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7) 교갱협 제1차 장로섬김수련회 주제특강

본문: 출애굽기 17장 15절

이번 수련회를 하게 된 가장 큰 목적은 우리 목회자들이 갖고 있는 교갱협 정신을 당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모든 장로님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면 좋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목사 개인의 목회, 승패 혹은 폭 넓게 표현해서 한 교회의 승패는 적어도 장로교 체제 안에서는 목회자와 장로의 협동 관계에 달려있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목사 아무리 재주가 많이 있어도 장로님들과의 협력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목회가 제대로 안됩니다.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한 교회의 목회의 사역의 승패는 당회 장로님들과의 협력관계가 얼마만큼 아름답게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사건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웁니다. 모세는 손을 들고 여호수아는 전쟁을 치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모세가 팔이 아파서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지고 아말렉이 이깁니다. 그 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를 앉히고 협력 한 것 입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과 매형인 훌입니다. 이들은 모세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앉히고 팔을 붙들어 올렸더니 끝까지 붙들어 올렸더니 이스라엘이 이겼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사역이 승리했다는 뜻이죠. 글쎄 교회의 섭리는, 목회 사역의 섭리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협력 관계가 어떻게 되어지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결론적인 말씀으로 먼저 드리겠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아는대로 사도행전 20장 28절에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가장 고귀한 기관입니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기관 보다도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기관은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에 그 무엇을 위해서 예수님 피를 흘리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희생이 있을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두십니까? 교회 없으면 안됩니까? 왜 교회를 두셨는가 하는겁니다. 글쎄 일반적으로 지상 교회 존재의 목적을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 교회를 두셨습니다. 즉,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가장 크게 기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그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가 하는 첫 번째 교회 사역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 입니다. 우리 매주일 어떻게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되게끔 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첫번째 목적인 것 입니다.

둘째,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할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지역사회를 섬기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고 구원선이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교회. 즉,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 구원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믿은 성도들이 해야하는 가장 큰 사명은 불신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입니다. 전도를 포기하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기능을 상실 한 것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많이 지탄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교회는 자기들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단절. 즉 교회에 있어서 지역사회가 피해를 입고 있어서 교회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제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 주변에 있는 사람들 입니다. 교회가 한 것이 뭐냐는 겁니다. 더 크게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를 위해서 교회가 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대북사업이나 불우이웃을 돕기의 70%를 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기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이름을 낼 필요는 없지만 교회는 홍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회가 일을 하는 것을 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나 카톨릭은 언론플레이를 참 잘하는 반면 교회는 잘 못해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회 교단이 너무 갈라져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의 교회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만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얼마 전 동국대 사건, 신정아 사건 때문에 불교가 엄청 비난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 가운데 J언론이 그 사건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불교 종단 회의에서 J신문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j일보가 거의 매일 불교 선전을 하더라구요.

셋째, 교회는 교회 안에 내적인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가 내적으로 하는 기능은 교육과 교제입니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준비하는 말씀교육이 필요하고 그리고 교회는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되자면 성도끼리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질 때에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어떤 교회냐, 성숙한 교회가 어떤 교회냐, 저는 이 다섯가지 기능을 균형 있게 잘 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다. 좋은 교회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장로교입니다. 많은 교회들 가운데 장로교. 모든 교파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감리교의 특징이 있고, 장로교의 특징이 있고, 침례교의 특징이 있고, 성결교의 특징이 있죠. 각 교파는 그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두 가지 측면의 특징인데 하나는 교리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제도상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을 강조해서 교파 이름을 붙인 겁니다. 침례교. 교리상의 특징입니다. 물 뿌리는 세례 인정하지 않고, 물속에 푹 담기는 침례를 강조하는 교파다. 그겁니다. 성결교도 그렇습니다. 성결 교리를 강조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감리교는 정치체제에 따라 붙인 것 입니다. 감리교라는 말은 감독치리의 정치제도입니다. 장로교는 교리상의 특징과 정치체제상의 특징이 있죠. 교리상의 특징. 장로교가 가장 강조하는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창조주권, 구원주권, 섭리주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가장 강조하는 교리입니다. 다른 하나 정치 제도상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장로회 치리제도를 택한다는 말입니다.

