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2) 교갱협 제22차 영성수련회 여성사역자특강

들어가는 말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 문제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다. 작년에 일어난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과 올해 일어난 왁싱방 여성 살인사건 등을 통해 여성이 한국 사회에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존중받지 못하고 살았으며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무시되어왔는지에 대해 각성하고 여성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운동이 교회의 여성들 특히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여성 지도자들이 도처에서 활발하게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현 정부에서는 장관의 30%를 여성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사회는 더 이상 여성이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여성 지도력의 확산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교회는 여성의 리더십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여성은 교회에서 남성의 보조자로서 사역하거나 잠잠해야하는 존재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교회에서 전도사로 교사로 권사로 집사로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문제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면 잠잠하라는 말로 여성의 의견이나 역할을 배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사회와 교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차이를  현재 교회의 젊은 여성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 젊은 여자 청년들이 교회에서 점점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 여성 지도자들을 살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서 원하시는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교회의 여성과 여성 지도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1. 종교적 영역에서의 리더십: 여선지자들

A. 미리암 선지자 : 모세의 동역자

우리는 미리암하면 모세와 아론의 누이이며 모세를 비난하여 문둥병에 걸린 비운의 여자로 오랫동안 여겨왔다. 하지만 비록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구약 본문에서 보여 지고 평가되는 미리암은 이런 평가와는 좀 거리가 있다.

미리암이란 이름은 출15:20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여선지자로 그리고 아론의 누이로 소개된다. 즉, 미리암에 대한 최초의 소개는 그녀가 여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설명이 아론의 누이이다. 아론의 누이이면 족보상 아론과 모세가 형제이기 때문에 모세의 누이가 된다. 이렇게 볼 때 그녀는 비록 이름은 여기서 처음 등장하지만 출2:4-10에서 등장하는 모세의 누이가 바로 미리암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미리암은 물에 떠내려가는 모세가 걱정되어 멀리서 동생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기가 우는 것을 본 공주가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기색을 알아채고는 재빠르고 대담하게 공주에게 다가가 유모를 구해오겠다고 제안을 한다. 이런 미리암의 대담하고 기지에 넘치는 행동을 모세 구원 사건의 절정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미리암은 모세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안식처인 자신의 어머니 품에서 자랄 수 있게 만든 인물로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준비시키는 일에 일조를 담당하였다.

이렇게 간난아이 모세를 도왔던 미리암이 출애굽시이에는 여선지자로서 모세와 함께 사역한다. 출15:20-21에서 미리암 선지자의 역할은 모든 여자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녀는 소고를 잡고 찬양을 인도하며 그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미리암의 노래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왜냐하면”으로 그 뒤에 이유가 나오는 형식의 여호와 찬양시로 미리암은 전쟁이 끝나고 승리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기 위해 이스라엘의 여자들을 모아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여호와를 찬양한 것이다. 이런 미리암의 노래는 여자들이 부른 다른 승리의 노래들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다. 삿11:34에서는 입다의 딸이 아버지를 환영하고 삼상18:6이하에서는 여자들이 사울과 다윗을 환영하는데 반해 출15:20-21에서는 미리암은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다. 즉,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투 대장이나 장군들을 칭송하는 다른 노래들과 달리, 미리암은 여호와만을 찬양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감 받은 선지자로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암으로부터 시작된 선지자적 찬양의 전통은 후에 삼상10:5과 대상25:3, 5의 예루살렘 성전 찬양제도에서 나타난다. 이렇게 미리암은 놀라운 구원 사역을 최초로 찬양한 선지자이며 백성을 이끈 지도자이며 모세의 좋은 동역자로 활동하였다.

