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특이한 실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작고 가난한 마을을 실험대상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집 대문 앞에 만원씩을 몰래 놓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물론 아무런 조건 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멀리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첫째 날이었습니다. 그 동네 작고 큰 집들 앞에 만원씩을 살며시 놓고 숨어서 지켜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 집 문 앞에서 지폐를 발견한 사람들은 놀람과 동시에 사방을 한번 살피더니 그 돈을 슬쩍 집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총총걸음으로 말입니다.

둘째 날의 반응도 거의 비슷하였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이 되자 그 마을의 제일 큰 화제는 매일 만원씩 놓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는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신기한 사람, 아니 신비한 사람, 때로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마음을 서슴없이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간이 되자 이제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시간 쯤 되면 매일 만원씩 나누어 주는 그 사람이 오는 방향으로 시선들이 집중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언제 쯤 가지고 올 것인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피차간에 별로 창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세 번째 주간이 되자 무명의 사람이 돈을 가져와서 나눠주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하거나 심지어 고맙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간이 되자 매일 만원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 끼 밥을 먹는 것처럼, 혹은 세수하고 양말과 신발을 신는 것 같은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실험기간이 끝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한 달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자신이 계획하였던 그대로 그 날은 돈을 동네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그냥 걸어서 그 작은 마을을 지나치기로 하였습니다. 아무런 이유나 설명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은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집, 저 집에서 불평소리와 함께 화를 내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친 그 사람의 등을 향하여 문을 열고 “오늘은 왜 만원을 주지 않는 겁니까?” “이제는 돈이 떨어졌습니까? 차라리 오지나 말지... 나~ 원~ 참!” 심지어 “이 양반아! 내 돈 어디 있어? 내 돈 말이야!” 소리를 치더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어느덧 그 마을 사람들에게 매일 만원씩 받는 일이 당연한 권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 이상 신기하거나 감사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할 것을 가진다는 착각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우리들은 지난 날 매일 단위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처음에는 신기 해 하였습니다. 때론 신비하게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던 그 어느 날부터 그 은혜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고 때론 내가 일찍 일어나며 늦게 누우며 수고한 결과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감사함 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불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자신과 하나님만은 아십니다.

이제 더 큰 영적마비증세가 찾아오기 전에 내 손에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이란 자기를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발견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하며 주저 없이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욱 그 성도의 신앙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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