교회 정치제도를 교황정치, 감독정치, 장로교정치, 자유정치, 회중정치 이렇게 다섯 가지를 말하지만 이것을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직자 한사람이 전적으로 다스리는 정치제도가 있습니다. 이게 감독정치이고 가장 확대 된 것이 교황정치제도입니다. 그 다음 다른 하나는 주권재민의 원칙에서 온 성도들에게 모든 정치의 참여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유정치 혹은 주합정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침례교는 원래 장로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로회 정치제도는 두 가지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규정합니다. 성직자인 목사와 노회의 대표인 장로로 당회를 구성하고 그 당회가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다 갖고 있는 정치제도가 장로회 정치제도입니다. 성직자인 목사와 교인의 대표인 장로가 당회를 구성하고 그 당회가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회 정치제도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성직자인 목사와 교인의 대표인 장로의 협력관계 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이것이 잘되는 교회가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부흥하는 교회, 내일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참 중요해요. 교회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느냐 교회 성장을 이야기 할 때에 여러 가지 성장의 이야기를 합니다. 양적 성장, 질적 성장 이렇게 구분하기도 하고 양적 성장은 숫자가 불어나는거죠.

숫자가 불어나는 방법은 첫째, 출생에 의해서입니다. 아이 많이 낳으면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농담 삼아 그런말을 합니다. 전도 못하면 애라도 많이 낳아라. 그런데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도 출산률이 떨어진다고 해서 아이를 셋 낳으면 백만원 준다고 했습니다. 둘 낳은 사람들 가운데 시도해서 셋째 낳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백만원 준다고 했습니다. 12월 초에 한사람이 셋째를 또 낳는다고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신자들은 애 많이 낳지 말고 신자는 애 많이 낳아라. 애 많이 낳으면 소위 자연 출생에 의한 증가가 되어질 수 있지요. 그 다음은 이동성장입니다. 이쪽 교회에서 저쪽 교회로 옮겨다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동성장이 참 많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은 선전합니다. 어느 지역에 개척 5년 만에 500명 돌파 1,000명 돌파했다고 합니다. 양해하고 들어주십시요. 그건 도둑놈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개척 5년 만에 500명, 1,000명 돌파 어떻게 합니까? 불신자를 회심시킨 것이 아니라 전부 다른 교회에서 옮겨왔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마치 목사 지혜와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 같이 선전을 하는데 그건 양 도둑놈입니다.

