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차] 갈릴리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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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차] 갈릴리에서 만나자
  • 김경원 목사
  • 승인 2017.09.11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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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교갱협 제22차 영성수련회 개회예배

마태복음 28:5-10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여인들을 만나셨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가서 내 형제들, 곧 제자들에게 이렇게 전해라. 갈릴리로 가라고 해라 거기서 나를 만나도록 전해라.” 이 말씀을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전했고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사망권세를 이기신 위대한 승리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부활한다고 예언해주셨지만 불신했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너나 없이 다 도망가고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까지 하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

헤브론에서나 겟세마네 동산이 아닌 갈릴리에서 만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유대땅은 북쪽에 갈릴리, 남쪽에 유다,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지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열 한명은 갈릴리 출신입니다. 가롯 유다만 남쪽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제자들이 어부생활을 했었고 이 곳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신앙을 고백한 곳도 역시 갈릴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헌신을 각오한 곳도 역시 갈릴리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고기잡는 사건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몇 몇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우리가 밤새껏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결단하고 그물을 내립니다. 수 많은 고기가 잡혔고 그 사건 앞에서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앞으로 너는 사람을 취하게 된다.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때 베드로는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생계 수단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헌신하며 출발했던 장소가 갈릴리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따른 3년 뒤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자.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굳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고 결국 갈릴리에서 만나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거듭 세 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사명을 다시 주시며 특히 목양의 사명을 새롭게 부여하셨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체험 이후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새로운 제2의 출발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역시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너 어디에 있니? 갈릴리에서 만나자, 갈릴리에서 시작하자.” 갈릴리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할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내가 다시 가야 할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이것은 장소적인 의미가 아니라 크게 세 가지 방면에서 우리의 갈릴리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첫 출발지로서의 갈릴리를 찾아야 됩니다.

모태신앙으로 부모님의 배속에서부터 신앙생활 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다는 특별한 체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가정에서 태어나 극적인 체험과 동시에 그리스도를 만나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경험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갈릴리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다메섹 도상의 어느 지점이 갈릴리입니다. 삭개오의 경우는 여리고성에 있는 뽕나무가 그의 갈릴리 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자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신앙을 고백하고 믿겠다고 하고 출발했던 바로 그 곳이 우리 모두의 갈릴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 믿음이 식고 나약해지고 내가 처음 가졌던 신앙의 열정이 식었다면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곳, 그 상태로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갈릴리는 사역자로서 헌신을 각오했던 그 곳입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베드로도 각각 헌신을 다짐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고꾸라지고 난 뒤에 아나니아를 통해서 택한 그릇이라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9장의 사건을 사도행전 22장과 26장에 간증식으로 밝히면서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주님, 도대체 누구입니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고 그 부르심 앞에 인생의 제2의 출발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든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현장이 있습니다. 내가 이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 였는지? 그 헌신을 다짐할 때 때로는 세상의 것을 버립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뜨겁게 기도하며 십자가 붙들고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겠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신대원 입학 때일 수도 있고 목사 안수 받을 때 일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헌신을 다짐하며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칩니다. 여러분 그렇게 헌신 했쟎아요. 그 결단의 마음을 지금 갖고 있습니까? 세월이 흘러가면서 주를 위해서 생명을 받치겠다던 그 헌신은 어디로 가버리고 부끄럽게도 한 낱 월급쟁이로 전락해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가슴 치며 회개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벌이하자고 목회자 된 거 아니쟎아요. 월급 많이 받으려고 목회자 된거 아니잖아요.

성직이 직업화 되는 것이 목회자의 위기이고 한국교회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다시 헌신의 열정을 가지고 출발했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말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저는 목사 된지 42년째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경험 속에서 아골골짝 빈들에도 가겠다고 눈물 콧물로 고백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42년 전 대구에 있는 경북노회 동신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때는 30세 제한이 없어서 제 나이 27살 이었습니다. 하늘 같이 높으신 어른들이 내 머리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시는데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이제 죽는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은 참 부끄럽습니다만 솔직하게 은퇴할 때가 되었는데 가슴 팍 속에 그런 복음의 열정이 있는가? 끝까지 갈 헌신의 열정이 있는가? 이 헌신의 열정이 변하고 기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갈릴리로 가야합니다. 헌신의 열정과 결단을 위해서 갈릴리로 가서 우리를 부르셨던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마지막 우리가 찾아야 되는 것은 교갱협의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됩니다.

