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2) 교갱협 제2차 담임목회자 컨퍼런스 폐회예배

본문: 욥기 1장 1~5절

아까 한목협 이야기를 하셨기에 한목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실 것 같아서 잠깐 얘기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려고 가겠습니다. 제가 40대 때, 1980년대에 통합측, 우리측, 기장측 같이 모였어요. 신학교 때부터 같이 알았거든요. 그때 성령운동, 성화운동, 개혁운동을 하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그라졌어요. 그래서 다시 그런 것을 갖자고 했는데 교단이 다르니, 통합과는 끊어지고 기장은 이단시하고 그랬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한 번 모여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장, 합동, 통합, 고신이 모였습니다. 만나서 한 일은 밥 먹고 교제하고 산책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 통합측 대표로 조성기 목사와 이성희 목사가 나왔고, 합동측 대표로 저하고 김경원 목사가 갔어요. 고신 측에서는 이성구 목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장 측에서는 전병금 목사하고 같이 교제하고 백 목사 하고도 만났어요. “기장이 움직여야 비행기가 뜨니까 잔말 말어.” 농담하면서 같이 밥 먹고 10년을 지냈어요.

그리고 1996년에 교갱협을 옥 목사님이 시작하시고, 계속해서 여러 교단의 목사들과 10년 동안 밥 먹고 교제해서 15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그렇게 다 모일 때에 옥 목사님한테 "형이 와서 좋은 얘기도 하고 밥 좀 사라"고 했더니 "그런 모임이 있었냐?"고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타교단 목사 열댓 명과 모였어요. 그리고 옥 목사님을 교갱협 회장이고 교단의 선배라서 모셨다고 했어요. 그렇게 얘기하고 옥 목사님이 밥을 샀어요.

교갱협이 주도해서 다른 교단에 갱신그룹을 만들어서 한목협을 만들었어요. 거기에 또 많은 돈을 냈어요. 그리고 제가 사회분과위원장을 맡아서 97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지금도 기장, 통합, 고신, 마이너 교단이 다 친구가 되었어요. 지금도 만나면 다 반가워요. 그래서 갱신 그룹을 했고, 제가 저희 교단을 대표해서 한목협에 속한 교단에 가서 제비뽑기 투표에 대해서도 강의도 했죠. 저희 교단 제비뽑기 안을 제가 만들어서 낸 거였어요. 그게 한목협의 시작이었어요. 밥 먹는 친구들이었죠. 지금 김경원 목사가 계속 관여하는데 저는 은퇴하고 관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있는 거 아시죠? 어떤 사람이 비단옷을 입으면 주변사람까지 따뜻해진다. 기장측 사람들이 말하기를 목회는 합동에서 배워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목회를 배우고 서로 교제하면서 서로의 교회를 방문했어요. 저희 교회에도 오고 교회를 다니면서 목회를 얘기하면서, 밥도 같이 먹으면서 친해져서 갱신 그룹을 확산해 나가서 16개 교단이 처음으로 97년에 여의도에 있는 CCMM에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16개 교단장과 총무 모든 멤버들이 다 갔어요. 그 때에 옥 목사님이 돈을 내는데 제가 가서 밥값을 물어봤어요. 5천만원이라는 거예요. 밥값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 했더니 12만 원짜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랑의교회 장로님께 전화를 했어요. “장로님, 밥값이 얼마 안 나왔네요.” “얼만데요? 목사님께 카드 드렸는데...” “카드로 계산 못하니까 오세요.” 그래서 돈을 들고 와서 5천만원을 냈어요. 그래서 교단장 모임도 만들고 교단 장로들과 총무들에게 설명하고 해서 시작된 것이 한목협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교갱협과 한목협을 만든 분이세요. 저는 우리 교단 대표로 한목협에 가서 일을 많이 하다가 은퇴하면서 안 하게 되었는데 그 대신 이상화 목사가 애를 많이 써왔죠. 말씀드리는 것은 "내 교회가 잘된다고 나만 만족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까지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큰 마음을 가지자" 그게 옥 목사님 마음이에요.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려면 갱신 그룹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한목협입니다.

