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8) 교갱협 제14차 영성수련회 선택특강

본문: 로마서 12:18

저는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 6명과 같이 가도 여고 운동장을 지나가지 못했어요. 그렇게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저는 사모 전문 특강 강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모는 처음 할 때는 쉬운 것 같은데 점점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권사님이 미국의 아들내외 집에 놀러갔는데 미국은 부부가 벌어야 먹고 살거든요. 그래서 집을 지켜주는데 워낙 닭고기를 좋아하던 권사님이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어서 어느날 영어도 못하고 닭다리는 먹고 싶어서 자신의 두 다리를 보여주면서 '투' 그랬데요. 그랬더니 닭다리 두 개가 나오더래요. 그래서 미국 생활 쉽구나 생각을 했대요. 며칠 후에 닭 날개가 먹고 싶어서 가서 권사님이 밝게 웃으면서 날개 짓을 막 하면서 '투' 하니까 닭 날개 두 개가 나왔더래요. 미국생활 괜찮구만 하면서 집에 갔는데 닭 가슴살이 먹고 싶어서 권사님이 양 가슴을 보여주면서 '투' 했더니 우유 두 잔이 나오더래요. 아, 미국생활 쉽지 않구나.

저는 성가대 지휘자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껴요. 맨 처음에 오실 땐 순수하고 열정적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괴팍해지는걸 봐요. 연습시간이나 때로는 예배시간에 지휘할 때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표정에서 화난 것이 느껴져요. 성가대 지휘자가 처음엔 열정과 순수함이 있는데 찬양대원들에게 영육간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사람이 점점 변하면서 괴팍해지는 것이 아마도 사모님들도 똑같은 현상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사모로서 살아갈 때에 솔직히 교인들 대하고 장로님들 대하는 거 사랑의 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철저한 규율이나 처벌기준이 전혀 통하지 않아요. 오직 예수님의 끝없이 참고 있는 사랑의 법 외에는 아무런 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 속에 쌓여지는 여러 가지 의문들, 스트레스, 또 좌절 이런 것들을 아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가끔 이런 재충전의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져가는 사회생활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우리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을 프랑스어로 '똘레랑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tolerance' 관용, 인내, 포용력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인데 특히 목사와 사모가 가져야 될 포용심입니다. 나와 다른 것, 다른 생각, 다른 은혜를 봤을 때는 ‘아, 나와 다르구나.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이걸 뜯어 고친다. 내가 틀림없이 뜯어고친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인내, 관용, 포용력이 아닙니다.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랑 다른 것을 그대로 접수해서 포용하는 것을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이것은 젊은 사모님들은 경험이 적어서 잘 이해가 안 될 것이고, 사모생활을 30년, 40년 하고 있는 사모님 같은 경우에는 120% 이해할 것입니다.

점점 내가 사모로서 무르익어간다는 것은 나와 다른 것을 그냥 다른 것으로 접수하는 것. 그래서 내 입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용납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모든 단체는 조직체입니다. 조직체는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해서 죽이든지, 아니면 나처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조직체가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힘들어도 말씀과 성령 안에서 이러한 세미나에 계속 참석하면서 주님 제가 바뀌겠습니다. 포용하고 용납하겠습니다. 할 때 성령님이 주시는 체험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열 두 영이나 더되는 많은 군사를 데려와서 자신과 전혀 다른 그들을 한순간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른 것을 인정했어요. 수용했어요. 포용했어요. 인내했어요.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는 회복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삶속에서 적용되어지는 것이 사모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것은 자신을 복종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윤택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 교인들이 요구하는 사모상은 똑똑한 사모가 아닙니다. 법리 해석이 정확한 사모가 아닙니다. 성경 해석을 정확히 해서 나에게 잘 적용해주는 사모가 아닙니다. 교회 일에서 목사님보다 더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교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저는 여러분들도 가끔 소식을 듣겠지만 사모님이 너무 목사님보다 앞서가시더라. 정말 한번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라고 아주 그냥 해병대처럼 열심히 뛰다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된 사모님들이 여럿 계십니다. 어느 전도사님이 아침에 출근했는데 두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는 거에요. 그래서 들어보니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앞에 있던 자매 바지가 엉덩이 사이에 끼어있더래요. 그래서 착하고 열심을 다하는 전도사라 그걸 볼 수 없어서 가서 그걸 쓱 뺐데요. 그랬더니 그 자매가 아침부터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달려와서 따귀를 팍 때리는데 시퍼렇게 멍이 든 거에요. 그래서 다른 한쪽은 왜 그러냐니까 자매한테 너무 미안해서 뺀 바지를 다시 넣었데요. 뺐으면 가만히 놔두지 그걸 미안하다고 다시 집어넣으니 양쪽 다 시퍼렇게 멍이 든 거에요.