이런 미리암 선지자가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민12장의 사건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미리암이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의 지도력을 나누자고 요구할 만큼 큰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이라고 화자는 소개한다.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은 이 사건에 대해 모세를 비방하였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모세에 대항하여 한 말은 구스여자의 결혼 문제와는 상관없는 지도력의 문제였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하며 모세만 하나님의 선지자요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들도 하나님의 선지자요 지도자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즉, 이들의 말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오직 모세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보면 대제사장인 아론과 더불어 미리암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며 한걸음 더 나아가 모세와 지도력을 나누자고 요구할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였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직접 개입하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장막 문으로 부르신 후(5절) 그들과 모세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신다. 일반 선지자에게는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지만 모세와는 얼굴을 대면하고 명백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는 일반 선지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일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 벌로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게 된다. 그동안 미리암만 나병에 걸린 것에 대해 미리암을 매우 부정적으로 해석해 왔다. 그리고 모세를 대적한 모든 죄를 미리암에게만 돌렸다. 하지만 11절의 아론의 반응을 보면 아론은 비록 자신이 나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미리암의 나병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간구하였다. 아론은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하면서 미리암만이 아니라 자신도 벌을 같이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미리암만 나병에 걸렸을까? 그 이유는 아론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부정의 상징인 나병에 걸릴 경우 제사를 수행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즉, 대제사장의 부정의 문제는 이스라엘 제의에 심각한 위협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아론과 미리암을 대표하여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아론의 간곡한 요청에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였고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에 대해 7일간 부정하니 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금지만하셨다. 이것은 모세가 기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께서 바로 나병을 치유시켜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7일 동안 진 밖에 있었던 것은 나병에 걸린 사람이 나병이 치유되었을 경우 7일 동안 장막 밖에 있어야 하는 부정의 규례를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레14:1-9). 7일간의 부정기간도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비유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훈계하는 수준에서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의 잘못을 용서해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들이 비록 한때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모세에게 도전하였지만 진심으로 뉘우치는 아론의 기도를 통해 이들을 용서해 주시고 여전히 백성의 지도자로서 인정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미리암이 격리되어 있는 일주일 동안 백성들의 행군은 중단되었다(15절). 백성들은 미리암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15절의 행군을 중단한 주체가 백성들로 그들은 여전히 미리암을 약속의 땅에 함께 들어갈 그들의 선지자로 여기고 미리암과 동행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20:1에는 미리암의 죽음이 기록된다. 1절에서 미리암은 게데스에서 죽었고 백성들이 그녀를 장사지내주었다. 성경 본문에서 죽음과 무덤의 위치가 언급되는 것은 특별한 지위를 표시하는 것으로 민20:1의 미리암의 죽음의 기록은 공동체에서 그녀의 위상을 알려주는 것으로 미리암이 죽는 순간까지 백성들의 선지자로서 역할 하였음을 나타낸다.

미리암 선지자는 처음에는 모세를 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을 이끄는 선지자였지만 한 순간 욕심으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여 하나님께 책망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깨우심과 징벌로 잘못을 깨닫게 되었고 죄에서 돌이켜 죽는 날까지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이끈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미6:4에서는 미리암을 모세와 아론과 같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세 명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며 미리암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암은 민수기12장의 사건 때문에 많이 폄하되거나 무시되어왔지만 구약의 전통에서 그녀는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이끄는 세 명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고 아론과 마찬가지로 모세의 중요한 파트너요 동역자였으며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B. 훌다 선지자 : 요시야왕의 동역자

훌다 선지자는 왕하22:14절에 등장하는 여선지자로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훌다 선지자는 요시야 시대 선지자로 요시야 개혁의 열쇠가 되는 율법책의 발견과 함께 등장한다. 유다왕 요시야는 왕위에 오르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니 아니하였다(왕하22:2)”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는 이전에 히스기야 왕이 받던 평가로(왕하18:3) 많은 학자들이 요시야를 제2의 히스기야로 여기고 있다. 그 시대 대제사장인 힐기야는 요시야의 명령으로 성전을 수리하던 중 율법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율법책을 요시야의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그 율법책을 요시야에게 읽어주었다(10절). 그 율법책을 들은 요시야는 즉시 그의 옷을 찢었다. 그리고 자신의 제사장과 서기관과 시종을 불러 이 율법책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고 명령을 한다. 왜냐하면 조상들과 자신들이 이 책의 내용을 듣지 않고 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책에 따르면 진노가 내릴 것인데 정말로 그런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던 것이다.