한 가지만 더 할게요. 기장측 장로수련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옥한흠 목사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나 병원이야. 나 죽을 병 걸렸나봐.” 병원을 찾아가니까 링거를 꽂고 누워있어요. 그런데 그 주에 기장 장로수련회 집회 인도하기로 했는데 옥한흠 목사가 저한테 대신 가야 한다고 해서 제가 대신 갔어요. “이근수나 옥한흠이나 내용이 다 똑같다. 그런 줄 알아라.” 그러고 갔어요. 설교를 하는데 '아멘'이 없어요. “장로님들, 저희 합동측 목사 얘기가 이해 잘 안되시죠?” 라고 물으니까. “목사님, 다 듣고 있어요.” “그런데 왜 대답이 없어요?” 그렇게 힘들게 3일을 집회하고 왔어요. 그러고 강사비 300만원을 받았어요. 옥한흠 목사한테 “형, 나 죽을 뻔했어.” “왜?” “아멘을 안 해, 아멘을 잊어버렸데.” 그래서 제가 300만원 받았다고 옥한흠 목사님에게 내밀었더니 “왜 나한테 주냐? 네가 강의했으니까 네가 가져가.” “나는 옥한흠 목사 이름으로 간 거잖아.” 그래서 100만원만 줬어요. 그랬더니 “왜 네가 나한테 돈을 주냐? 가져가.”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모님이 “그럼 50만원만 주세요.” 해서 50만원만 드렸어요.

무슨 얘기냐면 우리 교갱협이 선배가 병이 나고 어렵게 되면 대신해서 갔었어요.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데 내일이 주일이에요. “이 목사, 내일 와서 강단 마쳐야 한다. 나 죽을 병 걸렸어.” 그러면 저희 교회 내려놓고 사랑의교회 가는 거예요. 저희 교회 장로님들이 가만히 있어요? 옥한흠 목사님이 전화를 해요. “여보, 나 죽을 것 같으니까 이 목사 강단에 보내.” 그래서 제가 부목사에게 강단을 맡기고 사랑의교회 강단에 섰어요. 무슨 얘기냐면 형제 같은 마음이 있었다는 거죠.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답니다. 옥 목사님 얘기입니다. 한 사람은 착하다면 선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교훈을 받고, 한 사람은 욕심 많은 사람이 있으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내 교회가 잘 된다고 해서 작은 교회 목사를 “야, 너는 목회를 어떻게 하길래 그 모양으로 하냐?” 그런 생각 갖지 말고 “내가 해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건설에 좋은 것 같다.” 하며 이렇게 서로 돕는 거죠.

86년에 제자훈련을 하기로 하고 제가 사랑의교회로 가기로 했었는데 못가고, 87년에 저는 강북에 와서 제자훈련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옥한흠 목사도 87년에 시작했어요. 강북에, 경기도와 강원도를 책임지고 제자훈련을 관리하고 저희 교회 시스템을 내놓고 강원도, 경기도 지방 교회를 다니면서 제자교회 인큐베이팅을 15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6년 동안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교육훈련, 교육 목회를 했지요. 교회가 조금 커지면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고, 건축한 다음에 제가 몸이 아파서 검사하니까 척추가 붙어서 수술했는데 디스크 두 개를 넣고 못을 네 개를 박으니 다리가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몸이 이렇게 불편한데 목회를 하는 게 맞나 싶어 옥 목사님한테 가서 물었어요. "형, 나 다리가 아파" "왜?" "몰라" "그러니까 내가 너보고 줄이라고 했잖아. 나도 죽다 살아났는데 너도 왜 그러냐?" 제가 제자반을 8개를 했거든요? 형이 반으로 줄이라고 해서 반으로 줄였어요. 교회를 짓기 시작할 때도 "형, 나 교회를 지어야 하는데 어떡해?" "얼마 모았어?" "30억 있어" "얼마 있어야 되는데?" "200억이래" "짓지마" "그럼 어떡해?" "너만 죽어. 80억 이상 모이기 전까지 짓지마" 그래서 제가 교회 가서 그랬어요. "옥한흠 목사님에게 물으니 80억 되기 전까지는 짓지 말라고 합디다. 그러니 1년 동안 많이 헌금해 주세요." 그랬더니 일 년 동안 70억이 되었어요. 그래서 옥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왔어요. "얼마나 모았냐?" "70억" "그럼 시작해" 그래서 그렇게 시작해서 건축회사를 모으고 기공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후에 교인들이 10억을 헌금했어요. 80억이 모인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잘 모르잖아요. 선배한테 물어보니까 답이 있더라고요. 교회 건축할 때 우리 교인들이 목표한 헌금을 다 해줬어요. 땅값, 건축비 합쳐서 280억 들었고 4500평을 지었어요. 옥 목사님이 와서 보더니 "잘 지었다. 이 동네에서 이렇게 짖다니 대단하다"고 해요. 그래서 형이 와서 헌당예배 설교하라고 했더니 왔지요. 와서 여러분이 이렇게 짖다니 대단하다고 격려해줬어요. 그게 교갱협 정신이에요. 제가 가장 친한 사람은 옥한흠, 홍정길 목사님이었어요. 둘 다 '형'이라고 했어요. 제가 뭐든지 물어보면 이렇게 저렇게 해라고 그래요. 그러면 제가 당회 때도 "옥한흠 목사님이 이렇게 하랍디다. 홍정길 목사님이 이렇게 하랍디다." 하고 했어요. 제가 두 분과 친하니까 장로님들이 홍정길 목사님에게 가서 제 후임목사님을 구해오셨어요. 저는 모르는 분이였어요.