저는 사모님들이 목사님보다 열심히 하는 것을 교인들이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마치 자기보다 더 못한 듯한데 자신이 생각해도 자시은 못된 권사, 집사, 장로인데 품어주고 포용력이 표정과 말씀 속에 나타나면 성도들은 ‘아, 저 사모는 열정은 있지만 냉정함도 있구나’ ‘사모님은 굉장히 열심이고 믿음이 있는데 행동에는 절제가 계시구나’ ‘우와, 저 사모님은 일보다 관계를 우선하는구나’ ‘이야, 목사님은 조금 그런데 저 사모님은 좀 늦더라도 우리와 같이 가려고 노력하시는구나’ ‘저런 사모라고 하면 아름답게 동행하다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동행하고 싶다’ 하는 마음을 줄 수 있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모는 똑똑한 사모가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받아주는 것이 표정과 언행 속에 나타나야 하는 거에요. 여러분이 자신을 보면서 내가 그러한 사모일까, 아닐까 생각해 보시고 나의 현주소는 과거에 결과이고 나의 미래는 현재부터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조금 더 성실한 모습을 하나님이 아닌 교인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모님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똘레랑스, 톨로런스라는 예수님의 정신이 무엇이냐면 사모는 교인들이나 목사님께 가끔 일부러 판정패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이 개업한다고 해서 가봤는데 바둑알처럼 생긴 돌에 새겨진 글을 보고서 너무 깜짝 놀라서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빨간 글씨로 ‘생존전쟁’이라고 써 있더라구요. ‘생존경쟁’이라는 말은 들어봤어요. 그런데 전쟁이래요. 전쟁은 이긴 사람만 생존할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KO승이에요. 여러분, 권투는 내가 KO승 하면 KO패, 한 사람은 얼굴이 붓고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드러누워서 '내가 언젠가 너한테 철저히 복수하리라. 내가 KO승으로 복수하리라' 하면서 이를 갈게 되는 거에요. 교인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이 부분만큼은 절대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은데 절대로 KO승 하려는 표정이나 말이나 행동을 하면 안돼요. 내가 6하 원칙에 의해서 멋지게 이겼죠? 그러면 KO패 한 교인은 때가 되면 틀림없이 나를 KO패 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KO승 보다 조금 나은 게 있어요. 판정승이라고 합니다. 판정승은 내가 내리는 게 아니라 3명의 심판이 내리는 거에요. 3명의 심판이 모여서 아무개 선수가 이겼습니다. 아무개 선수가 패했습니다. 이렇게 판정승을 해주는 거에요. 그러면 KO패 한 것 보단 판정패 한 사람은 조금 여유가 있어요. 심지어는 판정패한 선수가 판정승 한 선수를 껴안고 당신은 위대하고 정말 훌륭한 목사라고 칭찬과 격려와 축복까지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회하면서 자주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기 위해서 판정승을 허락해주실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고소해요. 하나님이 내 편이시구나. 그런데 얼마 지나면 내가 일부러 판정패 했다면 또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이 자주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일부러 판정패한 현장이라는 거에요. 이것이 목회나 사모 생활에 적용되어지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원로 목사님을 오래 모신 사람이에요. 우리 교단에 교회가 12,500개 정도가 있어요. 그 교회 가운데 원로목사님을 제일 잘 모신 목사를 뽑았는데 저하고 또 한 분이 결정되었어요. 그게 무슨 그렇게 극비인지 안 알려줘서 몰랐어요. 그동안 많은 패를 받았지만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도 가장 소중히 여길 패는 바로 그거에요. 원로목사님 잘 모셔서 받은 패. 저는 은사도 없고 설교도 힘차게 하지 못하고 이제 점점 늙어가요. 이제 이틀만 지나면 60이에요. 기독신문 보니까 제 나이는 담임목사 초청하는 교회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제 속으로 '우리 교회에 잘 붙어있어야 할텐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는 목사님의 말씀을 거역해 본 적이 없어요. 저희는 6대째 믿는 가정입니다. 전국에 몇 가정 없데요. 자랑이 아니라 간증인데 1대 할머니는 우리나라 최초 여선교사님이셨어요. 옛날에는 제주도로 가는 것을 선교라고 했어요. 제주도에 처음에 이기풍 목사님이 가셨는데 거기서 여자들 선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다음에 여선교사가 와야겠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우리 여선교사 한 명 보내자 하고 평양 외가 중심으로 기도와 물질을 후원하고자 작정해서 최초로 한국인으로 최초로 선교사로 가신 분이 저의 첫 번째 어르신 이선관 전도사님입니다.