요시야왕의 명령에 따라 그들이 찾아 간 곳이 바로 여선지자 훌다이다. 그녀는 예루살렘 성의 신도시인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는데 이 장소적 배경은 그녀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지자였음을 나타낸다. 이들이 왜 여선지자인 훌다에게 갔는지에 대한 많은 논란들이 있다. 그 당시 예레미야나 스바냐 선지자가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본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넬슨은 본문이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절대로 특별히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그녀의 지위는 성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여선지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활동했기 때문에 훌다에 대해서 특별한 해설마저도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하였다.1) 다만 제사장이 포함된 왕의 대규모 사절단이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 훌다는 무척 잘 알려지고 국가의 신임을 받는 예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왕의 말을 훌다에게 알렸고 훌다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준다. 훌다의 예언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유다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유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는 것으로 유다의 멸망에 대한 예고이다. 둘째는 요시야왕 개인에 대한 예언으로 요시야왕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요시야왕 때는 이 재앙이 일어나지 않고 요시야왕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시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징벌의 유예라는 호의를 베푸셨기 때문에 요시야는 임박한 심판을 보지 않고 평안하게 선조들의 묘실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예언은 아합 때는 엘리야가 전하였고 히스기야 왕 때는 이사야가 전하던 예언의 내용이다. 그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지자들이 왕에게 전한 내용을 훌다가 요시아왕에게 전하는 것을 보면 훌다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지자였다고 볼 수 있다. 훌다의 예언을 통해 율법책의 말이 사실인 것과 유다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알게 된 요시야왕은 백성들을 모아 언약 갱신을 하고 유다 안의 모든 이방신상과 산당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준수하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이런 요시야의 노력에 대해 왕하23:25은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강력한 종교개혁을 한 요시야 왕의 옆에서 그의 영적 지도자로 같이 있었던 선지자가 바로 훌다이다. 요시야왕은 훌다의 예언을 통해 율법책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훌다는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의 동역자이며 든든한 후원자가 된 것이다.

이런 훌다 선지자의 사역은 히스기야 왕 때 활동하던 이사야 선지자의 역할과 비슷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열왕기서는 요시야왕을 제2의 히스기야왕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요시야에 대한 회개와 간구와 응답도 히스기야의 기도와 응답과 매우 유사하다. 히스기야 왕 때는 앗수르의 랍사게가 유다를 쳐들어와 선전포고를 함으로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하나님께 기도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왕하19:20-34). 그리고 히스기야가 개인적으로 병에 걸려 얼마 있다 죽으리라는 예언을 받고 기도했을 때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신다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고 후에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보물을 보여준 뒤에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이사야의 예언 내용도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히스기야 개인의 죽음에 대한 유예와 유다에 대한 멸망인데 이것은 요시야의 회개와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는 형식과 요시야 개인에 대한 죽음의 평안과 유다의 멸망이라는 내용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즉, 히스기야 왕 때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였다면 요시야 때는 훌다가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개입 없이 종교개혁을 먼저 시행하였지만 요시야왕은 훌다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을 보면 훌다의 영향력이 더 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와 훌다와 같은 선지자와 그 말씀에 순종하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와 같은 신실한 왕들 때문에 심판이 유예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훌다 여선지자는 비록 성경에는 간단하게 나타나지만2) 요시야 왕 때 활동한 선지자로서 요시야왕의 종교 개혁에 든든한 후원자요 동역자로 많은 영향력을 준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적 영역에서의 리더십

A. 드보라 사사 겸 선지자: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모두 독특한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사가 바로 드보라 사사이다. 드보라가 독특한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과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런 독특성이 드보라가 사사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이글에서는 선지자직을 겸한 드보라 사사의 독특성을 알아보고 바락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녀의 리더십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이 또다시 하나님께 범죄하여 가나안 야빈에게 억압을 받는 상황 속에서 등장한 사사로 삿4:4에서 처음 소개된다. 4절은 동사가 없는 명사문장으로 “드보라, 여자, 여선지자, 랍비돗의 아내(여자), 그녀 이스라엘의 사사”라고 길게 드보라를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5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보라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았다고 보고함으로 화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성인 드보라가 사사라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사는 사사시대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을 적들로부터 지키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였다. ‘사사’라는 단어가 ‘다르리는 자, 재판하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고 선지자로서 종교적 지도자의 역할까지 하었다.

