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8/23) 교갱협 제5차 영성수련회 주제특강

역사의 의미

독일교회가 그동안 많은 교회를 도와주다 보니까 자기들 교회가 자꾸 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여름에 함부르크에 갔었는데 그 곳에 있는 큰 중세교회가 운영이 안되어 경매 처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모슬렘 교도들에게 팔렸습니다. 그 모슬렘 교도들은 교회의 십자가를 다 뜯어내고 그대로 아파트를 만들어서 모슬렘 교도들이 살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독일 교회들이 이제는 외국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우리나라의 교회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되겠는가 해서 특별위원회 5명을 세웠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함부르크에 있는 한국교회 목사님이십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크게 발전한 비결이 뭔가? 그 분이 앞으로 크게 공헌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교회가 현재 수적으로 절대 뒤쳐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인천의 한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가기 전에는 꽤나 큰 교회인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까 6층 짜리 조그만 건물 옥탑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모퉁이에다가 커튼을 치고 그 안에 침대를 놓고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목회를 합니다. 어린애들까지 다 합해도 스물 여섯 명 정도밖에 안되는 어려운 교회인데, 주보를 보니까 ‘우리가 도와주는 교회’ 해서 비흘빈의 교회를 두 군데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또 거제도에서도 조그만 교회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도 소련에 두 교회를 짖고 비흘빈에 한 교회, 중국에 두 교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교회인데 말입니다. 현재 국내에 정확한 통계는 안 나와있습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들도 중국 같은데다가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정확하게 통계를 내면 한국이 세계에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내는 나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정착과정

본래 한국교회는 처음에 들어왔던 선교사님들이 한 10년 정도 되어서 전국에 칠팔백 명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우리나라 교회가 발전하는 것을 보고 맥도날드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열 두 지파”라는 책을 1890년에 썼습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에 지금 두 지파 밖에 남지 않았고 열 지파가 어디 갔는지 모르는데 맥도날드의 글에 의하면 그 열 지파가 한국에 와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을 영어로 하면 “CHOSEN”인데 “CHOSEN”은 선택한다는 말의 과거분사입니다. 과거분사가 명사로 쓰이면 꼭 피동체로 써야 되어서 ‘선택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조선은 “선택받은 자”입니다. 그 당시 선교사들이 하는 말이 이 세상에 선택받은 자라는 이름을 가진 민족은 둘 밖에 없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이고 또 하나는 CHOSEN(조선)이라는 것입니다. 구속론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사명론이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 근대사라는 총서가 12권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19세기에 한국 교회의 선교의 성공은 세계사의 미스터리’라고 적혀있습니다. 압도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이렇게 발전한 데에는 어떤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발전한 것이 우리가 축복받고 내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입니까? 요즘 우리 신앙이 많이 뒤바뀌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신학적으로, 이제는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일제에 시달려오고, 공산당한테 당하고 해서 우리의 신앙은 “나를 구원하소서!” 그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구원론이 핵심입니다. 어둡고 아프고 쓰리고 고통스럽고 굶주린 그런 세계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옛날 찬송가를 보면 이런 찬송이 나옵니다. ‘주여, 떡을 싫도록 먹여주오. 옷과 밥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게 우리나라가 제일 처음에 예수 믿을 때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아십니까? 이광수가 말하기를 여러분, 조선사람이여! 얼마나 가난한지 아십니까?  조선에서 잘사는 것은 ‘밥이나 먹지요.’ 그게 잘사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의 70%가 반영구적인 전량상태에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때 해방이 되었는데 그 때 학생이 도시락을 싸오는데 도시락 속에 나무뿌리를 삶아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엊그제 일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신앙은 “나를 구원하십시오. 저를 해방시키십시오.” 라는 구원이 신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난 주일에 설교를 했는데 아흔아홉 마리 중에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지요? 그런데 한 마리 찾기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를 놔뒀다는 것은 온 세계를 다 두고 한 마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거기서 잃어버린 것이 누구입니까? 양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우리는 설교할 때 백 마리 중에 떠나서 홀로 방황하는 양에 대해서 얘기했지 잃어버린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아흔 아홉 마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하신 세계를 다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갔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더듬어 온 길을 다 더듬어 온 겁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고 우리가 고통 당하고 그러니까 하나님께 돌아가야 되고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구원해주는 구속자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한국교회가 눈을 뜨고 뒤바뀐 주체를 돌려서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하시는 고통! 탕자가 언제 회개했습니까? 돼지죽을 먹을 때입니까? 아니올시다. 돌아와서 허리가 꺾어지고 자기 때문에 주름살이 생기고 이가 빠지고, 늙으신 백발이 된 아버지를 보고야 비로소 뉘우쳤다는 해석이 절대적인 해석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고통 당하고 시내광야에서 고통 당하는 출애굽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구원해 주십시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모세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준 복음이 신명기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출애굽과 같은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배불리 먹게 되었을 때에’의 신앙이 신명기입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신명기의 신앙이 뭔가 하면 11장에 요약되어있습니다.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하는 직임과 규례와 법도와 명령 이 사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신앙은 ‘나를 구원해주소서’ 하는 구속론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사명론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명기입니다.