6대째 쭉 믿으면서 한 가지 철저히 교육받은 것은 '주일은 생명처럼 지켜라. 십일조는 목숨 걸고 드려라.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섬겨라'였습니다. 저는 서울 장충교회라고 중구에 있는 좋은 교회에서 이규일 목사님 모시고 부목사를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인천 깡 시골, 제가 자란 제2교회 원로목사님께서 "제2교회에서 은혜 받았으면 제2교회 내려와 부목사 해야지" 하는 그 한마디에 내려갔어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어요. 지금도 생각해 보면 성령님이 역사하셨어요. 친구들은 저한테 인천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어떻게 올라온 서울인데 그것도 너가 자란 교회란 말이냐. 그런데 저는 목사님이 오라고 해서 갔어요. 속으로 2, 3년만 있다가 와야지 했는데 벌써 23년이에요. 긴 세월이 지났어요. 그러면서 원로목사님을 15년 이상 섬겼어요.

원로목사님이 탁구를 너무 좋아하시고 잘치세요. 그래서 항상 저랑 복식을 했어요. 제가 탁구를 잘 쳤을까요 못 쳤을까요? 잘 쳤어요. 저는 생존을 위해서 잘 쳤어요. 우리 원로목사님은 탁구를 치시면 60대인데도 4~5시간 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었고, 할 수 있거든 원로목사님이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였어요. 제 중심으로 오직 원로목사님이 이겨서 기뻐하는 것을 보리라. 정말 최선을 다해서 거의 다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어떤 젊은 목사가 왔는데 초, 중학교까지 탁구 선수를 한 친구에요. 저는 그 젊은 목사랑 짝을 이뤄서 탁구를 칠 때 이러다가 순교하지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쳤어요. 그러나 계속 졌어요. 우리 원로목사님 표정이 어두운 거에요. 연세드셨든 그렇지 않든 승부의 세계는 이겨야 하는 거에요. 어느 날 또 탁구를 치는데 이 친구가 두세 게임을 이겨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불러서 “목사님, 한번쯤 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었어요. "원로목사님께 그렇게 계속 이겨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번 져주시면 그것도 목사님 목회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이 젊은 목사가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조작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바보” 그랬어요. 그거 열 번 이기고 한번 연세 많으신 목사님 위해서 져주면 어때요. 일부러 한번 판정패 하면 어때요. 그러면 이 어르신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젊은 사람이 조금 더 연습해야겠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가십니다. 너무 기분이 좋으신 거에요. 그런데 결국 그 친구는 계속 판정패를 하지 않았고 지금은 인천교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부러 판정패 하셨다는 걸 유하게 표현했죠. 예수님은 일부러 KO패 하신 거에요. 다 아시면서도 일부러 KO패 하셨어요.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임 당했으면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어야 겨우 무승부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안 그럴지 모르겠지만 저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 세대에 태어나면 저는 주님을 배반할 확률이 높아서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목사를 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임 당하셨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죽어야 겨우 무승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순교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어쩌다 한번 사모로서 내가 직접 할 수 없으면 남편에게 "여보, 오늘 그분께 판정패 합시다. 우리 이번에 그 안수집사님께 KO패 합시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텐데, 마치 우리가 성경의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기도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완전 성경의 기준인 것처럼 그렇게 끝까지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목사님 사모님들이 계시면 담임목사님 사모님들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많이 배우고 새로운 신학을 배우고, 목회 형태를 배웠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담임목사 되면 여러분이 모셨던 목사님과 비슷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많은 부목사님들이 나가서 선교사로 혹은 담임목사로 목회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증인이고 그분들이 증인이에요. 