목회자의 십계명 제1조. 남의 양을 도둑질 하지 말라. 그런데 양 도둑놈이 많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교회도 통계를 내보면 소위 이동해서 오는 분도 있고 새로 전도 되서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동해서 오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멀리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와서 오면 환영을 해요. 그런데 같은 동네에 있으면서 이 교회에 있다가 저 교회 가고 그거는 좋지 않습니다. 제가 한번은 어떤 분이 등록 했기에 어디에서 왔습니까 물어보니까 바로 이웃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등록하려는데 받을까 물어보니까 목사님이 이런 저런 속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새신자 담당 목사님께 그 세분 보내드리도록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옆 교회하고 경쟁상대가 아니라 협력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큰 것은 회심성장입니다. 불신자 전도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그 일을 교회가 생각하고 그것을 통한 양적인 성장을 도모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 개척성장도 있고요. 선교성장도 있습니다. 타문화권 선교를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합니다. 그걸 제가 많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작년 통계죠. 2006년 갤럽에서 통계를 발표해서 한국교회 큰 충격을 준 적 있습니다. 1996년과 2006년 10년 동안의 교인들 감소율. 개신교는 14만 4천명이 줄었다. 하필이면 14만 4천명입니까? 그런 발표를 내서 온 교회가 충격을 받고 특히 목사들은 충격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뭐 이유가 많지요. 그런 이유를 다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해야 성장할 것인가? 알파벳 p라는 글씨로 place, 위치가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죠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굉장히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 다음 people, 구성원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는가. 그것도 큰 영향을 줍니다. 세 번째는 pastor, 목사가 어떠하냐. 네 번째는 parking, 주차장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제가 20년 전 미국에 갔을 때 주차장이 있어야 교인들이 오는가 하고 이해를 못했는데 한국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교회 왔다가 주차 잘못해서 5만원짜리 딱지 벌금 떼고 혹은 견인되고 하면 그 교회는 다신 오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도 식당 가더라도 만원짜리 밥 먹고 나오는데 오만원짜리 딱지 떼면 그 식당 다시 가고 싶겠어요? 다시는 안갑니다. 그 식당이 아무리 맛있어도 다시는 못갈겁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p는 pray, 기도 많이하는 교회가 부흥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교회나 한국교회나 일반적으로 조사해 보니까 교회가 활기가 있고 성장하는 교회들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역동성 있는 예배가 있습니다. 초상집 같은 예배가 있는가 하면 잔치집 같은 예배가 있습니다.
두 번째, 복음적 설교가 있습니다. 성경 본문 하나 읽어놓고 오만 잡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충실한 설교더라는 것 입니다.
세 번째, 기도를 많이 합니다.
네 번째, 지속적인 전도운동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새신자를 정착시키고 양육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섯 번째, 필요한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기 본교회 나가고 애들은 교육 잘 시키는 다른 교회에 보내는 현상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 것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대로 목사에게 달려있습니다. 목회자의 리더십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목사라는 말이 몇번 나오죠? 목사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 딱 한번 나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목사라는 단어 딱 한번 나옵니다. 그것까지 없었으면 목사는 설 자리도 없을 뻔했는데 딱 한번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목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포이멘인데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 18번 나옵니다. 18번 나오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17번은 목자로 번역했어요. 그리고 4장 11절에 한번 목사로 번역한 것입니다. 즉 목사는 목자라는 말인거죠. 목자가 뭐하는겁니까? 양을 먹이고 인도하고 다스리고 격려하고 보호하는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 그런 내용이 있죠.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위기는 바로 목사의 위기입니다. 바로 소명감의 상실입니다. 소명감의 상실이라는 것은 목회가 직업주의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끄럽게도 총신대 총장하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어서 제가 입시 제도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영어 단어 몇 개 더 알고 성경 상식 몇 개 더 안다고 좋은 목사 되는 것 아니다. 요새 회사 시험보다도 면접을 보면서 사람을 뽑는데 면접에 비중을 둬서 정말 그 사람의 신앙적인 성숙도나 소명감을 확인해서 뽑아야지 영어 단어 몇 개 더 잘 아는 사람을 뽑아서 제대로 목사가 되겠느냐? 솔직하게 총신대신대원 안에도 소명감 없이 들어와 있는 신학생이 얼마나 많으냐? 내가 볼 때 반 이상 되는 것 같다고 하니까 총장도 부인하지 않더라구요. 옛날엔 잘하지는 못해도 소명감 하나 붙들고 십자가 붙들고 눈물 질질 흘리면서 사당동 언덕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목회직이 하나의 좋은 직업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목회가 좋은 직업이 되어버린 그건 위기입니다.

첫째, 목회자 윤리성의 상실입니다. 이것이 도덕성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 큰 위기라는 사실입니다. 교회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목회자가 가져야 할 리더십은 첫째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모험심 결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감화력. 영향력입니다. 교인들을 따라 움직이게 하는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섯째, 때로는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위기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일곱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여덟째, 메니지먼트 할 수 있는 행정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등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런 스타일의 리더십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장로님들의 헬퍼쉽이 중요합니다. 헬퍼로서의 장로입니다. 헬퍼는 돕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마라톤 페이스 메이트. 뛰는 사람 옆에서 같이 그 페이스를 조절해주는 사람 있죠? 농구선수는 5명이지만 식스맨이 있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 이런 사람들입니다.