드보라는 가나안과 전쟁하기 위해 바락을 군대장관으로 불러 군사 만 명을 모아 시스라와 전쟁을 할 것을 명령하고 승리의 약속을 함께 준다.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의 확신에 찬 명령에 주저하며 조건을 단다. 즉,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삿4:8)”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바락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드보라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주저하는 바락과 대조적으로 드보라는 지도자로서 ‘반드시’라는 말을 통해 흔들리는 부하에게 강한 확신과 믿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라 드보라는 바락의 주저함과 용기 없는 태도에 대한 질책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시스라가 여자의 손에 팔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대는 반드시 남자 장군의 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전쟁을 모르는 여성의 손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하므로 바락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보라는 자신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9절, 10절에서 “드보라가 함께 가다”라는 구문을 반복하여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드보라는 바락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며 전쟁을 시작하라고 명령을 내린다(삿4:14). 그리고 바락은 드보라의 명령을 따라 군사 만 명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고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를 칼날로 치셨고 바락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잔당소탕을 하여 결국 여호와의 말씀대로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바락과 드보라의 관계에서 볼 때 드보라가 리더이고 바락이 조력자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흔들리는 믿음을 가진 부하인 바락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며 질책을 하는 강한 지도자 드보라의 모습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지도자인 자신이 확신이 없어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의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드보라는 이 전쟁은 여호와께서 직접 참여하시는 여호와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사람의 많고 적음이나 무기의 좋고 나쁨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 대한 헌신만 있으면 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야엘의 이야기는 바로 이점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바락은 끝까지 시스라를 잡고자 그의 고향인 하로셋 학고임까지 쫓아갔지만 시스라는 그 반대 방향인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텐트 앞에 나타난다. 야엘은 이방인인 겐사람이며 텐트에 거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자신의 앞에 여호와의 적인 시스라가 나타났을 때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지략과 물건들을 이용하여 그를 죽인다. 여호와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한 시스라는 결국 평범한 가정주부인 야엘의 장막 말뚝에 박혀 죽는 가장 치욕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시스라를 뒤쫓던 바락은 시스라가 장막 말뚝에 박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므로 드보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드보라가 참 선지자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야엘의 행동에 대해 드보라는 삿5장의 노래에서 “장막에 거하는 여자들 중에 가장 복을 받은 여자”이라고 칭찬한다. 드보라는 사사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야엘의 행동을 평가하여 또 다른 하나님의 조력자로 자신의 동역자로 인정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바락을 구원자 혹은 사사로 해석하여왔다. 왜냐하면 드보라가 전쟁터에 가지 않고 바락이 전쟁터에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바락에게는 사사의 호칭도 구원자의 호칭도 없고 여호와의 말씀이 직접 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도자인 사사 드보라의 명령을 받았지만 흔들리는 믿음을 보여 드보라의 질책을 받았으며 결국 드보라를 도와 전쟁을 하는 역할로 한정될 뿐이다. 왜 사사 드보라에게는 다른 사사들과 다르게 전쟁을 수행할 다른 조력자가 필요했을까? 그것은 드보라가 사사이지만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거의 대부분 칼을 들고 직접 전쟁터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표적 선지자인 모세,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등도 전쟁을 겪지만 그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장군을 세우고 싸움의 전략과 승리의 확신을 주는 등 그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인간 장군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선지자는 성스러운 직분이므로 직접 칼을 잡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사무엘도 드보라처럼 사사(삼상8:15-18)와 선지자(삼상4:20)의 직무를 모두 수행한 인물이지만 그도 전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그들을 블레셋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여호와께 부르짖고 기도하였다(삼상8:8). 그러므로 드보라가 여성이고 진정한 사사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을 직접 수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사이면서 선지자이기 때문에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조력자’로서 바락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 야빈의 철병거 900승에 신음할 때 사사와 선지자로 세움을 받아 일어났고 믿음이 연약한 바락과 백성들에게 믿음의 약함을 질책하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그들을 이끌고 나가 가나안왕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어머니이다.


B. 에스더: 민족을 구한 지도자

그동안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은 개인적 문제나 신앙의 결단을 내리기 위한 문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자신의 유익을 얻거나 개인적인 신앙을 높이기 위해 이런 심각한 결단을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민족을 살리기 위해 그녀는 목숨을 건 결단을 한 것이다. 침묵하면 자신은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말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애스더는 모르드개가 민족을 위해 왕에게 나가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 처음엔 거절한다. 하지만 에스더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모르드개의 간곡한 요청에 유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을 하며 유다의 지도자로 일어선다. 그는 제일 먼저 유다 민족들에게 3일 동안 금식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가갔고 왕의 허락이 있은 후에는 자신의 모든 지혜를 짜내어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시간에 하만의 음모를 왕에 밝히고 오히려 하만을 처형한다. 그리고 모르드개와 함께 새로운 왕의 조서를 내려 유다인이 적들의 공격에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고 전쟁에 이긴 후에 왕비의 조서를 내려 부림절을 유다인의 명절로 지키도록 명령한다. 이렇게 에스더는 페르시아에서 유다민족이 진멸되는 위기를 맞이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일어나 유다민족을 구한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다.