남자들은 그런 생각이 있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 해요. 소위 성공하고 싶어 해요. 목회도 성공이라는 말을 잘해요. 저는 목회에 성공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제가 끝나고 보니까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분골쇄신, 저도 콩팥을 떼어 내고 허리 수술하고 쩔뚝거리고 다니면서 목회를 했는데 여러분, 옥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너 그러다 죽는다. 줄여라. 무리하지 말아라." 자기가 아프니까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제가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는데 목회하고 성도들에게 정신없이 설교할 때는 설교하기 위해 성경을 보았지 나를 위해선 성경을 안 봤어요. 나를 위해서 성경을 보면서 욥기를 보는데 제가 욥기에서 설교를 듣는 거예요.

욥이라고 하는 뜻은 희망한다. 소원한다는 뜻 아닙니까? 부모가 이름을 지을 때 그런 소망을 가지고 지어준 모양이죠. 욥을 보니까 남자 중에 남자요, 아버지 중의 아버지요, 남편중의 남편이요, 사업가 중에 사업가요, 부자 중에 부자요, 그렇게 큰 인물이 아닐 수 없어요. The Greatest Man이라고 성경은 말하죠. 그런데 욥기를 보면서 저를 보게 된 거에요. 욥기를 보니까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말 악을 모르는 사람이고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하고 정 반대인거에요. ‘너 온전하냐?’ 아닌 거예요.

제가 욥기를 강해했어요. 학부는 영문학에서 시 전공을 해서 구약의 시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욥기 설교했어요. 그런데 욥기를 읽으면서 양심에 아픔이 있는 거예요. 욥은 온전해요. 이 말은 흠이 없다는 거예요. 자식을 열 명씩 낳고 사업하고 어떻게 흠이 없나?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나? 저는 목회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니까 흠이 많더라고요. 욥은 정직했다고 그랬어요. 진실했다 그러는 거예요. 올곧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거짓 된 거예요. 곧은 척하고 바른 척 했지 위선이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Up right 하지 않은 거예요.

욥기를 읽다가 회개를 했어요. 욥기를 읽다가 눈물이 났어요. 욥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했어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선악 간에 매를 드신다. 그런데 ‘너는 하나님 무서워하냐?’ 무서워하는 척은 했지만 진짜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예요. 욥은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목회를 하면서, 그리고 노회에 가서 이런저런 악한 일을 많이 해요. 그런데 욥은 안 그랬다는 거예요. 욥기 1장을 일주일 이상 묵상을 했어요. 욥을 그려봤어요. 그리고 저는 목회를 잘못했다. 사역을 잘못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 노회에 가서 "나는 목회를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욥은 천사 같은 사람이고 샘물 같은 사람이어서 8절에 보면 하나님이 막 칭찬해요. 저를 볼 때 하나님이 ‘너, 정말 하나님이 칭찬할 만하냐? 인정할 만하냐? 하나님이 너 신뢰할 만하냐?’ 아닌 거예요. 사기꾼인 거예요. 하나님을 속인 거예요. 교인을 속인 거예요. 그런 게 막 생각이 나는 거예요. 부끄러운 저의 고백을 하는 거예요.