나갔다가 6개월, 1년 만에 저한테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항상 마지막에 하는 말이 “저는 부목으로 있을 땐 그러지 않았는데 목사님 새끼처럼 닮아가고 있네요”라고 합니다. 가끔 “여보, 이번에 판정패 합시다” “KO패 합시다” “우리 주님께 맡깁시다” 물론 자존심은 상합니다. 그러나 사모로서의 자부심은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지금 현대 교회를 보면 놀라운 공통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현대 교회에 질적, 양적, 구조적으로 부흥보다는 일치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불교는 주지스님, 천주교는 신부님, 개신교에서는 담임목사님 내외에 따라서 모든 것이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이 있는데 사모님들이 마음 쓸 때 교회에 일치와 화평을 위해서 KO패, 판정패 해 봅시다. 그것으로 인해서 교회가 하나되었을 때 부흥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는 것이 현대 한국교회의 흐름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있는지 깊게 묵상해 보시면서, 두꺼운 외투는 찬바람이 벗길 수 없고 따뜻한 봄볕이 벗길 수 있듯이 이제는 교회에 사모로서의 권위는 부드러움이라는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더 부드러운 사모로 교인들의 두꺼운 외투를 벗기고 나만이 알고 있는 기쁨과 간증이 매달 새로울 수 있다고 하면 사모만큼 아름답고 재미있는 직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똘레랑스'라는 십자가의 정신은 나와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지. 그래, 이번에 판정패 할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마지막 기도를 특이하게 하셨어요. 십자가를 지기 전에 마지막 기도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드리는 기도였어요. 이게 간절한 기도였는데 반복적으로 예수님은 하나 됨에 대해서 강조했어요.

샴푸같은 사모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엔 샴푸하고 린스가 따로 있어서 사용하는데 많은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경의 마케팅 팀장이 계속 연구하다가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대히트를 칠 수 있는 상품이 무엇일까 연구해서 만들어낸 것이 ‘하나로 샴푸’에요. 세제 역사상 ‘하나로 샴푸’처럼 단시간에 한국 시장 전체를 공략한 역사는 없답니다. 세계 1위랍니다.

남자들은 욱 하는 성질이 있거든요. 저도 가끔 그래요. 그리고서 얼마나 후회할 때가 많은데요. 당장 그날 저녁에 후회하면서도 그걸 못 누르는 거에요. 교인들과 목사님 사이를 전화, 심방, 문자 혹은 메일로 성령이 주시는 방법을 가지고 하나 되기 위해 수고하는 사모가 필요합니다. 대히트 칠 수 있는 사모, ‘하나로 샴푸’ 같은 사모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총회에서 사모 제복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주일날 보면 누가 사모인지 몰라요. 그래서 신부 수녀처럼 사모복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 5천년 역사가 의복문화입니다. 어떠한 옷을 입었는가에 따라서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술, 담배, 마작에 찌들어도 신부님은 신부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신부님을 목사님보다 더 존경하는 거에요. 목사는 의복이 없어요. 사모도 구별된 게 없어요. 그러면 무엇으로 고리를 채울 수 있을까? 그것은 목회 생활 속에 교인들을 하나로 만드는 거에요. 자신을 복종시키는 모습이 있을 때에만 그것이 사모의 권위입니다. 큰소리 치지 않더라도 사모님 앞에 연세 많은 권사도 마음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진정한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부목사님 사모님들 계시면 부목사님이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에 대해서 계속 불평하면서 다른 교회 모집광고 찾아보고 이런 것을 이겨보는 거에요. 남편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담임목사님 내외분과 마음으로 하나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사모로서 살아가면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거에요. 당회원들과 교인들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나쁜 의미로 생각하지 마세요. 좋은 의미로서 때로는 걸레가 되도 괜찮다.