3. 가정에에서의 리더십

A. 아비가일

아비가일은 성경의 여성 중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한 인물이다. 그녀는 남편 나발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다윗이 자신의 집을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에게 줄 식량을 준비하여 급하게 다윗을 막으러 출동한다. 아비가일은 식량을 준비하고 다윗을 맞이하러 나가는 것에 대해 자신의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인 나발은 다윗에게 식량을 주는 것을 반대한다고 이미 선언을 하였기 때문에 아비가일이 하는 행동은 분명히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며 불순종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종들에게서 그녀의 남편 나발보다 더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종들은 문제가 생기자 나발은 불량한 사람이라며 아비가일에게 찾아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군이자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의 앞을 막아서는 대담한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다윗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훈계한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나발과 나발의 집의 모든 남자를 죽이려는 행동은 무죄한 피를 흘리는 행동 즉, 살인죄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나발을 죽이는 것은 개인적 보복을 하는 것으로 이런 행동은 후에 왕이 될 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죄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런 아비가일의 행동은 매우 대담하다. 분노에 차서 칼을 들고 쳐들어온 다윗에게 이런 행동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윗의 권위에 반대하는 행동이며 다윗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동으로 잘못하면 다윗의 화를 더 돋우어 바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천만하고 권위에 도전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비가일의 말을 다윗이 알아듣게 하신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로 알아듣고 아비가일의 말을 따라 복수하려는 계획을 철회하고 그냥 돌아간다. 그 결과 나발과 그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생명을 건진다. 하지만 아비가일은 이 일을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만일 아비가일이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여 잠잠하였다면 남자들은 몰살당하고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을 것이며 다윗은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비가일은 집안 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을 가지고 독립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며 지도력을 발휘했기에 그녀의 집안을 모든 남자들의 생명을 살렸고 다윗의 범죄를 막을 수 있었다. 결국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나발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다윗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B. 잠언 31장의 유능한 아내

31장 현숙한 아내의 시는 유능한 아내의 이야기이다. 지혜를 아내로 비유하며 이런 지혜를 가진 사람의 유익에 대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혜는 매우 유능한 아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아내는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고 밭을 사고 파기도 하고 길쌈도 하며 자신의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고 살피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조용히 남편의 뒤에 있는 여성이 아니다. 심지어 입을 벌려 지혜를 말하고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자신의 사람들을 교육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집안을 다스리고 교육하는 아내에 대해 남편은 칭찬하고 자녀들은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잠언 31장의 유능한 아내가 비유일지라도 이런 비유가 용납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여성의 모습이 잠잠하며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유능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며 자신이 얻은 지혜를 잘 교육하는 유능한 여성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잠언 31장의 유능한 아내는 가정 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여성의 모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오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여성들을 살펴보면 모두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독립된 인격과 존재로 하나님보시기에 무엇이 선한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여성이냐 남성이냐라는 정체성보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사명에 대해 최선을 다하였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사사로 일어난 드보라나 집안을 구하기 위해 일어난 아비가일 모두 남자나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판단을 하고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에스더도 모르드개의 요청을 받았을 때 남편이자 왕의 명령보다는 자신의 백성을 구해야 하는 선한 목적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일어났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로 남성 선지자들뿐만 여성 선지자들도 세우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남성과 여성을 자신의 일꾼으로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더욱더 크게 확장시키셨다. 여성에 대한 인식과 권리가 현대 사회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던 고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여성을 세우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셨고 기꺼이 하나님 앞에 헌신한 그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셨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도 많은 여성 사역자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셨다.

이런 하나님께서 현재 여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교육 받은 여성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인식과 여성 지도자에 대한 인식이 변화될 때 교회가 다시 여성 청년들에게 억압의 장소가 아닌 자유와 기쁨과 평화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그리고 교회의 확장을 위해 여성 리더십에 대한 문제는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지도자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구약의 여성 지도자들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주]
1) 리차드 넬슨, 「열왕기상, 하 :목회자와 설교자를 위한 주석」, 김회권 번역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 p401.
2) 훌다에 관한 성경의 보도가 아주 단편적인 반면, 훌다에 관한 유대문헌들은 아주 풍부하며 예루살렘에서는 다섯 개의 문중에서 두 개가 훌다의 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훌다는 유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편 아람어 탈굼은 그녀가 거주했던 곳을 Bet-Ulpana 즉, ‘공부하는 집’으로 번역하면서 훌다를 여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여기서 가르치던 교사, 즉, 여신학자하고 해석하였다. 이렇게 훌다에 대한 유대인들의 존경은 대단했는데 이런 존경은 그의 무덤에 대한 전승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예루살렘에서는 정결 문제 때문에 성전 주변에는 어떤 무덤도 두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다윗 집안의 무덤과 훌다의 무덤”만이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참조, 이경숙 , 「구약성서의 여성들」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94.)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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