헬프로서의 장로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첫째는 성실성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절에 나타난 장로에 대한 요구가 있죠.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해서 하고 더러운 일을 위해서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하고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본이 되라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한마디로 표현하면 저는 이것을 성실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헬퍼가 된다는 것은 겸손하지 않으면 헬퍼가 될 수 없죠. 예를 들어서 아론이 모세를 제치고 내가 앉아서 손 들 테니까 니가 받들어라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그러지 않고 헬프로서의 겸손성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서로가 인정해야 합니다. 목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같은 당위원들 끼리의 상호간의 은사에 다양성을 인지하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 리더와 동일한 비전을 소유하라 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이런 비전을 가지고 이쪽으로 가려하는데 장로님들은 다른 비전을 가지고 갈라지면 그 교회가 될 수 없죠.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헬퍼로서 장로님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입니다. 리더의 탈진, 목사가 탈진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지어 영적으로도 탈진할 수 있습니다. 그 리더가 탈진 되어졌을 때에 격려하는 역할. 저희 노회에서 곧 은퇴를 앞두신 목사님이 표현하기를 목사와 장로는 부부관계와 같다고 합니다. 서로 격려할 수 있어야한다.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리더의 불완전성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장로님들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목사의 보완이 필요하죠. 남편과 아내 돕는 배필. 돕는 배필이라는 표현 속에서 서로가 도와야 한다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섯째, 헬퍼로서의 장로님들은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사실 목사로서 저는 굉장히 자부심이 있습니다. 장로님들도 동일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장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대단한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장로 부인이 됐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내 남편이 장로가 되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어떤 명예나 권세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장로로서 앞장서서 잘 섬기고 싶다. 평생을 장로로 섬기며 산다. 그런 장로님을 내가 도우며 살아가는 권사가 되었다. 이거 엄청난 축복입니다. 교만할 것이 아니라 엄청난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장로 직분을 우습게 알면 안됩니다.

아주 좋지 못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장로님이 계십니다. 필라델피아에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공인회계사로 부자였습니다. 근데 불행하게도 장로님이 한눈을 팔아 다른 여자가 생긴겁니다. 이게 기절할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그 부인 집사님이 당신이 이럴 수 있냐. 인간적인 배신감도 느끼고 장로가 이럴 수 있냐고 했더니 그 양반이 하는 소리가 장로도 그만 둬버리면 되지 않냐. 이 여자는 못 그만두겠다는 거에요. 그러다가 얼마 안가서 장로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제가 그 때 미국에 갔다가 들려보니 병원에서 항암치료중이었습니다. 일부러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바람 피다가 죽는 남편 옆에 있는 부인 집사님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님들은 위기관리를 잘 해주셔야 합니다. 교회는 원치 않는 위기가 주어집니다. 아마 여기 계신 목사님들이 모두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생각을 가지실겁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교회도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큰 위기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배당에 불이 난 위기였습니다. 불이 나서 83년도에 예배당을 몽땅 태워버렸습니다. 엄청난 위기 아닙니까. 큰 위기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회계 집사가 경마 도박에 교회 돈을 떼 먹은 겁니다.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어제 어느 분도 교회 재정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그런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글쎄 어느 교회는 수계하는 곳에 카메라를 6대를 달아놨다고 합니다. 그 교회 이름 대면 여러분 깜짝 놀랍니다. 교회는 안 밝히겠습니다. 이런저런 하여튼 그런 위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위기를 만났을 때에 목사는 정신이 없습니다. 장로님들이 어떻게 그 위기를 관리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건을 통해서 교회가 더 전진할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 때문에 교회가 파산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우리교회가 좋다는 얘기는 그런 위기가 두 번 있을 때 당회원들이 정말 믿음으로 지혜를 모아서 그것을 잘 극복했습니다. 위기 관리자로서의 당 위원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침몰하느냐, 이 풍랑을 이용해서 더 빨리 갈 수 있느냐는 위기관리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끝으로 장로님들 계속해서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자기 관리는 영성 관리가 필요합니다. 영적이 관리. 목사가 영적으로 완전하지 않듯이 장로님들도 영적으로 완전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성관리 입니다. 옥 목사님께서 어제 말씀하신대로 무식해선 안되죠. 계속해서 지성적 자기 발전이 필요합니다. 세 번 째는 인격관리 입니다. 인격관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입니다. 장로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성. 믿음을 줄 수 있는 인격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장로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상급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라는 직 자체 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직을 어떻게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섬기느냐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우리 모든 교회들이 여호와 닛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각 교회들 마다 십자가 꼭대기에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는 여호와 닛시의 놀라운 축복이 교회들마다 있고 그런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목사의 부단한 노력과 장로님들의 협력 관계가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좋은 교회들 축복받은 교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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