저희 교회 오래 된 교인들은 제 아내를 따오기 사모라고 합니다. 왜 따오기일까요? 우리가 23년 동안 한 교회에 있어서 오래 된 교회들이 이제 아는 거에요. 오래 되었다는 것은 최소 30-40년 한 교회를 계속 다녔다는 거에요. 지금 갓 들어온 교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 아내를 보고 ‘저 사람은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사모야. 그러나 꼭 필요할 땐 그 자리에 있는 사모야. 그러니 목사님 앞장서서 나타남으로 영광 받고 칭찬받지만 저 사모는 얼마나 처량할까?' 해서 붙여진 이름이 따오기 사모에요. 제 아내도 인천 출신이지만 저도 인천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어머니 뱃속부터 제2교회 교인이었어요.

저희 아버님은 거기 장로님이셨고 모태신앙입니다. 모태신앙이라 하면 아무것도 못해. 그게 모태신앙입니다. 성령을 언제 받았는지 언제 구원받는지 몰라요. 종소리가 울리면 그냥 교회를 가는 모태신앙이었어요. 신대원을 갈 때 처음으로 다른 교회라는 곳을 가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교회는 제2교회 같은 교회만 교회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너무 충격을 받고 본교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못 갔어요. 그러다가 서울에서 교역자 생활 10년 조금 못했을 때 목사님의 명령을 받고 내려가서 지금까지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제2교회 귀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태어나서부터 평생 있었던 교회니까 제 꼬락서니를 그분들이 너무너무 잘 알아요. 꼬락서니라고 표현한 것은 제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고 남들에게 본받을 만한 여정은 아니었다는 거에요. 그러다 내가 본 교회로 온다니까 동기들이 하는 말이 네가 1년 견디면 성자라고 했어요. 장로님은 많이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서른세 분이 계세요. 간이 커서 놀라시는 분들이 없구만요. 여러분, 서른세 분이 앞에 앉아 있어 봐요. 말이 제대로 나오나. 저는 처음에 말이 제대로 안 나왔어요. 그 서른세 분이 다 제2교회 선배요, 주일학교 스승이었어요.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세월이 지나면 내가 나이 먹어 중간정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장수하는 세상이 되어서 내가 23년이 지났는데도 23년 전에도 저보다 나이 어린 분이 서너분 밖에 안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저보다 어린분이 서너분 밖에 안되요. 소망이 없어요.

안수집사들이 저랑 같이 뒹굴면서 살았던 친구들, 저보다 저를 더 너무 잘 아는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젊은 청년들이나 대학생들이 교회 수양회 갈 때에 그 긴 시간 동안 차 안에서 나의 옛날 꼬락서니를 재미있게 얘기해주는 게 다 안수집사들이에요. 거기에서 어떻게 목회할까 했는데 23년을 하고 있어요. 99%는 하나님이 한 거에요. 그런데 1%가 있다 하면 저와 우리 아내는 항상 따오기임을 잊지 않았어요. 너무 나서지 말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우리가 희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99% 하나님의 은혜라는 대 전제 속에서 그 많은 장로님 가운데 우리 부부 싫다고 교회 나간 장로님은 오늘까진 없었어요. 내일은 모르지만 오늘까진 없어요. 절대로 자랑이 아닌 간증이에요. 똘레랑스 정신을 가지고 그것이 교인들에게 비춰지면 그분들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는 거에요. 너무 허물이 많아요. 저는 사모님들만 계셔서 솔직히 고백하는데 저는 아이큐 숫자가 세 자리가 아니에요. 우리 아내도 두 자리 숫자에요. 그런데 그 두 자리가 8인지 9인지는 말씀 못 드려요. 그런데 어느 날 동물의 왕국을 보니까 머리가 너무 좋은 침팬지가 아이큐 95래요. 아 나랑 비슷하구나. 저는 왜 그렇게 공부하고 암기하는데 시험점수가 안나오는지 몰랐는데 아이큐 검사를 중학교 때 받고 충격이었죠.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오는 이유를 그 때 알았어요.

