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사소한 일에도 감격하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물론 섭섭한 일이나 앞일을 두고 걱정과 근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마음에 또렷하게 그려지는 지난 일들과 얼굴들이 나로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지난 7월 2일,
주일 오후예배에 '남성중창단 찬양발표회'가 있었다. 맥추감사주일 행사였다. 지휘자와 반주자를 포함하면 22명이었다. 담임 목사님(이한석)과 장로님 두 분, 그리고 집사님들이었다. 나는 찬양을 듣기 전부터 감동을 먹고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앞에 나와 두 줄로 서는 찬양팀 한 분 한 분과 눈이 마주치면서 마음에 파고드는 감회와 감동 때문이었다.
찬양이 끝나면 원로목사님이 축도하실 것이라 미리 담임 목사님이 말씀하셨기에 말씀대로 순서를 마치고 축도를 하러 앞으로 나갔는데 그만 목이 메고 말았다. 울컥해서 축도를 올릴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물어 한참을 진정하고야 기도하고 축복했다.
"죄송합니다. 어려서 울보라 했는데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눈물이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들어왔다.

다음 날, 목회자들과 사모님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사모님, 지난주일, 제가 왜 울었는지 아셔요? 앞에 선 얼굴들을 보니 그만 감격해서 그랬습니다."하고 간단하게 말씀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이야기이다.
강단에 두 줄로 선 중창단을 쳐다보니 첫눈에 들어오는 집사님부터 내게 감격이었다.
결혼하고 들어간 새집이 예배당과 너무 멀어서 "계속해서 우리 교회에 나올 수 있을까" 염려했던 분,  어머니께서 세상 떠나기 전에 교회 생활에 열심이 식어진 것을 염려했던 아들 분, 초등학생 때부터 본 교회에서 계속하여 성장하신 몇 분, 또 중간에 돌아온 분, 회복하기 어려웠던 중병을 거뜬히 딛고 일어선 분, 대학생 때 우리 교회에 와서 말뚝을 박은 분들, 신혼의 젊은이로 이사 와서 든든한 헌 신자가 된 분들, 각각 진한 사연이 있었다.
동산교회를 시작하던 때에 만났던 대학생으로 이번에 드럼을 맡은 분, 1981년, 동산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초등학생으로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피아노를 쳤던 우리 큰 딸 그리고 사위까지 나섰다. 내 귀로 찬송을 듣기 전부터 내 마음은 짜릿한 감동에 감전되었던 것이다. 

작년에 이어 금년 두 번째라서 더 잘한다고 칭찬들 하지만 나는 그저 감사뿐이었다.
세 번째 곡으로 불렀던 '하늘 가는 밝은 길이'를 부를 때는 담임 목사님이 솔로를 맡았다.
그 찬송을 듣는데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내 장례식 때 이 찬송을 해주면 좋겠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얼마나 좋은가. 나는 그 순간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에 눈물을 닦고 있었다.
'성자들의 행진, 축복하노라, 나 주의 믿음 갖고'를 지나서 발표가 끝나니 '앵콜'소리기 요란했다. 아내들의 행복이요, 부모님들 기쁨이요 아기들 신바람이었다.

"성탄절에는 자기 손자들, 아이들만 뚫어지게 보더니만 오늘은 젊은 부인들이 자기 남편만, 자기 아빠만 주목하신 것 같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은혜였고요. 모두 은혜 충만하십시오." 인사말을 나누었다.
눈물이 헤픈 원로목사.
눈물울 보이는 것이 마음 약해진 것 같아서 부끄럽다. 그렇지만 마음 깊이서 솟는 감동을 어찌하랴.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구약의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고,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보이셨는데...

2009년 황영준 원로목사 추대 및 이한석 목사 위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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