모세가 백이십 세에 느보산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죽었습니다. 성경에 ‘백이십에 모세가 죽으니라’ 하고 바로 그 다음 말이 뭔지 아십니까?  그 다음 말은 ‘그때에 모세의 눈이 풀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세가 안 죽을 것을 죽었다는 겁니다. 건강한데 왜 죽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한 얘기하고 지금 사건하고 통합니다. 모세가 신명기 32장에서 고별사를 하는데 거기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한테 단비와 같은 말을 해주겠다. 아침에 채소밭에 떨어지는 이슬비와 같은 그런 말을 해주겠다’ 제일 중요한 말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첫째가 옛날을 기억하라. 둘째가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셋째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경계를 정해주었다.


민족사로서의 한국교회사

이 세 가지가 우리가 역사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얘기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사라든가 역사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나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옛날을 기억하려면 어떤 역사를 보존하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6.25사변이나 8.15를 겪으면서 아픔과 감격을 겪었는데 아픔과 우리의 고통을 기억나게 해주는 역사적인 유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 남아있었는데 바로 중앙청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욕하기도 하는데 일제 때 중앙청은 17년밖에 못썼습니다. 누구는 왕궁의 맥을 끊었다고 하는데 조선 총독부를 짓고 나서 한국이 망했습니까? 그 전에 한국은 이미 망했습니다. 고통의 상징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과 에스겔서 모두가 고통의 책들입니다. 여러분 애들이 언제 눈이 똑똑해지는지 아십니까? 아프고 나면 눈이 달라집니다. 바이올린 줄은 잡아당겨서 끊어질 때쯤 되어야 좋은 소리가 납니다. 시편에 보면 ‘주여, 내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유익하나이다’ ‘내가 이로써 주의 일을 알게 되었나이다’ 시편은 기가 막힌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것을 없이하지 마옵소서. 중앙청도 없애지 마시고 이 모든 것을 없애지 마옵소서. 왜냐하면 내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독일사람들이 머리가 참 좋습니다. 18세기, 19세기에 독일은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바하, 베토벤, 하이든, 헨델, 모차르트 등 그런 음악이 고약한 머리 속에서 나올 것 같습니까? 숭고하고 고귀하고 깨끗한 머리가 아니면 그런 음악이 안나옵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헤겔, 칸트 등 셀 수도 없습니다. 문학도 괴테, 토마스만, 휘테, 등 독일은 18세기 19세기에 세계적인 음악, 철학, 문학을 통해서 독일사람들의 영혼이 고상하고 정신이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유대인 650만 명을 죽였습니다. 이 얘기는 무슨 얘기입니까?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어디서 죽였습니까? 어디서 죽일 마음이 생겼습니까? 예배 드리다가 죽일 생각이 생겼습니다. 예배도 보통예배가 아니라 제사를 드릴 때였습니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제일 깨끗해질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 죽일 마음이 생겼고 예배당 뜰에서 죽였습니다.