우리 교회는 장로님들이 많아요. 안수집사는 너무너무 가까운 친구들이에요. 어떻게 목회할까? 거기에 원로목사님과 원로목사님 사모님도 모셔야 되고, 23년을 그렇게 했어요. 저희 아버님이 저한테 직접 말씀은 안하시는데 전해들은 말이 뭐냐하면 "진짜 부모가 누구야?" 이렇게 말씀하셨데요. 앞으로는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너무 감사해요. 아마도 내가 칼날 같거나 법리의 세계에 확실하거나 사실과 거짓을 분명히 가르거나 했다면 지금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도 저를 꼭 닮았어요. 여기 증인들이 몇 분 계십니다.

저는 장기목회가 멋지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과 충돌하면서 교회를 자꾸자꾸 옮기는 것도 좋은 목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만 더 하고 끝내겠습니다. 교인 관리. 천주교는 중앙에서 지침이 나와서 관리하는데 개신교는 각개전투에요.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에 비유를 가지고 교인 관리에 대한 어떤 지침을 주시는 것 같아요.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어요. 드디어 내가 일평생 의지할 교회와 목사님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령님께 감사하고 저에게 평생 목사님 내외분과 동역하면서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목사님 내외분에게 장례를 받겠습니다. 이런 분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너무 깊게 동거동락 하면 어느 날 돈키호테로 변합니다. 이거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인 관리에 혹 내가 조금 실수를 하고 있다면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첫째는 부러워하기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우리 원로목사님은 인천에서 살아있는 성자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한평생 목회하면서 당회와 교인과 충돌 않고 계속해서 일체시키면서 질적, 양적, 구조적 성장을 일으킨 비아파트 지역에서 교회를 성장시킨 인천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십니다. 그 목사님이 저한테 담임목사직을 넘기시면서 몇 마디 말씀하신것들 중 하나가 지금 제 뇌리에 정확히 새겨져 있습니다. 눈이 깜빡이는 순간에도 잊지 않는 교인과의 원칙입니다. "이 목사, 교인과 목사 사모와의 관계는 불과 같은 관계야" 그러셨습니다. "목사님, 한 말씀 더 주시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워, 그러나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데일 수 있어. 불과 나와의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그 온화함에 은혜를 빚어나갈 수 있는 것이야. 그것이 이목사 부부와 교인과의 관계야. 알았나?" 하시면서 목사님이 한 말씀을 더 하셨는데 그 말씀은 여기에서 하진 않겠습니다.

그 분은 일평생 목회하면서 그런 관계를 유지했는데, 너무 적극적으로 심지어는 나중에 물질공세까지 펼치며 가까이 하려는 그 사람을 적당히 두는 게 그렇게 힘들 수 없었다는 거에요. 여러분, 저도 이제 목회는 몇 분 빼놓고는 선배입니다. 친위대 만들지 마세요. 친위대 만들면 결국은 그 사람들이 돈키호테 될 확률이 90% 이상입니다. 저는 절대라는 표현 안 씁니다. 그러나 이건 주관적인 생각이니까 참고만 하세요. 저는 당회원들과 제 아내는 권사, 집사님들과 한 번도 목욕탕에서 같이 목욕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절대로 주관적인거니까 특별하게 마음에 두지 마세요. 왜냐하면 목사님 사모님 가운데 교인들과 또는 권사, 집사님들과 함께 목욕을 하며서 좋은 교제 나누시고 교회를 아름답게 이끄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절대라는 단어 쓸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부부는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본교회지만 다시 가서 보니까 거의 2/3가 머리가 다 벗겨졌어요. 그런데서 내가 나이도 젊죠. 신앙 경력도 짧죠. 제2교회 후배죠. 막내죠. 돈도 없죠. 권세 없죠. 특별한 의복도 없죠.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건 내가 장로님들에게 또 교인들에게 내 알몸 보이지 말아야겠다. 내 알몸 보이면 그때는 서로 깊은 친구가 될지 몰라도 아마도 설교 들을 때에 다른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알몸 보이면서 같이 했다고 마음이 풀어져서 못할 얘기도 하면 그것이 나중에 발목 잡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장로님, 남자 집사님들과 목욕을 해본 적이 딱 한번 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피하는 것이 오히려 덕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아내는 아직 한 번도 안했어요. 그럼 도대체 목사님 내외분은 어디가서 목욕합니까? 우리는 교인들이 많은 지역이나 교회 근처 목욕탕을 가지 않고 인천 경계를 넘어 시흥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리고 안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북쪽으로 가면 온천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로 1일 부부 여행겸 다녀옵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시간이 없을 때 우리 아내랑 가는 인천 시내의 목욕탕이 있습니다. 그곳은 저 끝에 해수탕인데 엄청 더럽고 냄새나고 엄청 저렴한 목욕탕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로 갑니다.