저는 정말 목회한다고 하면서 흠이 많고 진실하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나? 악을 몰랐나? 그럴 때에 참 하나님 앞에 죄송한 거예요. 옥 목사님도 제자 사역을 하면서 차를 타고 가다가 제자훈련 받는 교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사모님에게 "여보, 당신 좀 내려" 사모님을 내려놓고 제자훈련 받으러가는 교인들 태우고 사모님은 걸어갔어요. 그리고는 은퇴한 다음에 평생 욕을 먹었어요. 그런데 옥 목사님만 그랬냐? 그 분에게 그런 걸 배워가지고 저도 사모에게 너무 서운하게 많이 한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옥 목사님도 사모님에게 지탄받았지만 저도 지탄받고 있습니다.

욥을 하나님이 ‘내 종’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제 자신을 돌아봤어요. 나는 교인들에게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떠들면서 설교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목회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내 종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가짜 종이죠. 엉터리 종이죠. 자칭 종이죠.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욥을 보면서 정말 제가 '목회를 잘못했구나. 집에도 잘못했구나'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회에 죄송하고 집사람에게도 죄송한 거예요.

욥은 자녀들의 생일이 되면 생일잔치를 하고 나서 애들이 혹시 잘못되지 않았나 싶어서 하나님께 사죄의 제사를 드렸다고 그랬어요. 우리도 자식들 생일잔치는 많이 하지요. 그런데 사죄의 제사를 드리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욥은 자식들을 정말 사랑해서 그렇게 믿음으로 길렀어요. 그런데 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철저하게 가정예배를 못 드렸어요. 교인들에게는 가정예배 드리라고 주보에 내용도 다 실어놓고 저는 안 드렸어요. 그래서 우리 자녀들한테 늘 사과했어요. "가정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너희들이 따로 나오고 다 각각이니까 엄마하고 드려라"라고 했어요. 제가 가정예배를 인도한 것이 많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자훈련 끝나고 들어가면 11시 반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자녀들도 믿음으로 못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욥은 10남매 자녀들을 다복하게 낳았어요. 저는 아들만 두 형제인데 목매달이지요. 제가 아들들 주례를 직접 했어요. 왜냐하면 아버지에게 받고 싶데요. "아버지가 교인들은 그렇게 축복하면서 우리는 왜 안 해주냐. 해줘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제가 주례한다고 했더니 동기 친구목사들이 "야, 주례비 아끼려고 네가 주례하냐? 내가 해줄게"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애들이 해달래" 그래서 제가 했어요. 그러더니 김경원 목사도 자기 아들 자기가 하더라고요.

정말 욥의 자식 사랑, 자식을 믿음으로 길렀던 마음을 볼 때에 저는 가정 사역을 잘 못했다는 후회가 돼요. 그래서 우리 아들 하나는 목사이고, 하나는 미국에 연구원으로 있는데 늘 사과해요. "아버지가 잘못했어. 미안해. 아버지가 잘못한 거 용서해줘." 잘못한 거밖에 생각이 안나요. 그래서 저는 부끄러운 사역을 했어요. 선교한답시고 더우니까 겨울에 가면 1-2월에는 애들 졸업식이 있는데 초중고, 대학교, 신학교 졸업식 때까지 한 번도 가질 않았어요. 그 대신 외할머니가 갔어요. 그리고 장모님이 애들을 봐줬어요.

저는 본래 선교사로 지망했다가 우리 교회가 싸움이 났어요. 저는 서울 평안교회 출신이에요. 그래서 김윤찬 목사님께 "제가 신학교 마치고 선교사 가려는데 보내주세요"라고 하니까. "니 보라, 교회가 싸움이 났는데 선교사 보내간? 목회하라우. 그리고 니가 선교사 많이 보내라우" "그럼 기도를 어떻게 해야 돼요?" "엎드리라우" 그래서 그 목사님이 그냥 머리에다가 키가 크시잖아요. 큰 손으로 머리를 콱 누르고 "주여, 이 종이 선교사로 간다는데 목회를 하면서 선교사 많이 보내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18개국 42명 선교사를 후원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교회 예산을 1/3는 선교비로, 1/10은 장학금으로, 1/10은 구제비로 책정했어요. 교회 예산의 50%는 교회 밖으로 보내는 거예요. 그렇게 88년에 정했어요. 그렇게 하면 예산이 모자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교인들이 가져와요. 연말이 되면 쌀을 200포대씩 가져와요. 교회에 쌀을 쌓아 놓고 동내사람들에게 주는 거예요.

