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릴레이, 이어달리는 계주이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간을 달리다가 후임자에게 사역을 넘겨주는 것이 목회이다. 계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달려야 할 코스를 최선을 다해 역주하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잘 넘겨주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바통 터치, 또는 바통 패스라고 한다. 수 년 전, 미국 육상팀은 올림픽 400미터 계주에서 바통 터치에 실패해 메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아무리 유능한 선수들로 구성되어도 바통을 넘겨주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 유능함이 발휘될 수 없다.

목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아주 탁월한 원로목사와 아주 유능한 후임목사가 사역을 물려주고 이어받을 때 바통 터치에 실패함으로서 그 탁월함과 유능함이 교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한국교회 역사를 통해서 이런 일들을 비일비재하게 보아왔다.
원로목사가 제대로 바통을 전해주지 않는 것, 즉 후임자에게 완전한 사역 이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은퇴하고도 여전히 담임목사 위치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대하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 일에 크고 작게 관여하여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런 교회는 머지않아 진통을 경험한다. 분열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부전교회는 85년의 역사를 가졌다. 필자인 나는 교회 역사 74년째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첫 당회를 마치고 신예철 원로목사님께 결과를 보고 드렸다. 그러자 원로목사님께서는 “이제부터 당회장은 박 목사님입니다. 당회와 의논해서 결의한 것은 마음껏 시행하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나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셨다. 그야말로 완전한 바통 터치를 해주신 것이다. 존경하는 신예철 원로목사님의 완벽한 바통 터치가 없었다면 지난 12년간의 많은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회의 본질은 변하면 아니 된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사역의 방법은 시대의 옷을 입어야 한다.

풀러신학교 로버트 하퍼 목사의 목회학 박사 논문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당신이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이 당신에게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이다(The moment you refuse to change is the moment you begin to die.)”그의 논문의 주제는 ‘정체된 교회의 활성화(Revitalizing A Plateaued Church)’였다. 교회의 정체는 언제 오는가? 첫째는 본질에서 벗어났을 때, 둘째는 방법이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을 때이다. 그런 점에서 부전교회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다음으로 사랑하는 원로목사님의 완벽한 바통 터치에 기인한다.

원로목사님께서는 ‘은퇴(隱退)’란 숨을 ‘은’에 물러갈 ‘퇴’라고 하시면서 늘 당신을 숨기고 물러나 서 계셨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아들 나이 밖에 되지 않는 목사, 목회의 경험도 일천한 목사, 원로목사님보다도 실력이 없는 목사가 담임목사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셨기에 이런 바통 터치가 가능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믿음이었다.

좋은 목회자와 좋은 연탄은 삼대 특징이 있다. 첫째 현역시절에 화끈하게 탄다. 둘째 반드시 다음 연탄에게 불을 붙여준다. 셋째 다 타고 나면 눈길에 뿌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낙상을 방지한다. 좋은 목회자도 그렇다. 현역 시절에 주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에 화끈하게 충성한다. 둘째 반드시 후임자에게 사역의 불을 붙여주어 그가 사역을 잘 감당하게 돕는다. 셋째 은퇴한 이후에는 후임자나 교우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미끄러운 눈길에 자신의 몸을 깨뜨려 그들의 낙상을 방지한다. 그럴 때 평생 사랑해온 교회는 주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성장 가능한 교회가 될 것이다.

한편 후임목회자는 원로(은퇴)목사님에 대하여 한없는 존경과 감사로 섬겨야 한다. 한 교회에서 수십 년 목회를 해온 원로(은퇴)목사님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교회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인 동시에 여전히 성화의 노정에 있는 죄인들의 공동체이므로 때로는 목회사역의 보람을 누리셨지만, 때로는 수많은 오해와 루머와 상처를 받으면서 목회하여 오셨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영적인 전쟁을 치룬 역전의 노장이다. 그 아픔은 가족들과 후임목사가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다. 후임자는 원로(은퇴)목사님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며 존경과 감사로 섬길 때 목사님의 아픔은 치유되고, 보람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런 바통 터치가 필요하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상호 존중과 배려를 통해 지나간 사역을 징검다리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교우들과 세상이 감동하며 교회는 지속 성장 가능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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