대부분의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정성을 기울였는데도 나가겠다는 교인들에게 본인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이상한 기도를 드리고, 가까운 교인들에게 저주와 같은 이야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인천 시내에서도 두 교회가 아픔을 당하고 있어요. 나가는 교인들에게 악담을 하거나 저주를 해서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나머지 교인들이 나가는 교인들을 향한 저주의 말을 듣고 기뻐할 것 같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교인은 결국엔 자신이 판단한 약자 편에게 마음을 주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한 사모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신거에요. “나가서 1, 2년 만에 암에 걸릴 걸?” 그렇게 하면 안되요.

저는 솔직히 초인종을 10분 이상 눌렀던 적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렀어요 어떤 곳은 가서 제가 3시간 동안 훈계를 들었습니다. 교회 나가기 전에 저한테 다 퍼부었어요. 내가 대답한 것은 "네, 옳습니다." 3시간 후에 제가 제일 길게 말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로 끝을 내자고 해서 제일 길게 얘기한 거에요. 그리고 제가 차에 가서 울었어요. '저사람 없어도 다음 주에 새신자 들어올텐데 내가 지금 뭐하나? 내가 그렇게 약한가?' 나중에 다 오해가 풀렸지만요.

어떤 분은 나갈 때 우리 부부가 가서 좋은 교회 가시고, 좋은 목사님 만나시고, 그리고 이렇게 큰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에서 보람 있는 교회 생활, 권사 생활을 해서 좋은 소식 들려올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해줬어요. 그리고 만약에 그 교회에서 잘 적응이 안 되거나 이건 아니다 하는 일이 생겨서 본 교회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전화주시면 제가 심방도 하고, 본 교회 다시 나올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2년 반 만에 그 수순을 밟아서 지금 우리 교회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직분자 선출을 위해 투표를 했는데 안수집사가 될 줄 알았다가 안되서 본인도 그렇지만 아내와 자식들이 너무 섭섭해서 교회를 옮겼는데, 우리 아내가 계속해서 그 집사한테 전화하는 거에요. 나한테 그리 전화 안하면서도 그 집사한테는 전화해서 "그 교회 어떠세요? 새로운 교회 재미있어요? 교회랑 가까워서 좋겠네요. 가끔 교회 생각은 나죠? 잘 적응 안 되면 언제든지 전화주세요." 그렇게 제 아내는 계속해서 전화를 해요. 한 달 전 그분이 돌아왔어요.

옛날 목회방식은 이제 안되요. 뒷문 열어놨지만 동시의 탕자의 아버지는 앞문을 또 열어놓을 수 있는 지혜와 목회의 전략, 그리고 사모의 여유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만큼 떠나겠다는 사람에게 뒷문 열어놨지만 앞문도 다시 열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전략을 잘 세워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잘 양육할 수 있는 그런 사모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저는 제일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어느 날 하나님이 침묵하신다. 소름 끼치는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맨 처음엔 교인들과 당회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 부부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사모라면 안타까움이죠. 하나님은 왜 내게 침묵하실까? 오늘 마음에 느껴지는게 있으면 제발 기억하시고 자신에 대해서는 좀 더 둔감하고, 교회와 교인들에 대해서는 좀 더 민감해지는 무릎으로 섬길 수 있는 그런 하반기가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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