창세기는 인류가 아무리 예배당에 가고 아무리 우리 영혼이 순수해져도 이미 사람을 죽일 만큼 원죄에 시달리고 있고 뼈와 살이 원죄에 젖어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일사람들이 아무리 숭고하고 머리가 좋아도 2차대전 때 유태인을 650만 명을 죽였는데, 650만 명 중에서 120만 명은 4살부터 12살까지의 아이인데 그 애들은 부모하고 같이 가다가 얼어죽고 부모하고 같이 가다가 굶어죽은 애들이 아니고 명단을 만들어서 죽인 아이들입니다. 4살부터 12살까지의 애들이 뭘 압니까? 이건 어느 목사의 손자, 이건 어느 선생의 아들, 이렇게 명단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죽였습니다. 독일사람들이 그렇게 훌륭한 민족이고 세계적으로도 정신이 깨끗하고 숭고하고 고귀한 민족이라는 역사에 이런 더럽고 추악하고 형용 못할 흉악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했던 수용소가 아직도 있고, 아우슈비츠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보존하는가 하면 그 만행을 저질렀던 독일사람 자신들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숭고하고 깨끗해도 이렇게 악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앙청 하나 겨우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장로님이 헐었습니다.

여러분, 중앙청을 허는 것을 보고 제일 좋아할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일본사람입니다. 중국에 가면 일본시대 총독이 그대로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관광할 때 그 앞은 가지 말자고 합니다. 최악의 유혈악정의 상징입니다. 그걸 가지고 있어야죠. 옛날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은 6.25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6.25 얘기하면 아이들이 머리를 푹 숙입니다. 뭐가 있어야 믿지요. 왜 우리는 그런 것 하나도 보존을 못합니까? 전라도의 옥구에 원당교회가 있는데 교인이 총78명인데 그 중에 76명을 우물에 넣어서 죽였습니다. 그런 것을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처음의 교회는 새까만 생풀지붕과 새까만 벽돌집에 포풀러로 둘러쌓인 전형적인 한국식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강원도에 겨우 하나 남았습니다. 감리교 정동교회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에 지은 예배당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독재를 하는 와중에 정동교회당을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독교를 박해하고 못되게 굴었지만 그 교회를 허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에 새워진 교회이기에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동교회는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보존되었습니다. 우리가 정신이 있습니까?

한강 바로 옆에 절두산이 있습니다. 거기는 다 외국인 묘지입니다. 거기에 묻힌 분들은 선교사들인데 우리 한국을 근대화시켰던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괴로워서 자살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3.1운동하다가 미쳐서 정신병으로 죽었습니다. 스코필드라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의 무덤이 다 거기에 있습니다. 절두산 무덤에 가보셨지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합니다. 잡초가 우거지고 벽돌이 다 깨지고 깡통이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누구도 손질을 하지 않습니다. 서울에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한 교회가 하루씩만 돌보아도 그렇게는 안될 겁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옛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옛날을 기억해야 할 임무는 거기에서 어떤 계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법궤 속에 묘한 것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의 한 점을 없애는 것이 온 세계를 없애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 온 세계가 없어지더라도 율법의 일점일획도 못 고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궤 속에는 만나가 들어있습니다. 만나는 하루밖에 못 갑니다. 그게 특별한 것도 아니고 많은 것들 중에 하나를 기념으로 넣었습니다. 하루밖에 못 가는 만나가 왜 온 우주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율법과 함께 들어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다 우리한테 도전하는 것이고 이제는 성경을 딱따구리처럼 찍으면서 봐야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있는 것이 아론의 마른 지팡이입니다. 그 마른 지팡이가 싹이 수없이 났습니다. 말라빠진 과거의 역사가 싹을 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역사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제 친구의 아들이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신고를 하니까 결혼을 말소합니다. 말소를 하면 호적에 빨간줄을 긋습니다. 빨간줄을 긋는 것은 잘 보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말소는 오히려 노출시킵니다. 지금 우리의 호적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역사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역사를 보존해야 하는가 하면 거기서 수 없는 계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길선주 목사님은 계시록만 10,000번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익두나 이용도 같은 분은 신구약 성경을 600독 했답니다. 여러분, 성경을 그렇게 파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처음에 하루를 어떻게 카운트합니까? 아침이 되며 저녁이 되었습니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됩니다. 이것은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어두운 저녁에 사람들은 아침을 봤습니다. 이게 비전이고 계시라는 겁니다. 에스겔서에도 똑같이 있더라구요.

