사님이 계세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은 정말 예수님 닮았어요. 기독교방송에 자기 교회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교회가 성도가 말하기를 "우리 교회 목사님은요. 거지보다도 더 겸손하세요. 우리 목사님은 예수님 닮았어요"라고 하세요. 나도 그런 목사님 닮고 싶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의 소원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가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입니다. 허수아비입니다. 바람을 잡는 헛된 손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가 없다면 우리의 배는 언제나 빈 배일 것이고, 그물은 언제나 빈 그물일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로 삽니다. 오직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라고 하는 메시지입니다. 사역현장에 돌아가셔서 오직 예수님만을 전하고 심는 사역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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