욥을 보면 참 부자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시건방지거나 교만하지 않았어요. 겸손했어요. 목사 중에도 교회가 좀 커지면 어깨에 힘주고, 작은 교회하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고 그런 경우가 있어요. 제가 큰 교회 목회하는 분들 모셔서 집회해 보면 부흥강사한테 오히려 제가 상처를 받아요. "어떻게 이 지역에서 교회가 잘 되기를 바라냐? 이 지역으로 볼 때는 교회가 어렵다. 이근수 목사니까 여기서 하지 나 같으면 여기서 안한다" 강단에서 그런 말을 해요. 우리교회는 홍제동인데 교회 환경으로는 안 좋은 곳에 있어요. 그런데 그 분은 이런 환경에도 이근수라는 사람이니까 교회하고 있으니 잘 도와주라는 식으로 그랬다는데 저에게는 상처가 되더라고요.

여러분, 작은 교회 목회하는 분에게 부지불식간에 상처 주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죠. 내 교회가 커지면 주변교회를 돌아보고, 도와주고, 개방하고, 프로그램을 나누어야 하는데 제가 그런 마음을 가진 게 50이 넘어서였어요. 그전에는 내 교회 세우느라 그걸 못했어요. 목회하다 보면 자기가 잘났다고 같은 노회에서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회가 좀 크다고 작은 교회를 업신여기는 그런 목사가 있어요. 그리고 그냥 어떡해 해서든지 총대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양보를 안 해요. 다른 사람을 앞세우지 않아요. 옥한흠 목사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양보해라. 앞세워라.

욥은 자기가 정복한 것이 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욥은 정복한 것이 부자가 되는 산업이 아니라 자기 가정이고 자녀들이었어요. 욥이 정복한 것은 부자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변사람들이었어요. 욥이 정복한 것은 사탄이었어요.

욥에게서 제가 배운 것은 욥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거예요. 욥은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했어요. 욥은 철저하게 자식을 관리하고 가정을 관리했어요. 그리고 자기 산업을 관리했어요. 1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울타리로 쳐주셨다고 그런 말씀이 나와요. 그렇게 욥을 하나님이 보호해주셨어요.

여러분, 나도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나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되는 거예요. 저는 은퇴한 다음에 사역하던 교회를 안 가요. 4년 4개월 동안 안 갔어요. 오라 그래요. 밥 먹자 그래요. 담임목사 휴가인데 강단 좀 매워달라고 해도 안 갔어요. "크리스마스인데 설교 좀 해주세요." 안 갑니다. "교회 생일인데 와서 말씀해 주세요." "안가" 4년 4개월 안 갔어요. 다른 교회를 가봤어요. 통합, 기장, 성결, 감리 다 가 봤어요. 미국에도 많이 가봤어요. 저의 결론은 너무 편협하게 목회했다는 거예요. 너무 쩨쩨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미국교회에 가서 깜짝 놀란 게 뭐냐면 미국의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미국교회에 갔는데 성조기를 세워놓고 온 교인들이 설교 마치고 끝난 다음에 미국 국가를 부르는 거예요. 저는 4절까지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저는 미국 국가의 내용이 뭔지 몰라요. 그리고 또 노래를 불러요. God Bless America.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미국이 세계를 위하여 앞장서서 평화를 유지하는 미국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 걸 보고 나는 목회를 너무 째째하게 했구나. 왜 나는 8·15, 3·1절 때 애국가 한 번 안 불렀나 하면서 후회를 했어요. 통합측 교회를 가봤어요. 8·15 때 애국가를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서서 나라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설교를 그렇게 많이 했지만 그걸 못한 거예요. 합동측이 그렇게 째째하게 했구나. 그래서 제가 잘못했다는 거예요.

여기 사랑하는 형님도 계시고 아우도 계시는데, 우리 교갱협의 호칭은 형님 목사님, 아우 목사님이에요. 형님, 아우 목사님 여러분, 욥, 하나님이 신뢰하시고 칭찬하시고 인정하시고 복을 주셨어요. 여러분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신뢰를 받고 칭찬받고 복을 받는 그런 좋은 목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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