마틴 루터 킹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음성이 옥타브가 하나 높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설교를 할 때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눈이 약속된 땅의 영광을 보았노라. 영광의 주님이 오시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여러분, 말이라는 것이 그렇게 힘이 있습니다.

영국도 처칠이 일본군에 패한 때가 있었는데 그는 늘 영국군은 일당 열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패하자 국회에서 그에게 일당 열이라고 하더니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책임을 추궁하자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일당 열인데 일본군은 일당 열 한명이니 어떻게 하느냐고 했답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의 정치는 애들 같습니다. 성숙하지도 못하고 여유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습니다.

제가 한 번 이집트에 갔을 때인데 거기서 안내하는 사람이 피라미드가 3천 3년이 되었다고 해서 어떻게 3년까지 정확하게 아시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3년 전에 구경 왔었는데 그때 3천년 되었다고 하더라 그러니 3천3년 된 것이라고 했답니다. 다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마틴 루터 킹은 비전을 가지고 계시를 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명

여러분, 한국교회가 지금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그 비전을 가지고 멀리 봐야 합니다. 뭔가 보일 겁니다. 여러분, 윤동주 시인 아시죠? 이 윤동주가 해방되기 넉 달 전에 죽었는데 그 때 아베 노루유끼라는 총독이 국내에 있는 민족주의자들을 불러서 “우리 일본이 서너달 뒤에는 패망할 것 같소. 그러니 지금부터 정권을 이양하겠소.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패망하면 조선사람들이 우리 일본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들텐데 잘 보호해서 부산에서 배에 태워서 일본에 보내주시오. 그 약속을 지켜준다면 정권을 이양하겠소.” 이러니까 송진호, 장덕수가 “일본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면서 몇 달 뒤의 일을 몰랐습니다. 최남선은 해방되고 나서 반민족 특별조사위원회에 불려갔습니다. 거기 불려가서 왜 친일파가 되었는가를 물으니까 그가 “조선이 이렇게 빨리 해방될 줄 몰랐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윤동주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새벽이 되면 나팔소리 들려올 거요’ 아주 간단한 시이지만 역사적인 배경에서 보면 친일파들 다 일본이 끝까지 승리한다고 믿었는데 윤동주는 우리 이천만 동포가 동해안 쪽에 나팔을 들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비전이 보입니다. 왜 역사를 보전해야 하는가 하면 역사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희망을 봐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비전을 보게 되었다는 얘기인데 우리가 앞으로 생각할 것이 많을 겁니다.

1905년이 무슨 해입니까? 우리나라를 다 빼앗기고 고종도 자기 아들에게 양위하고 외교권 군사권 등 모두 다 빼앗겼습니다. 그때 윤치호가 애국가를 지었습니다. 애국가 첫 구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이고 후렴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 문장에서 뭐가 떠오릅니까? 이게 뭡니까? 땅입니다. 국토! 다 빼앗겼는데 땅은 그대로 있거든요. 이 땅을 지키자는 겁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자기들도 그런 것을 모르고 했을 겁니다. 조금씩만 보고 전체는 못 봅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이 사람들은 땅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 학교 때 교가를 생각해보세요. 대개는 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게 기독교의 민족사적인 유산입니다. 우리 밖에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을 얘기한 집단이 한국에 없어요. 기독교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말한 한국의 유일한 집단입니다. 여러분, 가슴을 펴세요. 손끝에 힘을 넣고 눈을 불꽃처럼 여세요. 우리가 한국을 끌고 온 겁니다.