교갱협이 도대체 뭔가? 어느덧 20년이 지났습니다. 22년째인데요 초기에 같이 하신 분은 아시지만 요즘 분들은 교갱협이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1995년 가을 어느 날 뜻밖에 옥한흠 목사님께서 제게 만나자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옥목사님의 이름 석자만 아는 정도이지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사랑의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하시는 말씀이 “김 목사님, 우리 목회자 갱신 운동, 교단 갱신 운동 합시다.” 그래서 '이 어른이 뜬금없이 왜 이러시는가? 평생 제자훈련만 하신 분이 왜 갑자기 다른 길로 가려고 하시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평생 제자훈련을 했고 이것을 통해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기여도 많이 했다. 그런데 목회자가 안 변한다. 그리고 내 교회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 교회만 아무리 잘해도 안 되는 것이더라.” 옥 목사님은 비유를 들었습니다. “큰 유람선의 스위트 룸에서 최고급의 서비스를 받는데 배 밑창은 구멍이 나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는데 밑에는 난리가 났습니다. 한국교회가 마치 그런 형국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배는 가라앉는데 내 교회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같이 침몰할 것 인데 이제 한국교회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교갱협은 나름대로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교갱협이 가졌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 두 가지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을 늘 갱신시키는 것입니다.

교갱협은 목회자의 친목단체가 아닙니다. 교갱협 10주년 때인가 ‘교갱협이 목회 잘하는 목회자들의 친목단체로 전락한 것 같다’고 비판한 기자가 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말 이었습니다. 교역자들끼리 친목하려고 교갱협 만든 것 이니거든요. 가슴을 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것인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 시작한 영성수련회는 따갑게 목회자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는 집회였습니다. 그때 후배 목사님이 “목사 되고 눈물 뿌려 회개하는 기도를 이곳에서 처음 해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악을 쓰는 기도는 많아도 가슴 팍 가운데서 울컥 솟아나는 뜨거운 회개의 기도가 얼마나 있습니까? 교갱협 수련회는 그런 수련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목회자로서 흐트러졌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간들이 되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교갱협의 가장 핵심 가치입니다.

두 번째는 교단 갱신입니다.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20년전 참 부끄럽기 짝이없는 교단의 모습이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것은 선거에 돈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할 때 총회현장에서 피켓도 들었습니다. 뜻을 같이 했던 광주동명교회 최기채 목사님은 총회장 개회설교를 하시면서 여지없이 엄청나게 책망했습니다. “돈을 받아가지고 논을 사나? 밭을 사나? 아들 학자금 대나? 왜 돈 받느냐?” 그래서 당시 총대들이 다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회개 효과가 딱 일 년 갑디다. 또 똑같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다 못해서 교갱협이 앞장서서 제비뽑기를 했고 그것도 해보니까 또 문제가 있어서 요즘은 절충식으로 하는데 어느 것이든 완전한 것은 없고 문제는 사람입니다. 후보가 되면 약자가 되고 벌떼같이 돈 내놓으라고 덤벼드는데 안내놓으면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렇다고 합니다.

교단이 부패한 것을 보고 그냥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면서 왔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교갱협의 성명서가 어떻게 나올까 교단에서 주시하고 긴장도 했습니다. 요새는 성명서를 내면 “교갱협은 맨날 성명서 내는 단체아니냐” 는 식으로 비웃습니다.

옛날에는 돈 쓰면서도 교갱협 사람들을 조심했습니다. 교갱협 사람한테 돈 주면 걸린다는 약간은 두려운 생각도 했는데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교갱협 시작한지 한 10년 지난 뒤에 옥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요. “김 목사, 어째 우리가 갱신 운동을 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더 나빠지는 것 같아.” 그 때 제 대답이 기가막혔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갱신운동하지 않았으면 이보다 훨씬 더 나빠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서 요만큼 나빠졌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교갱협은 친목단체가 아닙니다. 목소리를 내고 교단의 부패를 지적하고 교단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애쓰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놓친다면 교갱협의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이 핵심 가치를 놓치면 안된다는 거예요. 더 적극적으로 교단에 동참해야되고 간섭해야 되고 정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야 됩니다. 이거 안하면 의미가 없어요.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하고 수많은 학술대회에서 개혁을 이야기합니다. 굉장히 많은 세미나와 포럼과 학술대회가 있습니다. 그 정신을 찾아내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루터신학대학의 말테교수가 말하는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의 부패 상황과 오늘의 한국교회의 상황이 너무나 닮았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첫 째는 교권주의가 닮았다고 합니다. 교권가지고 횡포를 부립니다. 또 돈이 너무 많고 돈 문제가 심각하고 지도자의 부도덕성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 있는 가톨릭 신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500년 전 가톨릭의 과오를 그대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잘 하고 있는가? 아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지적합니다. 개혁이나 갱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더 성경적인 목회자상과 교회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만자자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 각자가 내가 가야 할 갈릴리는 어디인지 깊이 생각하시면서 그 곳에서 다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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