3.1운동 때 노래가 남궁억이 지은 노래입니다. 찬송가중에 남궁억이 지은 찬송가가 많이 있습니다. 371장 보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 ’ 여러분, 이런 찬송가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기가 막힌 노래가 어디 있습니까? 후렴이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나님 명령받았으니 삼천리 반도강산 일하러 가세’ 계속 땅을 노래합니다. 땅을 지킨 사람들이 기독교뿐입니다. 여러분 1930년대에 오면 ‘김인서’라는 사람이 조선지도를 펴놓고는 이런 글을 씁니다. “고구려 땅을 생각하면서 옆에다 대륙을 두고 압록강 이내에서 큰 숨을 쉬어보지 못한 근고 1000년에 조선의 사나이들이 살았던가!” 그 당시 사람들은 큰 징조 속에서 조금씩 보았는데 자기들은 모르고 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뭔지 모를 큰 징조 속에서 일부를 하고 있는데 역사가 지나가면 2000년 초기 때 젊은 목사님들이 모여서 이걸 했다는 것이 저같은 역사가한테 보일 겁니다.

여러분, 윤동주가 죽던 바로 그 시간에 또 한 명의 유명한 사람이 죽었는데 김교신입니다. 함석헌씨보다 나이가 하나 둘 아래인데 계속해서 살았으면 함석헌씨보다 이름이 더 높았을 텐데 해방되기 넉달 전에 죽었습니다. 조선이 다 끝나고 어두웠다고 생각할 때에 정릉에다가 돌로 집을 짓고 혼자 서재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공부했습니다. 조선이 다 망했다고 최남선도 찬양하고 이광수도 찬양할 적에 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조선지도를 보면서 오른손은 만주 낭림산을 지나 백두산 정상을 휘어잡고 왼쪽손은 묘향산을 지나서 황해도 장산을 움켜쥐고 왼쪽발은 태백산을 지나서 멀리 부산까지 뻗치고 오른쪽발은 소백산을 지나서 전라도 진도까지 뻗혔다. 지구대는 허리가 잘록하고 금강산을 가슴에 드리운 노리개인 듯 몸을 가리운 능마가 동풍에 나부끼어 녹색평화를 이루었으니 엷고도 가볍다. 선녀 바야흐로 하늘에 솟아오르는 모습인가? 아니면 자유의 여신이 아세아 대륙을 등뒤에 걸머지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모습인가? 아멘!

제가 1948년에 이북에 살다가 서울에 와서 중앙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해방되고 다 기뻐하는데 지리선생님이 한국 지도를 걸어놓고 하는 말이 “여러분, 조선은 망하도록 되어있는 나라입니다. 보시오. 러시아 중국 일본과 같은 강대국에 쌓여서 매달려 있는 지리적인 오지. 이건 먹히도록 되어있는 나라입니다.” 이러더라구요. 그런데 김교신은 바로 일제 말기에 조선이 러시아땅, 중국땅, 우랄산맥 등 이 모든 대륙을 등뒤에 걸머지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모습인가? 보세요. 러시아땅, 중국땅을 떠받히고 있는 지렛대로 안보입니까? 이렇게 보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눈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한국이 세계에서 특별한 사명을 가진 나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모세가 하는 말이 하나님은 모든 나라마다 경계선을 정해주시고 사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사명이 뭡니까? 보세요. 서쪽에서 쭉 오면 중국에서 끊어집니다. 태평양에서 오는 것은 일본에서 끊어집니다. 한국은 중간에 서있습니다. 이제 전세계를 향해서 일해야 할 텐데 우리의 사명이 크다는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서커스의 코끼리는 훈련 잘못하면 맨날 매맞고 조그만 비스켓 하나 주고 나가서 재주부리고 하는데 이렇게 매 맞고 조금밖에 못먹는 서커스의 코끼리는 아프리카에서 제멋대로 나가서 자고 먹고 하는 코끼리보다 두 배는 더 삽니다. 왜냐하면 할 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사명이 있다 생각하면 활력이 생기고 기력이 생기고 오래 삽니다. 이 세상에 잘못된 민족적 국가적 사명을 가지고도 나라가 잘된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백인들이 아닌 아시아 사람끼리 잘살아 보자는 생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발전하고 잘되어 왔습니까? 레닌과 스탈린도 잘못된 사명감이지만 세계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겠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저렇게 해온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미국은 저렇게 폭력도 많고 마약도 있고 요란하지만 미국이 저렇게 훌륭한 이유는 자기들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겁니다. 세계인권의 파수군이라는 겁니다. 독일은 장인정신으로 세계를 기술적으로 학문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영국은 신사도입니다.

여러분, 한국은 어떤 민족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돈 버는 겁니다. 그렇죠?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돈 버는 얘기만 합니다. 여러분, 한국이 어떤 민족적인 사명을 가졌는지 아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내세울 고귀한 사명이 없습니다. 우리의 민족적인 사명을 우리 교회가 떠받들고 보여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명이라는 것은 경계선이 있습니다. 시편 16편은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것이 있으며 내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경계선이 있는 겁니다. 모세가 왜 건강한데도 죽었는가 하면 여기서부터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지 말라는 겁니다.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하기가 제일 힘듭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나서서 설교할 때는 더 잘 들어줘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목사가 교회를 그만두면 교회직경 20마일 이내에는 못 들어옵니다. 들어오려면 노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떠난다는 것, 지계표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세는 건강한 도 죽었습니다. 오죽하면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없애셨습니다. 사명이라는 것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경계선이라고 하는데 맥아더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져간다” 눈물나는 얘기입니다. 죽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사라져가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인데 사명은 이렇게 숭고한 데가 있습니다.

여러분 6.25전쟁 때 모택동의 아들이 와서 죽은 것을 아십니까? 아들이 둘인데 큰 아들은 I.Q가 80도 안되는 바보고 둘째 아들은 당시 20세인데 똑똑하고 앞으로 중국공산당을 끌고 가게 생겼습니다. 아주 똑똑하고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때 6.25가 나서 한국에 중국의용군이 60만, 70만, 80만 명이 와서 인해전술로 거의 다 죽었습니다. 당시 남편과 아들을 보낸 어머니와 아내 700만, 800만, 100만 명이 우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을 안 보냅니까? 바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둘째를 보냈습니다. 보내면서 하는 말이 “앞장서!”였습니다. 죽으라는 얘기입니다. 한국에 와서 그 다음날 죽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지난 번 고등학생들을 조사했습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에 태어나고 싶은가? 한국의 78%가 일본에 태어나고 싶답니다. 일본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혔는데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아이들은 6%도 안됩니다.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브리트 장군도 아들이 둘인데 형은 별로인데 둘째는 아이젠하워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습니다. 이 아이가 앞으로 미국의 국방장관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제일 위험한 직무가 척후병인데 거기에 보냈습니다. 지금도 불광동에 반브리트 대위가 죽은 곳이라고 서있습니다. 그 아이도 가자마자 다음날 죽었습니다. 지난번 대선 때 이인제씨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6.25 때 미군장성의 아들만 48명이 죽었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야당 총재나 여당 총재나 그 아들들이 군대를 안갑니다. 지난번 어떤 신문에 “한국은 병역 기피자들이 다스리고 있다.”라고 기사가 났습니다.

여러분, 사명에는 어떤 고귀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그 가운데 기조층이 있습니다. 그 주위에 중심권, 그 주위에 주변권, 그렇게 나가는데 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기조층만 있으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한국을 바꿀 수 있는 기조층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불같은 가슴에 기대고 고귀한 생을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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